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얼어붙은 빙판 위 아이도 어른도 '웃음꽃'
1985년 12월 28일 대구 중동교 상류 신천 안전 스케이트장. 한파로 꽁꽁 얼어붙은 빙판에서 겨울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엉거추춤 걸음마가 서툰 개구쟁이, 쌩~쌩~ 솜씨를 부리는 아이, 쭈볏쭈볏 점잔빼는 동네 아저씨 모두 신이 났습니다. 그해 겨울 대구는 말 그대로 엄동설한(嚴冬雪寒). 12월 8일부터 최저 영하 5~10℃의 혹한이 내리 스무날이나 지속돼 앞산을 덮은 눈조차 녹을 새가 없습니다.
신천이 얼어붙자 구청이 나섰습니다. 상동에는 수성구, 중동교 위엔 남구, 대봉교~수성교 하상은 중구, 도청교~성북교 구간은 북구, 동구는 동촌 금호강에, 서구는 감삼동(현 달서구) 무논에다 물을 채워 얼렸습니다. 안전 깃발에 안전 요원, 간이 화장실, 뜨끈한 오뎅(어묵) 국물이 그만인 간이 음식점까지 들인 스케이트장 입장료는 공짜. 그해 신천은 겨울 내내 잔치판이었습니다.
1960~70년대 대구 대표 겨울 놀이터는 동촌 금호강과 수성못. 수심이 깊다 보니 12월은 불안해서 스케이트광들은 어서 겨울 한복판, 1월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도심에서 너무 멀어 이 버스 저 버스 갈아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기온이 오른날엔 살얼음판이 꺼지는 무서운 일도 잦아 대책이 절실했습니다.
1970년 12월 30일, 신천에 처음으로 안전 스케이트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남산여고 앞 드넓은 하천을 불도저로 싹 밀어 만든 아이스링크 넓이는 9천여 평(약 3만㎡). 선수용 경기장, 연습장에 어린이 썰매장도 갖췄습니다. 이 빙상장은 그 전 해부터 신인빙상대회를 주최해 온 매일신문사가 대구시와 함께 만든 합작품. 개장 첫날 시범경기를 구경하겠다고 입장료 20원에도 수천 명이 몰렸습니다.
스케이트가 부러웠던 아이들은 골목에서 썰매로 달랬습니다. 하수도가 변변찮아 길바닥에 흘러내린 구정물이 얼기라도 하는 날은 볼이 빨개지도록 탔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안쓰러웠던지 당국은 이듬해(1971년) 12월 말, 삼덕·동부·내당·옥산·인지국교(초교) 등 5곳 운동장에 미니 스케이트장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복병을 만났습니다.
이상난동(異常暖冬). 1972년 1월은 이상한 겨울이었습니다. 소한(小寒), 대한(大寒)에도 춥기는 커녕 봄날 같은 날씨가 겨울 방학을 다 망쳐놨습니다. 신천 안전 스케이트장엔 보트를 띄워야 할 판. 개장도 못하고 철수했습니다. 가게에 진열된 스케이트는 거의 반값에 준대도 쳐다도 안 봤습니다. 누구는 연탄 걱정을 덜었다지만 동심에겐 참 야속한 겨울이었습니다.
1974년부터 신천 안전 스케이트장은 더 위쪽, 상동까지 쫓겨났습니다. 수질이 나빠져 빙점이 낮아지고 생활 온수마저 흘러들어 결빙 기간도 더 짧아진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사정 때문일까? 그해 12월 23일 파동에 개관한 대구스포츠센터에 처음으로 실내 스케이트장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 빙상장은 수도권 외 지방 최초 시설로, 1995년 고성동에 전용 빙상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우리나라 빙상은 물론 '빙상도시 대구'를 이끈 산실이 됐습니다.
그 원천은 다름 아닌 신천 놀이터. 금호강, 수성못이 너무 위험하다고 신천 자갈밭에 판을 깔아 준 덕에 아이들은 겨울이 즐거웠습니다. 얼음판을 빙빙 돌며 저토록 신나게 놀더니 오늘의 대한민국을 쇼트트랙 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산업화, 도시화를 지나고 보니 온난화, 기후위기…. 매섭던 동장군도 맥을 못춰 이제 신천 강물은 얼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도 겨울은 얼음을 지쳐야 제맛. 오늘(20일)은 동장군 대신 전기로 얼린 스케이트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신천과 팔거천 두 곳에서 겨울잔치가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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