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꿈꾸는 시] 박진형 '샤갈의 마을'

입력 2025-01-06 06:30:00

경주 출생, 1985년 본지 신춘문예,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몸나무의 추억', '풀밭의 담론', '너를 숨쉰다', '퍼포먼스' 등

박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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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마을〉

히브리어 시편을

나는 읽지 못한다

까막눈이 예수도

한글 시편을 읽지 못한다

낮게 낮게 모국어의 눈이 내려

지상의 낮은 골짜기를 적시고

뼈다귀만 남은 포도나무 감싸안는다

철사줄 십자가에 묶인 아기 예수가

안으로만 흐르는 고드름 오려 붙이면

포도나무는 연신 초록 불 켜대고 있다

가죽 성경은 낡고 낡아서

배고픈 새끼 염소가 뜯어먹는다

식은 지 오랜 구들장에

아내는 가난의 시편으로

장작불을 지피고

박진형 시인
박진형 시인

<시작 노트>

어느새 12월이다. 소설이 지난 초겨울날, 샤갈의 마을 가까이에 눈이 내린다. 눈은 내려서 시인의 여윈 몸을 적신다. 모국어로만 내리는 눈은 잎이 다진 포도나무 철조망에 못 박힌 예수의 형상을 지운다. 그러므로 가죽 성경은 나달나달 배고픈 새끼 염소가 뜯어먹으리라! 까막눈인 시인이 지쳐 잠들면 아내는 가난의 시편으로 오래 식은 구들장을 장작불로 데운다. 그러므로 가난의 한글 시편도 눈이 되어 내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