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군을 정치에 불러들인 비상계엄은 5공 청산과 하나회 숙청으로 확립한 문민통제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군사쿠데타를 연상케 한 포고령은 반문명적이었으며, 무장병력의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투입으로 민주주의가 짓밟혔다. 나아가 한미동맹 균열과 자유민주주의 진영 내에서 국격의 몰락을 자초했다. 요컨대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적 폭거로 보수 정치는 파산했다.
윤 대통령은 유례없는 총선 참패에도 국정을 전환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태원 사건, 채 상병 사건, 김건희 스캔들 진상 규명을 뿌리치며 민심에 역행했다. 결국 위기를 모면하고자 한 달 전의 대국민 담화까지 저버리고 친위 쿠데타를 감행했다. 윤석열 정부는 통치력의 양대 지표인 이념과 정책에서 모두 실패했다.
이념적으로 범보수와 중도층을 기반으로 집권했으나 비윤계를 축출하며 스스로 입지를 축소했다. 그리고 반대 세력을 공산 전체주의로 매도하고 극우 인사를 중용하며 급격히 우경화했다. 극우 유튜버들의 부정선거론 주술에 마취된 것도 금번 폭거의 원인이었다. 정책적으로는 4대 개혁-의료·연금·노동·교육-이 좌초하며 국가의 미래가 암울해졌다. 물가 급등과 주택 공급 실패로 양극화도 심화되었다. 특히 경직된 의대 정원 정책은 불통과 실패의 표본을 보여주었다.
친윤 집단은 국정과 보수 정치를 파산시킨 공동정범이다. 이들은 기껏해야 연판장이나 돌리고 당원게시판 시비 따위로 대통령 심기 맞추기에 급급한 협량이었다. 그리고 민심을 등진 채 대통령의 탈주를 방관하며 집권당을 대통령의 행동대로 전락시켰다. 이들이 보수의 가치와 품격을 보여준 바가 있었던가.
헌법기관으로서의 친윤의 공적 책무감은 바닥 밑으로 추락했다. 절체절명의 헌정 붕괴 순간에 이들은 국회를 등지고 비상계엄의 방조자로 떠돌았다. 진실로 출입이 막혀 국회에 들어가지 못했는가? 계엄군에 맞서며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온 190명의 야당과 친한계 국회의원은 무엇인가? 이들은 헌법기관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여전히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배회하고 있다. 그리고 이 순간까지 당 대표를 흔들며 파당 놀음의 망각에서 깨지 못하고 있다.
작금의 상황을 냉정히 직시하자. 친위 쿠데타는 전 세계가 확인했고 절대다수의 국민이 국헌 문란에 분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내란죄 피의자로 입건된 데 이어 출국금지됐다. 계엄 관여자들은 위법의 진실을 실토하고 있다. 지역, 세대, 이념을 초월하여 탄핵 여론의 불길이 치솟았다. 아울러 대통령을 수사하겠다는 검·경·공수처의 경쟁에서 권력무상을 절감한다. 윤 대통령의 내란죄 기소는 확정적이고 체포나 구속 가능성도 작지 않다. 보수 권력의 시간은 저물었다.
이제 "위헌적 비상계엄을 국민과 함께 막겠다"는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의 실천에 보수 정치와 민주주의의 미래가 달려 있다. 그는 여와 야, 친윤과 친한, 집권 세력과 국민의 대치선의 정점에 서 있다. 그가 받아쥔 선택지는 좁고 무엇을 선택해도 비난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동훈의 길을 가야 한다.
첫째, 보수의 비전을 제시하고 가치를 재건해야 한다. 그 출발은 국민과 대통령 중에서 선택을 결단하는 것이다. 주저 없이 윤 대통령과의 동거를 종료하고 탄핵소추 표결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박근혜에서 윤석열까지 보수 퇴행을 성찰하고 국민 앞에 실책을 고백하자. 조기 대선 승패에 연연하지 말고 온전히 심판받고 보수의 환골탈태를 이끌어야 한다.
둘째, 삼권분립을 수호하고 정치를 정상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헌정 질서 회복 일정을 제시하여 정치적 불안정성을 해소하자. 그리고 국정 혼란을 틈타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 등 방탄 세력이 법의 심판을 회피하지 않도록 정국을 주도해야 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국사범이냐 잡범이냐의 선택에 직면한 한국 민주주의는 참혹하기 짝이 없다.
앞으로 파당의 무리들이 준동하며 사법부를 겁박하고 심판 일정을 훼손할 것이다. 따라서 삼권분립을 지키고 정치를 정상화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 그 정직한 원칙의 길에 합리적 보수 세력이 결집하여 자신의 과오를 청산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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