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연구자
겸재 정선은 진경산수, 정형산수, 고사인물, 초충 등을 다 잘 그렸으나 금강전도가 가장 유명하다. 30대부터 금강산을 눈으로 보고 발로 밟았고 70대의 나이에도 금강산에 갔다. 그런 현장 경험이 있어서 내금강 전체를 몽땅 한 폭에 담은 금강전도라는 특별한 그림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인기가 많았던 정선의 금강전도는 여러 점 전한다. 제각각 모두 명품이지만 대표작을 든다면 짙은 먹으로 '금강전도(金剛全圖) 겸재(謙齋)'로 제목과 호를 쓴 이 '금강전도'다. 1734년(영조 10) 겸재 선생이 59세일 때다.
바위산과 흙산이 좌우로 대비되며 동그랗게 원형을 이루어 마치 볼록거울로 넓은 지역을 오무려서 보는 듯 특이한 구도인데다 제화시의 배치도 비슷한 예가 없는 방식이다. 모두 56자인 시를 11줄로 쓰면서 아래쪽에 네모꼴로 작게 써놓은 '갑인동제(甲寅冬題)' 4글자를 둥글게 감쌌다. 조선의 명산인 금강산에 원의 형태(태극?)가 의미하는 어떤 특별한 철학을 담았던 것일까? 제화시는 이 그림을 정선에게 의뢰했던 첫 소장자의 시일 듯하다.
만이천봉개골산(萬二千峰皆骨山)/ 만이천봉 개골산
하인용의사진안(何人用意寫眞顔)/ 누가 용의주도하게 참 모습을 그렸나
중향부동부상외(衆香浮動扶桑外)/ 뭇 향기는 동해 밖 해 돋는 나무까지 떠돌고
적기웅반세계간(積氣雄蟠世界間)/ 쌓인 기운은 온 세상에 웅장하게 서렸네
기타부용양소채(幾朶芙蓉揚素彩)/ 부용 같은 봉우리는 해맑은 빛깔 드러내고
반림송백은현관(半林松栢隱玄關)/ 송백이 반인 숲에는 절집이 숨어있네
종령각답수금편(縱令脚踏須今遍)/ 비록 발로 밟으며 지금 두루 다닌다 한들
쟁사침변간불간(爭似枕邊看不慳)/ 머리맡에 두고 실컷 보는 것만 하겠나
만이천봉을 생생하게 그려낸 정선의 그림 실력에 대한 감탄과 금강산의 절경, 이 '금강전도'가 금강산을 직접 유람하는 것 못지않다는 감상평이다. 정선의 초기 금강전도는 주요 봉우리와 거점 사찰, 이름난 명승지 등의 이름을 써넣었고 탐승 경로도 뚜렷해 그림지도를 연상시킨다. 워낙 유명한 금강산이라 어떤 본(本)이 전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산봉우리와 곳곳의 명찰, 명소가 뚜렷하면서도 빈틈없는 짜임새를 갖추고, 화풍이 세련되며 바위산과 흙산이 조화를 이룬 정선식 금강전도가 완성된다. 정선은 내금강의 산세와 명소를 자신만의 묘사법으로 요약하고 실제 경치가 주는 시각적 감동을 더욱 실감나게 재구성해 금강전도를 명실상부한 회화작품으로 완성했다. 정선은 나이가 들수록 필치가 더욱 오묘해져 '만익공묘(晩益工妙)'라는 기록이 전한다. 새해 더욱 건승하시기를!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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