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강민구] '정월(正月)'의 정치 권력적 의미

입력 2025-01-21 19:52:31

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

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
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

지금은 1월도 3분의 2가 지나갔건만 아직 음력설이 오지 않았기에 새해를 맞는 한국인의 시간 감각이 어정쩡할 때이다.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양력을 사용하지만, 문화적 측면에서 음력을 무시할 수 없다.

양력 사용령은 김홍집(金弘集) 내각의 1896년 을미개혁의 개혁 사항 중 하나로 공포되었다. 이것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 직후 단발령(斷髮令)과 함께 공포되었기에 대중의 불신과 불만이 팽배하였다. 당시 '11월 17일'이 '1월 1일'로 한 달 보름 정도 앞당겨지기에 대중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한편 지식인들은 1월이 강제로 바뀌는 것을 역사에서 학습하였기에, 그것의 불순한 저의에 의혹을 품었다.

중국 고대사에서 정월은 3차례 바뀌었다. 현재 '음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夏)나라 때 사용하던 역법이다. 그런데 하나라를 타도하고 개국한 은(殷)나라는 하나라의 역법(曆法)을 폐기하고 12월을 정월로 삼았다. 또 은나라와 치열한 전쟁을 벌여 중원을 차지한 주(周)나라는 11월을 정월로 삼았다. 주나라의 문화를 높이 평가했던 공자조차 주나라의 달력은 쓰기에 불편하다고 난색을 표명하였다. 하나라의 달력은 농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자연스럽고 실용적이다.

그러나 은나라와 주나라가 인위적으로 정월을 각각 한 달씩 앞당긴 것은 권력으로 시간을 통제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작용하였다. 이는 '곡삭(告朔)'이라는 의식을 증거로 삼을 수 있다.

천자가 매년 섣달에 다음 해의 책력을 제후에게 나누어 주면, 제후는 매달 초하루마다 희생양을 바쳐 종묘(宗廟)에 고한 뒤에 그달의 책력(冊曆)을 꺼내 사용하였으니, 이를 '곡삭'이라고 한다. 이것은 황제에 대한 제후의 충성 맹세인 셈이다.

그러면 일 년의 첫 번째 달을 '정월(正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바른 달'처럼 보인다. '한 해의 시작을 바르게 하자'는 것은 참으로 좋은 풀이이다. 그러나 원래의 의미는 그렇지가 않다. '정월'의 용례는 춘추(春秋) 첫머리에 '원년(元年), 춘(春), 왕정월(王正月)'이라는 기록에 처음 보인다.

노(魯)나라 은공(隱公)이 기원전 722년 1월에 즉위한 것을 춘추에서 이렇게 기록하였는데, 즉위년을 '원년(元年)'이라고 칭하고, 1월을 정월이라고 칭한 이유를 두예(杜預, 224~284)는 "임금이 즉위하면 천지의 원기(元氣)를 본체로 삼고, 항상 정도(正道)로 처신하며 정사(政事)를 한다는 의미이기에, '1년 1월'이라고 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하였다.

정(正)은 '바르다'라는 의미인데, 지금 우리 사회는 '바르다'의 정의조차 혼란스러운 지경이다. '正'의 원뜻은 '길을 똑바로 가다'이다. 또 '과녁'이라는 설도 있다. '정곡(正鵠)'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는데, 몸과 마음이 바르게 되어야 과녁을 정확하게 맞힐 수 있다는 의미이다.

정월의 원뜻은 '바른 달'이 아니라 정치를 바르게 하겠다고 통치자가 다짐하는 달이다. 석명(釋名) 등 옛 문헌에서 '정(政)은 정(正)이니, 아랫사람이 바른 것을 취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한 것에서 정치(政治)와 정(正)의 상관성을 알 수 있다. 국민이 가는 길과 정치인이 가는 길이나 지향하는 목표가 달라서는 안 되건만, 지금 우리나라는 갈팡질팡 길을 제대로 찾아서 가지 못하고 목표도 제각각이니,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