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속으로] 과거의 유산(遺産) 짊어지고 미래의 희망 향해 나아가는 인생처럼…윤영화 '유산-항해'

입력 2025-02-10 12:02:51

봉산문화회관 '유리상자-아트스타'
3월 30일까지 2층 아트스페이스

봉산문화회관
봉산문화회관 '유리상자-아트스타' 윤영화 작가의 작품. 봉산문화회관 제공
전시장 앞에 선 윤영화 작가. 이연정 기자
전시장 앞에 선 윤영화 작가. 이연정 기자

우리는 모두 바다 위에 뜬 배 한 척과도 같다. 때로는 따사로운 햇빛 아래서 유유자적하고, 때로는 무수한 파도를 온몸으로 부딪쳐 싸워가며 결국은 목적지에 다다르는 긴 항해의 시간은 마치 행복과 역경이 오가는 우리의 인생과 유사하다.

20년 간 부산 앞바다를 가까이 두고 살아온 윤영화 작가가 온몸으로 느낀 바다의 의미는 오죽할까. 배, 바다, 파도, 항해라는 단어는 자연스럽게 나, 세상, 역경, 인생으로 바뀌어 그의 뇌리에 새겨졌다. 거친 파도를 헤쳐 바다를 누비며 맞닥뜨린 삶의 풍경, 그 다양한 장면이 준 숱한 환희와 절망, 그리고 미래의 희망을 표현한 설치 작품이 '유리상자'로 잘 알려져있는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에 펼쳐져있다.

작가는 유리상자 공간을 캔버스로 생각하며 붓으로 그림을 그려나가듯 여러 요소를 가감하고 조율했다. 설치 기간만 12일. 그 중 4일은 꼬박 밤을 새거나 전시장에서 새우잠을 잘 정도로, 공간과의 소통을 통해 예술적 형상을 쌓아갔다.

전시장 바닥은 바다의 포말 혹은 눈과 같은 소금이 가득 쌓여있고, 빛을 아래로 품고 있는 배 구조물이 매달려있다. 목발에 붕대를 감아 만든 노(櫓)와 그을린 책들이 소금 위에 얹혀지거나 소금에 덮혔다. 성소(聖所)를 의미하는 '생텀(SANCTUM)'이라는 단어는 하얀 소금 위에서 붉게 빛난다. 벽에는 파도가 치는 바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등 작가가 일상에서 채집한 풍경을 담은 영상들이 펼쳐진다.

윤영화 작가의 퍼포먼스, 유산-동토(涷土)에서, 2025. 봉산문화회관 제공
윤영화 작가의 퍼포먼스, 유산-동토(涷土)에서, 2025. 봉산문화회관 제공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 외부 전경. 봉산문화회관 제공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 외부 전경. 봉산문화회관 제공

이 '유산(遺産)-항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삶의 풍경과 함께 운명에 대한 얘기를 전한다. 나와 너, 우리가 삶에서 짊어져야 할 과거, 살아가고 있는 현재, 그리고 나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얘기다.

확신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믿을 수 있을지, 과연 영원한 것은 존재하는지. 그의 작품은 스스로에게 던져온 질문에 대한 답이자 그것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남겨온 삶의 좌표들로 구성돼있다. 결국 그의 작품은 과거 불의의 사고를 겪은 뒤 자신을 지탱해준 목발을 붕대로 감싸고, 삶의 흔적인 유산을 안은 채 성소를 향해 소금밭 항해를 결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안혜정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는 "작가의 작업은 그 자신을 내던져 실존적 의미를 찾는 여정이며,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역경을 넘어 희망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표현한다"며 "그의 작품은 우리가 어떻게 인생을 항해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그것을 생각해보게 한다"고 말했다.

대구 출신인 윤영화 작가는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파리 제8대학교에서 석사(조형예술학과), 파리 팡데옹-소르본느 제1대학교에서 박사(조형예술학과) 학위를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부산시청, CJ문화재단 등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현재 고신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시는 3월 30일까지 이어지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오는 22일에는 시민 참여 워크숍 '윤영화 작가와 퍼포먼스 아트의 세계'가 진행된다. 053-422-6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