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창-김노주] 영국 '타임스'가 본 2·28민주운동

입력 2025-02-06 13:31:25 수정 2025-02-06 19:20:46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대통령의 하야 성명이 있기 불과 58일 전인 2월 28일에 이런 변화의 촉매가 된 사건이 대구에서 일어났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맞서 대구의 여덟 개 공립고등학교 학생들이 궐기했다. 이것을 2·28민주운동(이하 2·28)이라 부르며 2월 28일이 2018년부터 국가기념일이 되었다. 세월은 무심히 흘러 3주 뒤 28일엔 65주년을 맞게 된다.

2·28은 학생들이 야당 유세에 참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요일임에도 등교하라는 부당한 지시에 항거한 것을 넘어 자유·정의라는 민주적 기본 가치를 위해 투쟁한 '운동'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의 민주운동이었고, 고등학생들이 이끈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운동이었다.

2·28 정신은 전주, 대전, 수원·충주, 부산·청주에서의 시위로 이어졌다. 그리고 3·15마산의거를 거쳐 4월 19일엔 서울·인천·광주에서의 시위로 확산되었으며 마침내 이승만의 하야를 이끌어 냈다. 2·28 정신이 4·19혁명으로 개화(開花)한 것이다.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후엔 미 군정으로 나아갔고, 우여곡절 끝에 남한 단독 정부를 수립하였으나 곧 한국전쟁을 겪었다. 그 이후엔 휴전과 자유당 독재 정권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 국민들은 점점 좌절과 절망에 익숙해지고 있었고 자유당의 독주와 부정 앞에서도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고등학생들이 들고일어난 일은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으니 당시 영국 '타임스'(The Times) 동경 특파원이었던 찰스 하그로브 기자도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3월 14일엔 대구와 경북고등학교를 직접 방문하여 취재했으며 3월 15일 자 타임스 9면에 '남한 야당은 최악의 선거 결과를 염려하다'라는 장문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는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승만 정부가 시민들에게 가한 위협과 이승만 정부가 자행할 선거 부정의 조짐을 전(全) 세계에 폭로했다.

투표소에서 야당 참관인들을 내쫓는 행위, 3인 1조로 투표할 것과 자유당 후보에 투표하라는 지시를 내린 일, 무차별적인 자금 살포 등은 빙산의 일각임을 보도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 나름 글로벌한 인식을 갖고 있었으므로 타임스의 이 같은 보도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둘째,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여당)이 보인 낙관론과 패배를 예측한 민주당(야당)이 보인 허무주의를 지적했다. 여당의 낙관론은 부정과 불법이 장기화되니 그것이 일상화되었고 관권과 경찰력을 마음대로 동원하면서도 그것이 잘못인 줄 인식도 못 했음을 보여준다. '악의 평범성'이 아닌 '악의 일상성'이라고나 할까?

야당의 허무주의는 야당 정치인들도 국민의 행복과 민주주의의 가치에는 무관심했고 자신들만 그럭저럭 잘 살면 된다는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다 일반 국민들은 서슬 퍼런 권력 앞에 주눅이 들어 있었으니 누가 이 나라를 위해 일어날 것인가?

셋째, 바로 이런 와중에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들고일어난 일은 엄청난 고뇌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음을 지적했다. 경북고·대구고·경북대사대부속고 대표 30여 명이 당시 경북고 학생위원회 이대우 부위원장의 냉돌방에 모여 다음 날의 거사 일정을 정하고 선언문을 준비하는 과정은 진지했고 긴박했고 눈물겨웠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2·28이 없었다면 4·19혁명이라는 꽃이 피었겠는가? 자유당은 그들이 낙관한 대로 정권을 이어갈 수가 있었을 것이다. 2·28의 크나큰 의미를 우리는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로부터 65년이 지났다. 경제와 문화는 선진국이 되었고 작가 한강은 노벨상을 탔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그때보다 나아진 점을 찾기 힘들다. 왜 정치인들은 법을 우습게 여기는가? 이념을 떠나 법을 위반한 자들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이것이 2·28이 현재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타임스 기사는 대구MBC 방송국에서 '1960 민주의 봄'을 제작하는 과정에 윤창준 국장이 발굴했다. 신문 원본을 구매해서 2·28기념사업회에 기증해 준 것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