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사람들은 경상도 돔배기, 경상도 사람들은 홍어의 맛에 참 둔감하다. 전라도에서는 제사상에 홍어, 경상도는 돔배기가 빠지면 난리가 난다. 홍어는 좀처럼 경상도권으로 수입되지 못했다. 맵고 짠 음식에 길들여진 토박이들도 삭힌 냄새는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조선조 대표격 홍어장수가 있었다. 문순득이다. 신안 우이도 출신 문신인 그는 1801년 12월 홍어를 사러 흑산도로 출항했다 오키나와와 필리핀, 마카오, 중국 광저우, 난징, 베이징을 거쳐 3년 2개월 만에 고향으로 귀환했다. 그의 기구한 운명은 정약전이 쓴 '표해시말'(漂海始末)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다.
◆대구 홍어문화 첫단추
대구에서 가장 먼저 홍어를 보급한 사람은 누굴까. 대구가톨릭병원 남쪽 홍어 전문점 '새아씨방'의 사장 이현숙 씨다.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란 그녀는 일찍 호남 음식에 익숙했다. 이 씨의 이모가 87년 남구 대명9동에서 '수미정'이란 갈비집을 운영할 때 대구로 와서 간여했다. 94년 홍어전문점을 차렸지만 롱런하지 못한다. 수성동아스포츠 근처 '남도홍어'는 전라도 현지 반찬의 질감을 선사해준다. 하지만 아직도 전라도권 봄맞이국의 대명사로 불리는 '보리싹홍어앳국'은 대구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40여개 업소가 산재한 나주 영산포 홍어거리에 가야만 맛볼 수 있다.
◆찬바람 몰고 온 홍어
홍어는 단연코 남도의 게미(맛)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절기에 잡혀 몇 달 짚 항아리 속에서 청국장처럼 숙성됐다가 5월쯤 출시된다. 그때 맞춰 축제를 연다. 지난해 20회째.
홍어는 흑산도권이 총사령부이지만 군산, 인천, 대청도, 심지어 울릉도에서도 잡힌다. 환경에 따라 모양과 맛이 이름이 조금씩 다르다. 가오리, 간재미, 갱개미 등으로 불리는 데 지금은 홍어가 표준명이다. 최대 판매처는 단연코 목포이다.
몸 빛깔이 붉어 '홍어'(紅魚)라 하고, 몸이 넓적하다 하여 '홍어'(洪魚)라 칭해진다. 홍어와 상어는 콩팥이 없다. 오줌도 밖으로 배출하지 않고 체내에서 해결한다. 그 요소가 숙성 과정에 암모니아로 변한다.
수컷은 암컷보다 덩치가 작고 맛이 덜하며 볼품이 없다. 하여 헐값인 수컷이 실속 없다 하여 잡으면 바로 배 바닥에 냅다 패대기친다. 그래서 '만만한 게 홍어 X'란 말이 생겨났던가. 여기서 바로잡을 속설 두 가지. 홍어는 일부일처 성향이 있어 암컷이 주낙에 걸리면 예외 없이 수컷도 딸려 올라온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한 마리씩 걸려 온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의 현주소는 이렇다. 요즘은 무게로 등급을 나누지만 예전에는 암수로 나눠 경매가 됐다. 수컷 두 마리 가격이 암컷 한 마리 값이었다. 당연히 수컷이 잡히면 암컷으로 둔갑시키려고 수컷의 양경 2개를 절단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수컷보다 암컷
홍어는 몸의 물이 농도가 짙은 바닷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체내 삼투압을 바닷물 삼투압보다 다소 높게 유지한다. 그러기 위하여 요소와 여러 화합물을 혈중에 녹여 놨다. 한데 홍어를 항아리에 짚과 소금을 넣고 삭히면 요소가 분해되면서 지린내 나는 암모니아가 발생한다. 이 암모니아가 세균 번식을 막기에 홍어는 얼간을 해 오래 둬도 살이 썩지 않는다. 이렇게 여느 물고기처럼 쉽게 부패하지 않으므로 옛날에 바다에서 먼 내륙의 오지 동네 제사상에 홍어나 상어 토막을 올렸던 거다.
흑산도 앞에는 다른 바다는 도저히 카피할 수 없는 천혜의 홍어 산란장이 있다. 현재 예리항에는 대동호 등 모두 9척의 홍어잡이 어선이 있다. 12월이면 산란을 위해 뻘 바닥으로 접근하는 홍어. 이놈들은 미리 깔아둔 80m 길이 주낙의 줄바늘에 걸려 생을 마감한다. 경매사들에 의해 6등급으로 분류된다. 8㎏ 이상이라야 고급이다. 지난해 12월 30일 기준 암치 1번치(8kg 이상)가 26만원, 숫치는 암치보다 저렴해 1번치(5kg 이상)가 13만원에 거래됐다.
국내 유통 홍어의 99%는 칠레 등 외국산이라 보면 된다. 흑산도 홍어는 워낙 비싸 짝퉁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 흑산도 수협이 세계 최초로 바코드를 부착했다. 정작 흑산도 토박이는 삭힌 홍어를 멀리한다. 그냥 잡은 그 상태로 회를 쳐서 먹는다. 물론 금방 잡은 홍어는 냄새도 없다. 여수권으로 가면 '꼬마 홍어'로 불리는 간재미를 무침회 스타일로 즐긴다.
◆발견된 삭힌 맛
영주와 안동 문어, 영천 돔배기처럼 홍어의 삭힌 맛은 개발된 게 아니고 우연한 기회에 '발견'됐다. 툭하면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 때문이다. 목포 남서쪽으로 100㎞ 떨어진 흑산도. 한때 '공도'(空島) 정책에 의해 나주 영산포 쪽으로 이주해야만 했다. 쾌속선을 타면 뱃길로 두 시간 거리. 하지만 일반 여객선 시절에는 아침 9시에 목포를 출항해 섬 여기저기를 거쳐 오후 해질무렵에야 도착했던 곳이다.
흑산도와 영산포는 고려 시대부터 인연의 고리를 가지고 있다. 고려 말 섬을 비워버린 공도정책은 서·남해 해상세력이 삼별초 세력에 동조할 것에 대한 우려에서 시작해 서·남해 해상세력과 왜구의 연대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 조정의 정책이었다. 왜구들의 노략질로 백성들의 생활에 피해가 커지자 진도, 압해도, 흑산도, 장산도, 거제도, 남해도 등 주로 큰 섬들을 공도화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때 배에 싣고 간 홍어가 나주까지 가는 과정에 저절로 삭혀졌다. 우연찮게 그 맛을 본 어민들이 상업화하기 시작한다. 청국장을 만들 듯 특제 항아리에 짚을 깔고 차곡차곡 재워 넣어 지금의 홍어 스타일로 재가공된 것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홍어의 유통은 거의 목포권에 한정됐다. 숙성 홍어가 영산포의 특산품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1997년 영산포 선창의 한일수산이 상호를 영산포 식품(주)으로 변경하고 풍부한 수입산 홍어를 이용하여 국내 최초로 소포장 규격화된 제품을 생산하고 그것을 전남이 아닌 외부지역에 판매를 하면서부터 침체기를 겪던 영산포 홍어는 전환기를 맞기 시작한다. 게다가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초기, 아들 홍일씨를 통해 홍어를 선물로 내놓아 그로 인해 전국에 홍어 신드롬이 인다.
홍어가 전남 지역의 한정 식품이 아닌 전국 식품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영산포의 기존 홍어업계는 시설개선에 박차를 가하여 외부판매에도 시야를 돌린다. 때를 맞추어 홍어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나주시는 외국산 홍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당시 외국산 홍어로 축제를 하는 것에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2000년 ~2001년에 걸쳐 2회에 걸쳐 홍어축제를 개최한다.
목포시 옥암동에 가면 홍어로 유명한 두 식당이 있다. 한 곳은 토박이가 좋아하는 '금메달식당', 다른 한 곳은 관광객이 북적대고 홍탁삼합 레시피를 개발한 '인동주마을'이다. 하지만 포항의 물회, 구룡포 과메기처럼 맛은 거기서 고기까지. '인동주'란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인 하의도 명물인 인동초를 갖고 담근 탁주다.
◆홍어 맛의 사색
홍어의 맛은 오미자처럼 다층적 구조를 갖고 있다. 기승전결(起承轉結)구도다. 입에 들어가기 전엔 절대 냄새를 피우지 않는다. 마니아들은 접시에서부터 퀴퀴한 냄새를 피우는 홍어를 '마이너급'으로 분류한다. 보이차처럼 더 독한 게 좋다는 건 또 낭설이다. 연갈색과 붉은색 사이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빛깔로 누워 있는 홍어회. 쿠크다스 비스킷 한 개 크기의 홍어 한 점 입에 넣고 씹는다. 와인처럼 음미해야 된다. 일단 과메기보다는 덜 꾸덕하고 쫄깃해야 되지만 육포처럼 딱딱해선 곤란하다. 10여 회 씹다가 혓바닥 위로 올려준다. 이때부터 페프민트 같은 향기가 일어선다. 숨을 들이켠다. 코의 점막에서 찬바람이 펄럭거리고, 순간, 한여름 밀폐된 재래식 변소 안에 갇힌 듯한 퀴퀴한 기분이 든다. ph9에 육박하는 향취다. 눈도 감기고 눈물샘도 터진다. 그래서 묵은지를 곁들이게 된다. 묘하게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이때 탁주 한 모금은 신의 한수. 아려질대로 아려진 혓바닥을 편하게 해주는 중화제가 된다.
그리고 홍어 애를 놓칠 수는 없다. 어류의 간에 해당하는 애(전라도 사투리는 '외')는 모든 생선에 다 들어있다. 하지만 생으로 애를 먹는 것은 홍어‧간재미‧상어가 전부. 그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것이 홍어 애인데, 겨울철 잡은 흑산 홍어의 배를 따면 연어 색깔의 손바닥 크기만한 넓이에 길이는 두 뼘 정도 되는 애가 나온다. 칠레 등지에서 수입하는 홍어는 애가 상해버리기 때문에 생으로 먹을 수 없다. 소금에 찍어 먹는 맛은 대구 뭉티기집 소의 연골 맛과 비슷하다.
그리고 찐팬이라면 최강력 홍어를 전으로 구워 먹는다. 그냥 먹을 때보다 서너 배는 더 강한 냄새를 피워낸다.
wind30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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