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 쇼크] 中 GPU 우회확보 가능성…국내 반도체 업계도 '촉각'

입력 2025-01-29 10:30:00

역대급 가성비 생성형 AI의 등장?…'의구심'도 커져
엔비디아 주도 질서 변화, SK하이닉스·삼성도 영향권

중국 스타트업이 개발한 생성형AI 딥시크 실행화면. 연합뉴스
중국 스타트업이 개발한 생성형AI 딥시크 실행화면. 연합뉴스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 Seek)의 부상으로 반도체 업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AI 열풍을 주도해왔던 엔비디아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중국이 AI 반도체 확보를 위해 우회 경로를 이용하고 있는 의혹도 불거진 상황이다. 메모리 칩 중심의 한국 반도체 업계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AI 반도체 우회 가능한가?

딥시크가 이달 20일 선보인 대형언어모델(LLM) AI 서비스 'R1'가 빅테크에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해당 모델은 챗GPT와 비슷한 성능을 구현하고 있으나, 인프라 및 AI 훈련에 들어가는 비용은 10분의 1 미만으로 낮췄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에 챗GPT 개발사인 오픈AI는 물론 구글, 메타(페이스북 모기업) 등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해 엔비디아의 최신 반도체를 구입하는 기존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메타는 딥시크의 기술을 분석하기 위해 AI 부서 내 별도 팀을 운영할 방침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미국의 수출 규제를 뚫고 첨단 반도체를 확보해 자국 기업들에게 공급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알렉산드로 왕 스케일AI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AI 가속기에 필수적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비롯한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중국 연구소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H100(엔비디아의 고성능 GPU)을 보유하고 있다"며 "딥시크는 약 5만개의 H100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수출 통제를 위반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언급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해당 인터뷰 영상을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 계정에 공유하며 이에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다.

투자회사 캔터 피츠제럴드 애널리스트들도 딥시크가 자사의 컴퓨팅 용량을 실제보다 축소해서 밝혔을 수 있다고 의심했다.

머스크는 또 AI 모델 개발 비용에 대한 딥시크 측의 발표 내용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아트레이드 매니지먼트의 최고투자책임자 개빈 베이커의 엑스 게시물 아래에 "흥미로운 분석. 지금까지 본 것 중 최고"라고 언급했다.

베이커는 "엔비디아의 매출 중 약 20%가 싱가포르를 통해 이뤄지는데, 엔비디아의 GPU 중 20%는 아마도 싱가포르에 있지 않을 것"이라며 엔비디아의 첨단 칩이 규제의 망을 피해 중국 AI 기업에 들어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젠슨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연합뉴스
젠슨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연합뉴스

◆ 국내 반도체 업계 '촉각'

국내 반도체 업계도 AI시장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그동안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한 엔비디아의 독주에 다른 미국 빅테크도 아닌 중국의 스타트업이 제동을 걸었다는 점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AI 시장 확대로 생성형 AI 모델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GPU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GPU 시장을 독점한 엔비디아는 그동안 고성능·고효율을 강조하며 고가 제품을 판매해 왔다.

하지만 딥시크의 AI 모델 훈련에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으로 성능을 낮춰 출시한 H800 칩이 쓰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엔비디아의 고성능·고비용 전략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엔비디아에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사실상 독점 납품하며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 SK하이닉스와 HBM 5세대인 HBM3E 납품을 위해 품질테스트를 진행 중인 삼성전자에도 단기 영향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일시적으로 매출 감소 등의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딥시크도 엔비디아 칩으로 AI 모델을 개발한 만큼 엔비디아의 시장 우위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민감한 메모리 산업의 특성상 단기적으로 가격 변동폭이 커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AI 리더십을 더 확고히 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향후 첨단산업에 대한 대중국 규제를 강화하면서 미중 갈등이 한층 심화될 수 있다는 점도 불안 요소로 작용한다. 미국의 제재에 중국이 자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경우 국내 기업의 반도체 수출에도 타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AI 생태계 강화로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긍정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칩셋이 비싸고 구하기 어려워 AI 시장의 진입 장벽이 높았지만 딥시크가 촉발하는 저비용 구조의 AI 모델이 확대되면 AI 생태계가 더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