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연 기자의 한페이지] 은둔형외톨이 지원센터 '작은 거인의 꿈' 설립한 김홍일·이승혜 씨 "지금은 작은 씨앗이지만 언젠가는 꽃이 활짝 필 것"

입력 2025-01-22 15:07:15 수정 2025-01-22 17:53:04

은둔·고립 외톨이들 발굴해 치유해주는 은둔형 외톨이 지원센터 '작은 거인의 꿈'
음악·법 전공하다가…주변에 마음이 힘든 친구들을 보며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에 센터 설립
심리상담·자조모임 등 은둔 공간서 벗어날 수 있는 치유 프로그램도 개발
"지자체에 관련 조례 없는 상황"…각자 아르바이트 하며 센터 운영에 보태

영남권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센터인
영남권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센터인 '작은거인의 꿈'을 설립한 1999년생 동갑내기 김홍일 센터장, 이승혜 사무국장. 한소연 기자

영남권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센터인 '작은거인의 꿈'은 2023년 9월에 설립됐다. 센터를 만든 사람들은 1999년생 동갑내기 김홍일 센터장, 이승혜 사무국장. 이들은 '지금은 씨앗같이 작은 모습이지만 꽃이 피면 화려하고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뜻을 담아 센터를 만들었다.

심리상담서비스, 직업 찾기, 사회성 유지 등 여러가지 프로그램과 SNS를 통해 은둔형 외톨이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지난 8일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작은거인의 꿈' 센터에서 만났다.

-'작은 거인의 꿈'이라는 센터 소개를 하자면.

▶센터장님 별명이 작은 거인이다. 키는 작지만 품은 뜻이 거인처럼 커서다. 처음에 은둔형 외톨이라는 단어가 너무 약간 부정적으로 다가올 수가 있다는 걱정에 '작은 거인'이라는 별명을 활용해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자는 생각에 '작은거인의 꿈'이라고 지었다.

-은둔형 외톨이란 존재나 심각성이 최근에서야 수면 위로 올라왔다. 어쩌다 이 단체를 설립하게 됐나.

▶김: 전공은 바이올린이다. 언젠가 서울에 한 청년 관련 포럼에 갔다가 한 국회의원이 '청년 활동이 스펙용에 국한돼있다'면서 '진짜 청년을 위한 활동이 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내 고등학교 친구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 중에 마음이 아픈 친구들이 많아서 그 주장에 공감했다. 이들의 심리상담을 돕는 봉사원으로 활동을 하면서 2021년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이: 원래 전공은 법무행정학이고 법조계에서 일했다. 법을 가까이 한다는 건 결국 분쟁을 가까이 본다는 것과 같다.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니 그런 감정들에 영향을 많이 받아 힘들었다. 봉사활동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해왔다. 일상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니 나에게 사회복지가 맞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했다. 지난해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사회복지 서비스를 이야기 할 때 '고립'이라는 말은 많이 써왔지만 '은둔'이라는 말은 생소한데.

▶김: 은둔은 한자로 '隱(숨을 은)'에 '遁(숨을 둔)'을 쓴다. 고립은 '孤(외로울 고)'와 '立(설 립)'이다. 다시 말해 은둔은 자발적으로 숨었다고 생각하면 되고 고립은 인간이 사회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결핍된 상태라고 보면 된다. 고립 안에 은둔이 포함된 거다. 은둔이 고립보다 자발성이 강하다.

-은둔하는 이유가 뭘까.

▶이: 대인관계, 가족 간 갈등으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다. 청소년기 때부터 학교폭력을 경험했거나 가족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을 경계하고 타인에게 평가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문제는 가족이나 당사자가 은둔하는 것을 부끄러워 해서 도움을 청해야 하는 일임에도 은폐한다. 초기에 적절히 개입하면 벗어날 확률이 큰데 그렇지 않으면 은둔 생활이 길게는 10년까지도 지속된다.

-말그대로 '은둔'하는 청년인데 발굴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발굴한 이후에는 또 어떤지 궁금하다.

▶김: 은둔하는 분들에게 닿을 수 있으려면 온라인을 활용해야 한다. 블로그 등 온라인상에 우리 단체를 계속 노출시키는 중이다. 또 주변 친구나 고모나 삼촌 등 친척들이 제보를 해주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해서 찾아도 본인이 자발적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부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김: 맞다. 그래서 한 세 번 이내로 일단 찾아가서 간단한 음식이랑 쪽지 같은 걸 남겨두고 온다. 생각이 조금이라도 바뀌길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10명 중 과반 이상이 연락이 온다.

-그만큼 그들도 자신을 꺼내줄 손길이 필요했다는 말일 텐데.

▶이: 본인들이 제일 나가고 싶어한다. 용기 내서 나갔다가 다시 방문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많다. 아직 사회가 그들을 받아줄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렇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실패를 경험하면 더욱 은둔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은둔형 외톨이를 갱생의 대상으로 본다. 무작정 다가가서 끄집어 내려고 한다. 이들의 성격 특성상 이렇게 하면 더 벽을 쳐버린다. 반면 일본에는 같은 개념으로 '히키코모리'가 있다. 일본은 이들을 하나의 성격 유형으로 본다. 잘못된 게 아니라 존중하는 거다.

은둔의 영역을 지켜주면서 최소한의 느슨한 사회적 연결망 정도만 구축해둔다. '그럴 수 있지, 거기서 잠깐 쉬어도 돼. 대신 나오고 싶을 때는 잘 나올 수 있게 도와줄게'하는 식이다.

영남권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센터인
영남권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센터인 '작은거인의 꿈'을 설립한 1999년생 동갑내기 김홍일 센터장, 이승혜 사무국장. 한소연 기자

-은둔형 외톨이를 정신질환자로 치부하는 시선도 있다.

▶김: 간혹 센터 내방하시는 분들 부모님들이 '정신병원 어디 넣어야 되냐', '약을 복용해야 되냐' 하신다. 은둔형 외톨이 지원 협회나 그런 데 보면 정신 질환으로는 보고있지 않다. 우울증이 있어서 운둔하는 경우가 있을 수가 있고 운둔하다가 우울증이 생긴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우선 가족이나 친구 간 관계가 어떤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기억나는 사례가 있나.

▶이: 사례자 중에 30대 중반 청년이 있었다. 방에서 3~4년 간 나오지 않고 씻지도 않으니 부모님이 팔다리를 묶고 욕실로 끌고가 물을 뿌리기까지 했다. 가정에서도 인간적이지 못한 대우를 받는 청년이었다. 보통 상담이 들어가면 당사자보다 부모님과 함께 상담이 들어간다.

-지난해 센터에 방문한 사람들 통계를 보니 20대 30대 비율이 80%다. 유독 이 나이대가 많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김: 입신양명, 자식이 성공하는 것이 부모님한테 효도하는 거고 부모님도 자식이 잘 되면 체면이 선다는 아시아권 문화 특성 때문인 것 같다. 상담자들의 특징 중 하나는 부모님과의 갈등이 심하다는 거다. 대체로 부모님들은 전문직, 고위직 종사자 분들이 다수다. 자녀에게 기대하는 바도 크고 성격도 아주 급하시다. 부모님들이 재촉하니 상담자들도 빨리 빨리 성공하려고 리스크를 가지고 덤벼든다. 자연히 실패할 확률이 높아지는데, 부모님은 또 실패를 했다고 다그친다. 갈등이 심해지고 은둔을 선택하게 되는 악순환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도움이 뭔지 궁금하다.

▶이: 은둔 경험이 있고 방 안에서 탈출했던 사람들의 사례를 공유하고 자조하는 모임도 필요하다. 우리 센터 치유 프로그램 중에서도 자조 모임이 있다. 대체로 대인관계에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이야기를 한다.

김: 이 외에도 상담자가 상담을 희망할 경우에는 전문 상담사가 10회 상담을 한다. 센터에서 하는 봉사활동도 함께 참여한다. 하루에 하나씩 목표를 달성하는 미션도 준다. 예를 들어 손톱 깎기나 편의점 가서 음식 사 오기 같은 거다. 그런 치유 프로그램들을 사무국장과 함께 만들고 있다.

-두 분이서 하기에는 벅찰 것 같다. 지자체 지원은 어떤가.

▶김: 계속 건의는 하고 있는데 복지 예산 문제 때문에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은둔형 외톨이 지원이 사회 복지에 속해야 하는지, 사회 서비스에 속해야 하는지도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 이들을 지원하는 조례도 없다. 지자체는 성과로 지원 수준을 정한다. 구체적인 실적을 원하는데 은둔형 외톨이는 정량적 평가가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가령 수 년동안 안 나오던 사람이 나오면 센터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성과인데 이걸 평가할 방법이 없다.

후원금도 거의 없어서 한 8개월 동안은 막창집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센터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댔다. 지금도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목표가 있나.

▶김: 은둔형외톨이 지원센터를 넘어서 친구가 없는 청년들을 위한 '만남의 광장' 같은 센터를 만들고 싶다. 인터넷이 발달된 후에 친구가 점점 더 사라지는 환경에 놓인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더 심해진 것 같다. 방안에서 우울하게 보내지 않고 행복한 청년 시기를 보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어딘가에 있을 은둔형 외톨이에게 한마디 한다면.

▶김: 사람도 꽃 피우는 시기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4월에 꽃피는 벚꽃더러 2월에 꽃을 피우라고 할 수 없다. 개구리는 뒷걸음질 치면 더 높게 뛸 수 있다고 한다. 잠깐 겪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위축돼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센터는 언제든 열려 있으니 같이 친구하자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