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봄이, 여름이 심장초음파검사가 있습니다.'
연구실에서 차 한잔 마시고 있을 때, 카톡 알람 메시지가 떴다. '오늘은 2명밖에 없구나' 안도하면서 신생아중환자실로 걸음을 옮긴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는 신생아집중치료 지역센터가 있다. 2013년도에 지정, 정부와 병원 측에서 많은 투자를 했고, 병상 수가 40여개, 8명의 전문의와 60여명의 간호사들이 근무하고 있다. 많은 미숙아와 고위험 신생아 치료에 있어 전국 어느 병원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한다. 이곳의 아기들은 심장 문제를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외래가 없는 오전에는 주로 신생아실에서 심장초음파 검사를 하게 된다.
봄이, 여름이는 27주 4일, 800g 내외로 태어난 쌍둥이 자매다. 미숙아로 일찍 세상에 나와서, 신생아실의 여러 선생님들의 정성 어린 치료를 받고 2주가 된 아기들이다. 신생아실에서 보니 여름이는 작고 여린 몸이지만,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괜찮아 보였는데, 첫째 봄이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잘 움직이지도 않고, 눈빛도 힘이 없고 한 눈에 봐도 많이 아파보였다. 배가 많이 부어 있었고, 배의 색깔도 푸른 빛을 띠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신생아실 담당 선생님들과 봄이의 배 이야기를 하면서, 걱정스런 마음을 함께 나눴다.
전공의 시절, 그러니깐 15년 전 즈음에도 이런 아기의 주치의였던 적이 있었다. 불행히도 그때는 아이를 지켜내지 못하고, 하늘 나라에 보냈었다. 불현듯 그때의 생각이 들면서, 봄이가 걱정 되었다. 신생아실에 갈 때 마다, 봄이 상태를 묻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아기들 검사를 하다가 한동안 봄이를 잊고 지냈다.
2주쯤 지나서 다시 봄이 심장 검사를 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2주 동안 잘 견뎠네'라고 대견한 마음을 가지고 신생아실에 들어섰다. 똘망똘망 한 눈망울과 웃는 얼굴. 봄이의 부풀었던 배도, 걱정스럽던 배의 색깔도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다시 살아난 봄이도 멋있었고, 그런 과정에서 함께 고민하고 고생하고, 사랑으로 봄이를 돌본 신생아실 의사, 간호사선생님들이 존경스러웠다.
그 옛날 내가 놓쳐버린 아기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면서, 신생아센터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8명의 전문의 선생님들과 숙련된 간호사들이 24시간 우리 아기들을 돌보는 시스템, 이런 사람들이 함께 팀으로 협력하여 아기들을 돌보니 생존율과 치료율이 높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이런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 착오와 노력과 희생이 있었을지' 생각해보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개인의 단편적 경험을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시스템에 따라 치료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이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문제를 최소화하고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
12월 초부터 시작된 비상계엄과 대통령탄핵 정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절차적 위법성, 방법론적인 문제는 논외하고서, 비상계엄이라는 돌발변수 앞에 비상계엄의 해제와 대통령탄핵 표결이라는 일련의 과정들이 시스템화되어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스템을 민주주의, 법치주의라 칭할 것이다. 그러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그리고 희생이 있었다. 이제 헌번재판소의 판결만이 남아있다. 어떤 판결이 나오던지, 어떤 갈등이 파생되던지. 우리는 구축한 시스템에 따라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것이다. 그것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최선의 방법임을 믿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봄이를 보며, 우리 사회도 추운 겨울을 지나 속히 희망찬 봄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동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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