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연 기자의 한페이지] 대구 찾은 세계적 석학 웬디 칼린·아르준 자야데브…"급변하는 세계, 경제학 교육도 발빠르게 대응해야"

입력 2024-12-18 14:52:06 수정 2024-12-18 17:06:52

새로운 경제학 개론서 '코어 이코노믹스' 편찬…"현실 속 경제 문제를 경제학적으로 풀어놔"
참여한 경제학자만 50여명, "경제 현상 다각도로 살필 수 있어"
한국, AI 도입에도 대량 실업 적어…기술 혁명이 와도 경제 불평등 관리해야
기후변화 대응에 지속적 관심 필요…'환경을 신경쓰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편견 버려야

지난 16일 세계적인 석학 웬디 칼린(Wendy Carlin, 왼쪽)과 아르준 자야데브(Arjun Jayadev)가
지난 16일 세계적인 석학 웬디 칼린(Wendy Carlin, 왼쪽)과 아르준 자야데브(Arjun Jayadev)가 '경제학 2.0: 새로운 시대를 위한 경제학 교육의 전환' 세미나를 위해 경북대학교를 찾았다. 한소연 기자

지난 16일 세계적인 석학 웬디 칼린(Wendy Carlin)과 아르준 자야데브(Arjun Jayadev)가 '경제학 2.0: 새로운 시대를 위한 경제학 교육의 전환' 세미나를 위해 경북대학교를 찾았다.

새로운 경제학 교육 방법과 방향을 모색하고자 열린 이날 세미나는 경북대 대학원 경제학과 BK21 제도와 포용적 성장을 위한 교육연구단, 경북대 경제경영연구소, 경상국립대 SSK 포스트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혁신 연구단, 경북대 경제경영연구소, 한국사회경제학회의 주최로 진행됐다.

50여명이 넘는 학자들과 함께 만든 경제 개론서 CORE Economics(코어 이코노믹스) 프로젝트에 앞장서고 있는 두 석학은 경제학과 학생이라면 꼭 거쳐야 하는 개론서 '맨큐의 경제학'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한다.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 기후변화와 Al의 등장이라는 격변과 불확실성의 시대를 '맨큐'는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 시대에 맞게 경제학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두 석학을 만나봤다.

지난 16일 세계적인 석학 아르준 자야데브(Arjun Jayadev)가 경북대에서
지난 16일 세계적인 석학 아르준 자야데브(Arjun Jayadev)가 경북대에서 '경제학 2.0: 새로운 시대를 위한 경제학 교육의 전환'이란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경북대 제공

-각자 연구 분야에 대해 소개해달라.

▶웬디 칼린(이하 웬): 주로 거시경제학을 연구했다. 임금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공통의 통화를 쓰는 지역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유로존의 금융 위기 원인과 영향 등이다. 독일 경제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독 경제가 계획 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되는 과정 전반에 대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르준(이하 아): 내 연구 분야 역시 거시경제학이다. 국가가 자국의 금융시장을 외국 자본에 개방해서 생기는 일들, 이를테면 성장과 경제 불평등에 대한 것이다. 불평등을 측정하는 연구도 오래 해왔다. 소득 불평등의 의미와 원인을 이해하는 작업이다.

-경제학과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개론서는 맨큐의 교과서다. 맨큐의 교과서와 당신들이 만든 경제학 개론서인 '코어 이코노믹스'와의 차이점이 뭔가.

▶웬: 맨큐의 교과서는 실제 일어나는 경제 현상에 대해 출발하지 않는다. 맨큐 세계에서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은 수요와 공급 같은 고정적이고 단순명료한 틀에 입각한다. 모든 현상을 그 틀에서 해석하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는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 기후변화와 인공지능(Al)의 등장이라는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다. 당장 2008년 외환위기 때만 하더라도 그런 현상을 맨큐의 개론서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코어 이코노믹스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경제 현상에서 출발하고 그렇게 된 이유를 광범위한 관점에서 살핀다.

우리가 직면한 경제 문제는 시장 자체에 맡겨서는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 다수다. 다양한 관점에서 살피고 다양한 경제 주체들을 고려하는 것이 해결의 핵심이다. 맨큐의 접근은 이런 점을 간과한다.

-그런 생각을 한 배경이 궁금하다.

▶웬: 이 프로젝트는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시작됐다. 경제학과 학생들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 "왜 이런 세계적인 위기가 닥친 것이냐"고 교수들에게 물어왔다. 부끄럽게도 나를 포함한 교수들은 이 위기의 원인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학생들도 부모님께서 '경제학을 전공하는데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설명해달라'는 압박을 받았으나 명쾌히 설명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때 경제학을 배워온 지금까지의 방식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 문제와 경제 문제 해결책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경제학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깨달음이다. 그래서 2013년부터 새로운 개론서인 코어 이코노믹스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지난 16일 세계적인 석학 웬디 칼린(Wendy Carlin)가 경북대에서 매일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지난 16일 세계적인 석학 웬디 칼린(Wendy Carlin)가 경북대에서 매일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맨큐의 개론서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시행착오나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웬: 코어 이코노믹스를 만드는 데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의 지식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50명 이상의 많은 경제학자들이 참여했다.

가장 큰 장벽은 맨큐는 오랜 시간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통용돼 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교과서 선택은 전적으로 교수의 재량이다. 많은 학생들이 교과서를 바꾸고 싶더라도 교사가 맨큐를 활용해 가르치고 싶다면 바꿀 수 없다. 교사들에게 개론서를 전환하는 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설득해야 했다.

지금 코어 이코노믹스는 전 세계 550개 대학에서 개론서로 쓰고 있다. 이렇게 바꾸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교수들 역시 맨큐의 방식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우리의 책은 지루하지 않다. 그 점이 학생들에게도 장점이 됐을 거다.

▶웬: 코로나 팬데믹은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경제는 사람의 '이기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경제학이 주장하는 '인간의 이기성'만으로는 어떤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코로나 팬데믹에 의해 알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감염을 막기 위해 자유를 포기하는 등 자신을 희생하고 이타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팬데믹은 경제학자들에게 인간 행동 분석에 훨씬 더 풍부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했다. 팬데믹 이후에는 경제학을 가르칠 때 원인중심적 접근 방식에 대한 지지가 더 커졌다고 생각한다.

-조금전 응급했다시피, 인류는 기후 변화, AI 등장이라는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경제학자로서 인류가 직면한 문제 중 가장 중요하게 바라봐야 하는 것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아: 불평등 문제다. 불평등을 관리하는 것은 그 어떤 변화에서건 공통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인공지능(AI)의 예를 들면, 한국과 일본 사회에는 로봇이 많이 활용되고 있지만 대량 실업이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의 해결이 어려운 것은 사람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단합하지 않는 데 있다. 이를테면 기후변화에 대한 해결 방안이 있는데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집단이 있어서 해결이 어렵다. AI가 도입됐는데도 대량 실업이 발생하지 않는 나라는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결속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는 동시에 기술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있어서다. 이렇게 기술 혁신이든 환경 변화든 이것들이 불러올 불평등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

웬: 젊은이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이 기후 변화의 위협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경제학적으로도 끔찍한 비용을 쓰게 한다. 교육자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이유를 설명하고 어떤 경제 정책이 환경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 기후변화와 Al의 등장이라는 격변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맞게 경제학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두 석학을 만나봤다.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 기후변화와 Al의 등장이라는 격변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맞게 경제학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두 석학을 만나봤다.

-그러나 환경 이슈는 금융, 무역과 같은 이슈에 항상 뒷전이 된다.

▶웬: 눈앞에 닥친 문제가 더 크게 와닿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인한 장기적 위협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야 한다. 그 인식이 멈추거나 마비돼서는 안 된다.

아: 다른 이슈에 밀리더라도 사람들이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걱정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환경 문제가 다른 이슈에 의해 뒤로 밀리는 가장 큰 이유는 '환경을 신경쓰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경제학적으로 잘못됐다. 모든 차가 전기차여도 내연차를 썼을 때처럼 더 다양한 사회가 될 수 있고 경제적으로 더 큰 번영을 누릴 수 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당신의 이익과 반대되거나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웬: 태양광이나 전기차 등 기술이 진보해 초반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졌다. 이로 인해 오염이 줄고 에너지 요금이 내려갈 수 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이득인 것이다. 아르준이 말했듯 '녹색 전환은 끔찍한 비용이 드는 것'이라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코어 이코노믹스 프로젝트의 목표와 학자로서의 목표가 궁금하다.

▶웬: 코어가 경제학 전공의 학생들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 예컨대 시민, 언론인, 공공정책관들에게 전파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코어를 기반으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다소 추상적일 수 있지만,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을 계속 유지하고 흥미로운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다.

아: 코어에 대한 목표는 웬디와 같다. 개인적으로는 기후 변화와 불평등을 위해 사회를 재조직하는 방법을 다시 살펴보고 싶다. 지금 세상은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나 역시 다시 초보자가 된 마음으로 몇 년 동안 이 현상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