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언 개인전 '밤새…'
1월 22일까지 갤러리동원
여전히 고요하고, 따뜻하며 차분하다. 약 3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김종언 작가의 작품 속에서는 굵은 눈송이가 소리 없이 마을의 지붕을, 나무를, 길 위를 덮고 있다.
그는 17년 간 눈 오는 날이면 목포 유달산 아래 마을을 찾아갔다. 작가노트 속 그의 말을 빌리자면 "하얀 밤 얼기설기 얽힌 골목길을 두서 없는 잰걸음으로 정신 없이 쫓아 다니며 구석구석 기웃거린다. 담을 타기도, 살금살금 옥상과 지붕 위를 오르기도 한다."
가끔 개 짖는 소리에 놀라거나, 인기척 소리에 카메라를 숨기고 선걸음으로 자리를 뜰 때도 있다. 가파른 골목길 중턱에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차를 쳐다보며 밤을 새거나 미로 같은 골목에 갇혀 긴 시간을 헤매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가 계속 그곳을 찾는 것은 '사람'의 흔적이 담뿍 묻어나는 곳이기 때문. 그는 "저 가파른 계단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가며 얘기를 나눴을 지부터 집 안에 머무르며 쌓이는 개개인의 생각과 삶의 흔적들, 날이 밝으면 하나씩 만들어질 발자국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고 말했다.
17년 간 다닌 동네라도 작가는 갈 때마다 생각이 달라지고, 오히려 그릴 게 더 많아진다고 말했다.
"사실 처음에는 몇 해 다니면 그릴 게 없겠구나 싶었어요. 한 해 동안 동네의 모습이 뭐가 크게 달라지겠습니까. 하지만 내 기분, 내 생각에 따라 달리 보이기도 하고, 안 가던 길로 일부러 가보며 그 속의 새로운 집과 삶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항상 따뜻하고 포근한 모습으로 그리지만, 최근 그곳에서 삶의 민낯을 마주한 이후에는 더욱 많은 생각이 들었다는 게 그의 솔직한 얘기다. 3년 전 쯤 그림의 배경이 된 수많은 집들 중 어느 날 빈 집에 들어가 앉은 찰나, 그간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을 했다는 것.
그는 "멀리서 봤을 때 예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속에 들어가보니 현실 그 자체가 느껴졌다"며 "낡은 집과 가재도구들만이 쓸쓸하게 남은 공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오래 그곳을 다니면서도 정작 내가 보고싶었던 것만 봤던 게 아닌가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눈이 그 쓸쓸함과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덮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직 그 느낌을 캔버스에 옮기진 않았지만, 충격이 꽤 컸고 지금도 계속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그는 일부러 못난 모습을 감추며 예쁘게 그리지 않는다. 이 시대, 그곳의 모습을 그대로 남기는 진경(眞景) 풍경화를 고수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 외에도 그가 지난해에 작정하고(?) 찍은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림 속 배경이 되는 유달산 아래 눈 쌓인 동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실제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다.
"사실 풍경을 그린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습니다. 내가 그리는 모든 눈과 빛, 집들은 결국 사람의 삶, 사람의 얘기를 표현하는 것이죠. 훗날 그곳의 눈처럼 나의 그림에도 많은 얘기가 쌓여지면 좋겠습니다."
전시는 갤러리 동원(대구 남구 안지랑로5길 52)에서 오는 22일까지 이어진다. 053-42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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