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다시, 리더란 무엇인가
모식 템킨 지음 / 어크로스 펴냄
'역사에 길이 남을 어려운 시절'이라는 표현이 참 와닿았다. 지금 한국이 처한 상황이 딱 그렇다.
전세계적인 상황만 봐도 공고해 보였던 민주주의의 기틀이 무참히 흔들리면서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는 국가 간 충돌구조가 강화되고 있고, 세계를 덮친 장기 불황과 끝나지 않는 전쟁은 불안과 공포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혹자는 '전례없는 리더십 공백'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는 국민을 위한 리더가 없기 때문일 뿐, 그 어느때보다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전세계 지도자들은 늘고 있다. 독재주의로의 회귀로까지 여겨질만큼 마구잡이 권한을 행사하는 파워풀한 세계 지도자는 푸틴과 시진핑을 위시해 네타냐후와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줄줄이다.
그 와중에 계엄과 대통령 탄핵사태까지 맞이한 대한민국은 혼란의 소용들이 그 자체다. 가뜩이나 갈등과 혐오, 분열로 점철됐던 사회는 그 골이 깊어지고만 있다. 전통적 미디어는 물론이고 유튜브 등의 1인 뉴미디어까지 가세해 자기 입맛에 맞는 논리만을 감싸며 이를 확대 재생산하기 바쁘다.
어느 누구도 지금 진정으로 필요한 질문과 화두를 던지는 이들은 없다. 국민을 위한 리더는 어떠해야 하는가. 지금 우리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리더십은 어떤 것인가. 그런 리더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3번째 탄핵이라는 정치적·민주적 위기에다 경제 위기까지 동반한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음은 이런 것이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인 역사학자 모식 템킨은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역사 속 리더들과 리더십'이란 제목으로 강의하며 10년 동안 수천 명의 수강생들과 만났다. 이 강좌는 단순한 강의가 아니라 일종의 '사고실험'이었다. 템킨 교수는 소설과 연설, 영화, 음악, 사진 등 방대한 시청각 자료를 활용해 역사 속 리더들이 처한 절체절명의 상황과 고뇌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그려내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장피에르 멜빌의 영화 '그림자 군단'을 보면서 나치 점령기에 프랑스 소시민들이 얼마나 냉엄한 선택의 기로에 섰는지를 떠올렸고, 1941년 말 진주만공격 직전 히로히토 천황과 일본 고위 관료들의 어전 회의록을 읽으면서 제국의 뒤틀린 인식이 어떻게 합리적인 논의와 절차를 무력하게 만드는지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피상적인 인물 탐구 수준이 아니라 다양한 리더들이 시대적 소명에 부응한 방식과 그 파급력을 살피면서, 리더가 처한 구체적인 '맥락'을 알아야만 그 사람의 태도와 행동, 판단과 결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 첫 사례로 그는 성경 속 다윗왕을 가져오는데, 신성한 권리에 힘입어 왕좌에 올랐지만 남의 여인을 뺐고 남성을 죽게 만든 죄를 범하는 등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다 자신의 자식들이 다 죽음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모식 템킨은 "리더에도 감히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 있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고 해석한다.
모식 템킨은 우리가 배워야 할 리더십은 무엇인지 그 실마리를 역사 속 리더들과 결단에서 찾는다. 경제 효과가 미비한 뉴딜 정책을 편법을 쓰면서까지 사수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라파엘 트루히요의 서슬 퍼런 폭정 앞에 결연히 반기를 든 미라발 자매, 민간인 대량 살상의 결과를 예상하고도 공격을 감행했던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의 설계자들의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리더가 성공(또는 실패)에 이르는 길이 하나가 아닌 여럿이고, 상황에 따라 같은 선택도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무엇보다 권력과 공공의 이익은 모순되지 않으며, 공공의 이익을 걸고 싸움을 벌이는 것이야말로 리더가 지닌 가장 강력한 권한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456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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