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수미가 남긴 일기 책으로…"두렵지만 삶의 철학 알려주고 싶어"

입력 2024-12-12 08:02:37

1983년부터 40년간 써…별세 직전 극심한 스트레스와 공황장애 고통 호소
유가족 "압박 속에 힘들게 홈쇼핑 출연"…책 인세는 전액 기부

출판사 용감한까치 제공.
출판사 용감한까치 제공.

지난 10월 25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고 김수미(본명 김영옥·1949∼2024)의 일기가 책으로 출간된다. 제목은 '나는 탄원한다 나를 죽이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12일 유가족은 고인이 말년에 겪었던 고통을 옆에서 지켜봐 온 만큼 안타까운 마음에 일기를 공개했다며 책 인세는 전액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수미는 "이 책이 출간된 후 제 가족에게 들이닥칠 파장이 두렵다"면서도 "주님을 영접하고 용기가 생겼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제가 지금 이 나이에, 이 위치에 있기까지 제 삶의 철학을 알려주고 싶어서다"라는 글을 남겼다.

연합뉴스가 출간 전 입수한 책에 따르면 별세 직전 김수미는 자기 이름을 걸고 식품을 판매하던 회사와의 분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공황장애를 앓으면서 겪었던 고통도 기록했다.

올해 1월부터 "정말 밥이 모래알 같고 공황장애의 숨 막힘의 고통은 어떤 약으로도 치유할 수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날에는 "공황장애, 숨이 턱턱 막힌다. 불안, 공포, 정말 생애 최고의 힘든 시기였다"는 글을 남겼다.

가족들은 생전 고인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비춘 홈쇼핑 방송과 관련해 모두 만류했지만, 회사의 압박 탓에 출연한 것이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일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고인은 1971년 MBC 공채 3기 탤런트로 데뷔해 최근까지 50년 넘게 쉼 없이 활동해 온 배우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은 권태를 모르고 이어졌다.

"목숨을 걸고 녹화하고, 연습하고, 놀고, 참으면 어떤 대가가 있겠지"(1986년 4월), "어제 녹화도 잘했다. 연기로, 70년 만에 다시 데뷔하는 마음으로 전력 질주해서 본때를 보여주자"(2004년 1월), "너무나 연기에 목이 말라 있다"(2017년 2월)

김수미는 연기뿐만 아니라 손맛과 푸짐한 음식 인심으로도 이름이 잘 알려졌다.

그는 "중1 때부터 고3까지 난 늘 배가 고팠다"며 자신과 밥은 뗄 수 없는 사이라고 강조했다.

'전원일기' 녹화 당시 부엌칼을 들고 다니며 무나 고구마를 깎아 먹고, 소품으로 차려진 밥을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소품 그만 좀 먹어요"라는 스태프의 타박을 들었다는 일화도 언급했다.

가족을 향한 복잡한 애정도 담겼다.

40년 전 남긴 글에서는 배우가 아닌 엄마의 마음이 읽혔다. "앉아 있을 힘도 없는 육신을 끌고 곤하게 천사처럼 자는 딸아이 이마에 입을 맞추고 매일 맹세한다. '너희를 위해 이 엄마 열심히 살게'라고."(1985년 10월)

고인이 무엇보다 바라왔던 것은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글을 쓰는 평화로운 삶이었다.

그는 1986년 일기에서 "화려한 인기보다는 조용한, 평범한 애들 엄마 쪽을 많이 원한다. 적당하게 일하고 아늑한 집에서 자잘한 꽃을 심어놓고 좋은 책들을 읽으며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을 기다리고 싶다"고 바랐다. 2011년에도 "마지막 소원이 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아니면 1층 담에 나팔꽃 넝쿨을 올리고 살아보고 싶다. 그러면서 글을 쓰고 싶다"고 소망했다.

한편 고인의 명복을 비는 49재는 이날 오후 2시 경기 용인에서 열린다.

고 김수미의 일기 속 내용. 유가족 제공
고 김수미의 일기 속 내용. 유가족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