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감상실-개인 lp카페-대형 문화시설' 음악감상실 변천사
동성로 '하이마트', 68년 전통…최근 2030 세대 사이 입소문
교동 '바이닐바이브', 30여 개인 좌석·턴테이블·헤드셋 구비
서울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앱 회원가입 후 무료 입장

(잔잔한 오프닝 음악이 흐른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노래를 자주 듣던 어느 시절이 떠오르곤 하죠. 여러분도 저와 같은 경험이 있으실텐데요. 요즘엔 휴대전화 속 앱을 통해 터치 한 번이면 간편하게 원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지만, 한때는 노래 한 곡을 듣기 위해 음악감상실이라는 공간에 옹기종기 모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요즘 사람들은 알까요? 이번 주 '주말& 라디오'에선 기자들이 다녀온 음악감상실 세 곳을 추천해드립니다. 옛날 노래부터 현대음악, 팝송까지. 어떤 노래든 좋으니 함께 들으면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3대째 이어온 고전 음악 감상실
최 기자는 중구 동성로에 위치한 '하이마트 음악감상실'을 찾았습니다. 1957년 문을 열어 3대째 이어가고 있는 이곳은 6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많은 시민들의 귀를 즐겁게 해줬는데요. 최근에는 젊은 사람들에게 소위 느낌이 좋은, '멋진 공간'으로 인식되면서 방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14일 평일 한낮에도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방문객이 자리를 여럿 채우고 있었어요.

'하이마트 음악감상실'이라는 복고풍의 간판을 따라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과거로 돌아간 듯한 공간이 펼쳐집니다. 독일어로 고향을 뜻하는 '하이마트'의 의미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달까요. 입장 후 음료와 다과 값이 포함된 입장료 8천원을 지불하면, 이내 사장님이 신청곡을 적을 종이와 펜을 줍니다. "최신곡도 가능한가요?"라는 질문에 잔나비, 데이식스, 검정치마처럼 최근 들어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가수들의 음반도 소장하고 있으니, 구비된 음반에 한해 가능하다고 합니다. 기자는 황치훈의 '추억 속의 그대'와 데이식스의 '좀비'를 각각 신청했습니다.

감상실에 들어가면 어두운 조명 아래 60석 정도의 좌석과 두 대의 키보다 큰 스피커, 그랜드 피아노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벽면에는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 거장들을 새긴 거대한 대형 부조 조각상도 시선을 압도합니다. 단골손님 김익수 화백의 작품으로, 감상실이 처음 세워진 대구역 인근에서 1983년 현재의 자리로 이동하면서 함께 옮겨왔다고 하시네요. 감상실 안쪽의 전축실에서 전달받은 신청곡을 틀어주십니다. 2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보유하고 있는 음반은 최소 4천~최대 6천장에 달한다고 해요. 그 많은 음반들 중에서 어떻게 신청곡들만 쏙쏙 찾아 틀어주시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사장님이 내어준 모과차와 쌀과자를 먹으며 음악을 듣다 보니 문득 개인이 노래를 골라 듣기 이전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노래를 감상했겠구나' 하는 생각도 스쳐 지나갑니다. 클래식 동아리 회원들이 주로 교류하던 공간이었던 만큼, 중간 중간 클래식 음악도 흘러나왔습니다. 제가 방문한 때에는 비발디 사계 중 '여름'이 나왔네요.
이곳을 3대째 이어받아 운영 중인 박수원 씨의 아내 이경은(51) 씨는 "코로나 땐 발길이 끊겼다가 최근 2년 사이에 많이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든 오셔서 좋은 소리를 제대로 감상하실 수 있도록 변함없이 운영하겠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방명록에 한 손님이 남긴 문장이 이 공간을 잘 설명해주는 듯합니다. "온몸으로 음악과 공명하는 경험"(25.02.14)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잠시 시간여행을 한 듯 멍해지네요.

◆더욱 프라이빗해진 신생 LP카페
다음으로 이 기자의 사연입니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힙'한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이곳은 대구 중구 교동에 위치한 '바이닐바이브'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이 청음카페는 30여 개의 개인 좌석마다 턴테이블과 헤드셋이 놓여있어, 프라이빗하게 나만의 음악 감상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에요.

더욱 매력적인 점은 이용시간 제한이 없다는 것인데요. 이 수많은 LP를 마음껏 들어볼 수 있다니…!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리를 잡은 뒤 이용금액을 결제하면 리스닝 티켓과 LP판 손상 방지용 천을 함께 줍니다. LP판을 꺼내거나 넣을 때, 이걸로 잡아야 한다고 하네요. 아 참, 이용금액에는 음료 한 잔과 팝콘 값이 포함돼있어요.
이제 벽면에 진열된 LP들 중 듣고 싶은 것을 골라 자리로 가져와서 자유롭게 들으면 됩니다. 좌석이 한 방향으로 놓여있어 혼자 와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분위기예요. 연인, 친구끼리 나란히 앉아 헤드셋을 끼고 음악 취향을 공유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이날 기자는 찰리 푸스와 유재하의 음반을 골랐습니다. 가요부터 팝송, OST,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음반이 갖춰져 있어, 오히려 뭘 먼저 들으면 좋을지 나름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음악멍'을 때리다보니 처음 듣는 곡도 흘러나옵니다. 문득 마이마이에 테이프 끼워 듣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더라고요. 그땐 음반의 모든 곡을 의도치 않게(?) 다 들었는데. 요즘같이 편리한 시대에 살며 잠시 잊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았어요. 고심 끝에 골라온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바늘을 내리는 과정의 수고로움은 제게 아날로그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가져다줬습니다.

이러한 '청음카페'들은 최근 대구 곳곳에 생겨나며 음악을 좋아하는 2030 세대 사이에서 필수 방문 코스로 꼽히고 있습니다. ▷아늑한 분위기 속 1인 리클라이너 소파에 앉아 음악을 감상하는 '런웨이' ▷예약제로 운영하는 뮤직바 '재생목록' ▷하이파이 스피커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벨하이파이사운즈룸' 등 저마다 개성 있는 분위기와 특색을 지녔지만, 이전보다 개인화된 공간을 잘 꾸려놓은 모습들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어요.

◆대기업이 만든 대형 음악 도서관
마지막으로 한 기자의 사연은 서울에서 왔네요.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LP판을 이용한 음악감상에 흥미를 보이는 2030이 늘자 대기업도 나서는 모양입니다. 현대카드는 2015년부터 '뮤직 라이브러리'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지난해 1월 개장한 스타필드 수원점에는 성수동 LP바 '바이닐 성수'가 유통시설 최초로 입점했습니다. 주말 하루 평균 400명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하네요.

기자는 지난 16일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를 다녀왔습니다. 서울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과 이태원역 중간 지점에 있는 이곳은 최근에 나온 가요뿐만 아니라 1930년대 빅밴드 음악도 들을 수 있는 무료 LP 음악감상실입니다. 현대카드 멤버십만 이용할 수 있는 2층이 바로 무료 음악감상실이지만, 카드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현대카드DIVE 앱 회원가입만 해도 무료로 입장 가능해요.

개별 입장 카드를 받고 2층에 올라가니 엄청난 양의 LP에 완전히 압도됐어요. 시대별로 서고를 빼곡히 채운 레코드판을 보면 '이건 광기다'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듯, 카운터에 있는 태블릿 PC로 원하는 앨범을 찾으면 위치가 검색됩니다. 언젠가 LP를 듣게 된다면 지금은 고인이 된 영국 전설의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1집을 들으리라, 마음먹었기에 앨범을 찾아 카운터에 가져갑니다.
20분 정도 기다린 끝에 턴테이블이 마련된 자리에 앉을 수 있었어요. 직원분이 턴테이블 사용법을 설명해 줍니다. 판을 끼우고 원하는 곡에 톤암(긴 막대기)을 두면 음악이 나옵니다. 헤드폰을 낀 후 레버를 내리니 재생이 되는지 지직지직,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소리가 바로 레코드판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매력! 뒤이어 에이미 와인하우스 1집 Frank의 1번 트랙, 스트롱걸 댄 미(stronger than me)가 시작됩니다. 눈을 감으니 주변 사람은 내 의식 속에서도 사라졌어요. 이 공간에 에이미와 나만 있는 기분이랄까요.
눈을 뜨니 그제야 음악을 듣는 다른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살랑살랑, 좌우로 몸을 흔들면서 헤드폰에서 나오는 선율에 몸을 맡기는 모습이 마치 봄바람에 휘날리는 꽃잎들 같이 연약하고 소중해보였어요. 아, 얼른 봄이 왔으면….(클로징 음악이 조금씩 줄어든다)

댓글 많은 뉴스
[기고-안종호] 대구 군부대 이전지 선정, 공정성 담보해야
한동훈 '비상계엄' 다룬 책, 예약판매 시작 2시간 만에 댓글 600개 넘어
윤 대통령 법률대리인 "공수처, 위법 수사 드러나"…서울중앙지법 영장 기각 은폐 의혹 제기 [영상]
전한길 '尹 암살설' 주장…"헌재, 尹 파면 시 가루 돼 사라질 것"
인요한 "난 5·18때 광주서 시민군 통역…尹과 전두환 계엄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