사용후 핵연료 처리시설 건설 법적 근거 마련
저장시설 용량 '원전 설계수명 중 발생 예측량' 제한조항'으로 계속운전은 불가능?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하 고준위특별법)이 원전을 가동할 때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를 위한 '급한 불'은 껐지만 일부 원전의 계속운전은 불가능하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내 원전들이 당장 2030년부터 사용후핵연료 저장률이 줄줄이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고준위 특별법 통과로 임시·중간 저장시설과 영구처분장 등을 건설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하지만 이 특별법 제36조 제6항은 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의 용량을 '원전 설계수명 중 발생 예측량'으로 제한해 이미 부지 내 저장시설을 운영하는 경주 월성 2, 3, 4호기는 사실상 계속운전(수명연장)이 불가능할 것으로 학계에서는 우려하고 있다.
◆국내 원전 사용후핵연료 '포화 상태'
우리나라는 1978년 첫 원전인 고리1호기 상업운전 개시 이후 47년이 됐지만 아직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을 위한 부지 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가동 중인 국내 26개 원전은 1만9천여톤(t)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원전 내 습식 또는 건식 임시저장시설에 보관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 시점은 2030년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2031년 한울원전, 2032년 고리원전, 2037년 월성원전 등으로 예상된다.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부지 밖에서 영구 처분하는 시설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현재 가동 중인 원전들을 멈춰 세울 수밖에 없다.
정부는 1983년부터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 부지 확보를 시도해왔다. 1986년 울진·영덕·영일을 비롯해 1994년 굴업도, 2004년 울진을 비롯한 7곳 등 총 9차례에 걸쳐 고준위 방폐장 설치가 추진됐으나 모두 실패했다. 2005년 주민투표를 통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시설만 경주에 확보한 상태다.
현재는 박근혜 정부 당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에 입각한 '1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 문재인 정부 당시 수립된 '2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라 고준위 방폐물이 관리되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고준위법 3개가 발의됐으나 국회 임기만료로 인해 해당 법안들은 자동 폐기됐다. 이번 22대 국회에서는 총 5개의 고준위법이 발의됐으며 최근 고준위 특별법 제정안(대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특별법 제정으로 사용후핵연료의 임시·중간 저장시설과 영구처분장 등을 건설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월성 2·3·4호기는 계속 운전 '불가능'?
여야는 당장 포화상태에 이른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해결하고, 장기적으로 국내 원전을 안정적 운영과 원전 수출을 꾸준히 추진하기 위해 더는 특별법 제정을 늦출 수 없다는 데 공감해 일부 독소 조항이 있음에도 지난달 27일 통과시켰다.
이는 원전 활성화에 부정적 입장을 갖고 있는 야당의 요구를 여당이 수용한 결과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여당 역시 우선 법 제정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자력 관련 학계와 업계 일각에서는 이 특별법으로 원전 수명연장(계속운전)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국원자력학회는 지난달 21일 성명서를 통해 "고준위 특별법(제36조 제6항)이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 용량을 '설계수명 기간 동안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양'으로 제한한 것은 원전의 계속운전 가능성을 차단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허가받은 원전은 설계수명(30년)을 넘어 추가로 10년간 계속운전을 할 수 있지만, 고준위특별법은 '최초 설계수명에 정해진 양'으로 사용후핵연료 저장공간 확충을 제한하고 있고, 계속운전 가능 기간은 이 조항에 따라 결정된다"며 "이 때문에 이미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맥스터, 건식저장시설)을 운영하는 월성 2·3·4호기는 사실상 계속운전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월성 2·3·4호기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천연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며 냉각재 및 감속재로 중수를 이용하는 가압중수로(CANDU) 방식으로, 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 포함 사용후 핵연료 저장률이 82% 정도다.
이 같은 상황에서 월성 2, 3, 4호기는 30년 설계수명에 따라 2026년 11월, 2027년 12월, 2029년 2월 각각 운영허가가 만료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들 원전의 계속운전을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계속운전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 계속운전이 승인될 경우 최소 10년 이상 추가 가동이 가능하다.
한울 1, 2호기도 각각 2027년 12월과 2028년 12월에 설계수명이 만료돼 계속운전을 위한 심사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 또한 추가 임시저장시설이 확보되지 않으면 가동이 중단될 수도 있다.
당초 발의된 고준위특별법안에는 '원전에 여건 변화가 있을 경우 고준위방폐물 관리위원회 심의·의결로 저장 용량을 달리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있었지만 법안 소위 심사과정에서 삭제됐다.
문주현 교수는 "고준위특별법이 사용후핵연료의 임시·중간 저장시설과 영구처분장 등을 건설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만하다"면서도 "원전 운영과 관련된 계속운전 제한과 원자력법과의 충돌 등 일부 독소조항이 있어 국민과 발전사업자 부담을 가중시키는 만큼 원전 이용률 등을 고려해 사용후핵연료 저장용량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등 특별법 개정 등의 후속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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