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의 연극 리뷰] "캔디의 치유 방식과 로켓의 욕망," 우주를 향한 강훈구 연출의 <로켓 캔디>

입력 2024-11-30 06:30:00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로켓캔디. 국립정동극장 제공.
로켓캔디. 국립정동극장 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우리는 추락하는 게 아니야. 끝까지 날아가는 거야. 우리 몸이 불타 없어질 때까지 날아가는 거야" 질산칼륨과 설탕을 섞어 우주로 쏘아 올릴 고체연료 추진제를 만들어 지구(地球)에서 탈출하고 싶은 열일곱 살 극 중 인물 지구(박은경 분)가 연극<로켓 캔디>(rocket candy 작, 연출 강훈구, 국립 정동극장 세실) 에서 던진 대사 한마디다. 로켓 캔디로 만들어진 폭발물이 실제 국내 콘서트장에서 사용된 적이 있다. 질산칼륨과 설탕, 물엿을 섞고 황과 적으로, 발화제로 만든 뒤 가스라이터로 불을 붙여 폭발을 일으켜 2명이 화상을 입은 인명피해였다. '사탕이 아니라 폭탄이었다'라며 날 선 비판이 있었다.

극중인물 지구는 '로켓 캔디' 추진제를 만들어 우주 심연으로 날아 달에 착륙하고 싶어 한다. 로켓티어 아빠로부터 신비한 우주탐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지구는 다이달로스로 이름 붙인 소형 '로켓 캔디' 추진제를 만들어 달 표면에 착륙시키는 거였다. 우주비행의 꿈은 추진제가 교실에서 폭발물이 되면서 산산조각이 나게 된다. 소년원에서도 로켓 캔디의 욕망을 버리지 않는다. 강훈구 연출의 <로켓 캔디>는 2045년 근미래를 배경으로 영 어덜트(Young Adult) SF 연극이라 하고 있다. 극 중 인물로는 인공지능 로봇 버디(이승훈 분)와 우주여행을 실현하고 있는 솔라리아 디자인 스튜디오 CEO인 노아(마두영 분)가 등장한다. SF 연극이라고 하기에는 일론 머스크가 쏘아 올린 달·화성 초대형 우주선 스타십이 성공적으로 우주로 향하는 현시대에 SF 연극보다는 판타지 청소년 극이라 하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 강훈구 연출의 <로켓 캔디>의 이야기다.

로켓캔디. 국립정동극장 제공.
로켓캔디. 국립정동극장 제공.

◇ 캔디의 치유 방식

전쟁지역에서 실제 폭발물로 사용되는 '로켓'과 '캔디'는 이질적인 조합이면서도 질산칼륨과 설탕 배합으로 된 폭탄체이다. 강훈구 연출은 '로켓 캔디'를 극중인물 지구의 성장기로 표면화를 위해 차용하고 있다. '로켓'은 현실 세계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지구 내면의 욕망으로 극은 점화된다. 성장 내면으로 자아(自我)가 팽창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현실 세계에서 우주비행의 희망으로 부풀어 오를 수 없는 지구의 자아 욕구는 아빠의 부재로 결핍된 상태를 보이기도 한다. 엄마( 은하, 이미라 분)는 감정조절이 안 될 때면 마음속 긍정 버튼을 누르고 대화를 시도하는 현실적인 엄마다. "아빠 생각은 잊어버려"라며 지구를 망상(妄想)에 빠진 아이로 대하거나'덕후 증후군'(연극에서는 지구를 자폐스펙트럼을 앓고 있는 인물로 설정하고 있다) 을 보이는 아이로 인지되어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지구의 자아실현의 욕망은 현실화할 수 없는 상태로 놓이게 된다. 결핍 욕구의 내면은 실현 불가능한 환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연극<로켓 캔디>는 강훈구다운 메타적 놀이성 안에 사이코드라마 진행 형식을 빌려 지구 팽창되고 있는 내면의 판타지 세계를 실재하는 것처럼 형상화하면서도 결핍된 지구 내면과 심리를 치유하는 과정을 공상과학적인 연극성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연극적으로 환유된 '캔디'는 지구의 자아 욕구가 결핍된 상태를 의미한다. 캔디(아빠의 부재, 엄마의 억압, 교육환경의 불균형, 덕후 징후군과 사회적 시선)의 부조화는 우주비행을 할 수 없는 '로켓'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폭발물이 되는 것이다. 극 중 인물들은 때로는 지구의 내면을 치료하는 관찰자로 등장해 내면의 환상으로 응집된 인물들로 분하면서 지구의 불안정한 자아와 심리적 변화를 소녀의 성장기처럼 무대를 통해 감각적으로 표면화한다.

로켓캔디. 국립정동극장 제공
로켓캔디. 국립정동극장 제공

◇ 우주를 향한 '로켓 캔디'의 무대 발사체

무대는 로켓 캔디 추진제 발사대처럼 연상되기도 하고 지구 내면으로 팽창하고 있는 우주공간처럼 보인다. 배우들은 무대공간 뒤편 5개의 나무 의자로 등 퇴장해 무대를 개방한다. 오브제 놀이극처럼 극 중 장면이 활용되는 <로켓 캔디>는 지구의 광활한 자아 욕망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심리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대 중앙에 놓인 로켓 캔디가 지구에서 탈출해 우주로 향할 듯한 모형으로 놓여 있고 지구의 등장과 지구의 심연으로 자라고 있는 다이달로스의 대화부터 강훈구 연출은 <로켓 캔디>가 2045년을 배경으로 하는 과학적 상상력, SF 연극임을 환기시키기도 하는데, 강훈구 다운 장난기를 발동 시키며 연극적 환상을 제거한다. 설탕과 질산칼륨을 35대 65로 잘 섞어 높이 25cm, 지름 입은 6.6cm, 50kg 고체연료 로캣 캔디를 개발하는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면서 결합이 완료되고 폭탄이 터지는 굉음으로 우주비행을 하듯 시공간은 근미래시대인 2045년이다.

◇ '오우무아무아'를 향한 로켓의 욕망, 지구 탈출기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다. 우리 긍정 버튼을 누르고 다시 시작하자" 엄마의 긍정 버튼은, 점화될 수 없는 로켓 캔디의 연소(燃燒) 버튼이랑 다름이 없다. 그럴수록 지구는 태양계 바깥에서 진입한 성간 천체 '오우무아무아'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무대는 인공지능 로봇 버디를 통해 로켓 캔디 폭발물을 만든 지구 내면세계를 심리치료 사이코 드라마 극중극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지구의 판타지 공간이다. 지구는 불안감으로 야뇨증에 시달린다. 인공로봇 버디는 놋쇠로 만든 명상종과 썬더드럼을 활용해 마치 최면을 걸어 내면세계를 탐험하는 것처럼 지구를 심리치료 대상으로 삼는다. 몸이 불타 없어질 때까지 날아가고 싶은 지구의 뜨거운 욕망은 자위행위로 나타나기도 한다. 혜성(박보경 분)과 호모섹슈얼적 행위나 입맞춤을 극 중 장면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다이달로스 로켓 캔디의 실패, 로켓티어인 아빠의 부재, 엄마의 심리적인 억압으로 형성된 불안과 결핍으로 팽창되고 있는 욕망과 내면이 시각적 환상(幻像)으로 형상화된다.

강훈구 연출은 지구의 욕구 결핍의 내면을 사실로 보이는 욕망적인 환상 장면으로 형상화했는데 소년범을 대상으로 하는 심리치료 극과 유사해 보인다. 대상자의 심리상태를 치료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심리극(사이코드라마)을 이끌어가는 보조 역활자(배우)는 대상자 내면으로 존재하는 인물을 실재하는 것처럼 유도하고 감정을 자극해 심리치료 행위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연출은 한발 더 나아가 메타적 놀이성으로 극중극 화해 다이달로스로 지구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 자아 욕구를 시각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성장기에 있는 욕망의 자아는 등장인물로도 동일화된다.

열일곱 살 때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로봇개발과 로켓으로 우주 시대를 개척하고 싶었던 극 중 솔라리아 CEO 노아(마두영 분)는 열일곱 소녀 지구의 내면과 동일화된 미래의 인물이다. 지구의 소년원 투쟁기는 노아가 고백한 삶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노아, 휴먼로봇 버디, 연극배우 임을 자처하며 극중극을 유도하는 우주(류세인 분), 아버지 폭력으로 말더듬이가 된 혜성과 일탈행위는 지구가 '영 어덜트'(Young Adult) 성장기에 팽창되고 있는 잠재된 욕망의 내면으로 드러난다. 지구의 망상 혹은 내면의 환영으로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로켓캔디. 국립정동극장 제공.
로켓캔디. 국립정동극장 제공.

◇'로켓' 연료는 충분하고, '캔디'가 필요한 강훈구의 놀이성

강훈구는 마치 시공간 배경을 2045년으로 설정하고 지구의 성장기를 근 미래적인 공상과학 판타지로 전환해 현실과 미래 공간의 허구적 객관성을 강훈구 특유의 놀이성으로 극중극 화해 성장 드라마를 풀어내고 있다. 천재성을 보이는 아이가 마치 제도권 교육의 부적응자인 문제아로 인식되거나 사회적인 편견으로 적응할 수 없어 한국 사회에서 괴물이 되어가는 모순적인 현실을 느끼게 한다. <로켓 캔디>는 SF적일 수 있지만 지구를 통해 청소년들이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현실사회를 말하고 싶은 설정일뿐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극중인물 지구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심리치료를 통한 마지막 말은 지구의 자백이다. "제가 폭탄을 만들었어요. 학교에 폭탄을 터트렸어요. 제가 했어요. 다 제가 한 짓이에요. 정말 잘못했습니다." 연출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며 로켓 캔디 추진제를 만들어 지구(地球)를 탈출하고 싶어 하는 극중인물 지구를 통해 천재적인 덕후 증후군이 현실화 될 수 없는 한국 사회 교육 현실을 드러낸다.

마지막 장면은 로켓 내부를 닮아 있는 무대공간 사이로 지구는 다이달로스(로켓 캔디)에 불을 붙이고 발사 준비를 완료한다. 카운트 다운으로 다이달로스는 폭파되어 불이 타오르며 사라진다. 결국 아빠로 동일화된 다이달로스와 우주비행의 꿈과 희망을 가지며 성장해 온 지구는 더 이상 '오우무아무아'의 우주 세계로 날아갈 수 없으며 특별한 덕후적 재능이 편견으로 박제되어야 하는 한국 사회 한 모퉁이에서 살아가는 현재(지구)의 이야기가 아닐까. 그럼에도 강훈구 연출은 반원형 구조의 무대 점막 사이로 태양계의 별들이 지구를 비추며 여전히 로켓 캔디(다이달로스)가 우주로 비행할 수 있는 희망을 한국 사회에 가지고 있는 듯하다.

로켓캔디. 국립정동극장 제공.
로켓캔디. 국립정동극장 제공.

연출은 전작 무대( 폰팔이,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에서 보여준 것처럼 구조적인 연극형식을 전복한 극 중 인물들은 시공간을 특정화하지 않으며 메타적 놀이성을 무기로 재현성을 뒤집는 형식을 취하기도 했다. <로켓 캔디>도 공상과학적인 설정의 서사, 동화적인 판타지에 현실적인 구조, 메타적 극중극을 통해 특정될 수 없는 극중인물 캐릭터의 가변성, 강훈구 연출의 진지한 장난들이 배합된 장면 구조와 캐릭터 설정들이 섞여 시공간을 이탈하는 놀이적인 방식으로 전환되는 장면 구조가 장점이다. 무대는 거칠고, 불편하면서도 무대와 공간을 몰고 나가는 연출적인 감각에서는 기존 연극형식을 전복하려는 반항적 지질이 연극 사유와 세계를 연극형식으로 충분히 풀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에서 보여준 감각을 환기해 보면 강훈구는 천재성을 보이는 영민(穎敏)한 연출적 감각으로 전작과 다른<로켓 캔디>를 무대화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독창적인 작품세계도 기대되는 연출가다. 로켓 캔디를 만들어 우주로 날아가고 싶은 지구처럼 강훈구 연출의 성장기로 동일화되어 창조된 인물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긍정 버튼을 외치는 엄마(은하)의 손을 괴물처럼 오브제로 표현해 엄마의 간섭이 지구의 심리적인 억압 상태를 표현한 설정과 노아( 다이달로스)를 우주인으로 보일 수 있는 고깔모자와 그로데스크한 의상으로 지구 내면의 욕망성을 극대화한 점, 극중인물 혜성의 입을 돌출시키고 바퀴 달린 전동휠과 전동 퀵보드를 타는 인간형 로봇 버디의 설정은 지구 내면의 판타지 세계를 캐릭터로 시각화한 점이 두드러졌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처럼 명료해지길. SF 연극. 잔혹동화, 지구의 욕망과 성장기, 사이코드라마 진행 방식의 이중구조, 메타적 놀이성 등 < 로켓 캔디>에 침투되어 있는 혼합된 극의 다양성만큼이나 연출 강훈구도 지구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만큼 복잡해 보인다.

공(공놀이 클럽)은 바닥표면에서 방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튈 때 스포츠와 게임이 될 수 있지만 공을 받아 낼 수 없다면 규칙 없는 놀이가 된다. 연극은 규칙을 형상화하는 게임과도 같다. 연극은 연출의 규칙을 구조적으로 형상화하는 게임과도 같다는 것을 인식하길 바란다. 그럼에도 지구의 우주비행이 국립정동극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강훈구의 연출 스타일을 무대로 풀어낼 수 있는 배우 이승훈과 이미라, 박은경, 류세인, 김보경, 마두영과 무대를 설계한 무대디자인 조경훈 등 창작자들이 작, 연출자를 신뢰하는 것 만큼 쌓여있다 할 수 있다.

로켓캔디. 국립정동극장 제공.
로켓캔디. 국립정동극장 제공.

|미니 인터뷰 (로켓 캔디 작. 연출 강훈구)

강훈구 연출(34)은 고등학교까지 경주(경주고등학교)에서 다녔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나왔고 연극원 연출과 전문사를 졸업했다. 대학 때는 고대극회에서 활동했다. 2017년 <미인도 위작 논란 이루 제 2 학예실에서 벌어진 일들>은 희곡작가로, 그해 <마지막 황군>으로는 연출로 데뷔했다. '공놀이클럽'을 창단해 작, 연출을 하고 있는 강훈구 방식으로 연극세계를 만들어 오고 있다.

─ 로켓추진제를 만들어 우주로 향하고 싶은 17세 지구의 소재를 청소년 연극형식으로 개발하고 싶었던 이유는.

"예전부터 어딘가에 깊숙이 빠져있는 "덕후" 캐릭터에 큰 관심이 있었어요. 무언가 절실하게 좋아해 보는 경험은 좌절해보는 경험만큼 나를 알게 하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덕후와 청소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요즘 '덕후'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드라마틱하게 변한 것 같기도해요. "덕후가 세상을 구한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죠. 하지만 꼭 덕후가 세상을 구해야 할까요? 세상을 구하는 덕후만이 좋은 덕후일까요. 자신을 파괴하고 싶은 덕후는, 세상을 터뜨리려고 욕망을 가진 덕후는,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로켓 캔디>는 그 질문에서 출발한 연극이죠."

─ 연출 구성은 메타적인 사이코 드라마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지구가 치유되는 과정인가?

"맞습니다. <로켓 캔디>는 폭탄을 터뜨렸다는 것을 부정하는 지구의 인지 부조화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치료과정입니다. 연극이 시작할 때 지구는 지금이 2024년이 아니라 2045년이라고 소개하는데요. 관객들은 연극 중반부터 2045년의 세상은 지구의 환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지구가 치유되느냐고 하면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결말에서 지구가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로켓 다이달로스를 터뜨려버립니다. 이 결말은 다이달로스(아빠)로부터 독립에 성공한다는 점에서 치유가 된 것 같기도 하고, 폭탄을 터뜨렸다는 점에서는 자신 속에 있는 폭발 욕망을 긍정하고 받아들인 것처럼도 보여집니다."

─ 연극은 지구의 성장드라마 같다. 꿈과 희망이 좌절될 수밖에 없는 교육의 현실도 드러나 있는 것 같은데.

"<로켓 캔디>는 완벽히 성장드라마입니다. 저는 모든 드라마는 성장드라마라고 생각하는데요. 드라마는 영웅이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왔는데 무언가 달라져 있는 이야기인 것 같거든요. 우리나라 교육환경의 문제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근대의 학교가 '1+1=2'처럼 딱 떨어지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해도 학교는 정도가 심한 것 같아요. 작년에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선사시대 동굴 벽화 관련 책을 읽고 토론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책에서는 여러 가설을 제시하긴 했지만, 결론은 동굴 벽화를 왜 그렸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답이 없다"라는 결론 앞에서 학생들이 무척 당황하더라고요. 사실 모든 것을 대상화하여 이해하려면 외워버리면 그만이죠. 이처럼 세상에는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도 있지만, <로켓 캔디>처럼 로켓추진제이기도 하고 폭탄이기도 한 것들이 많은 것 같거든요. 답을 찾을 수 없는 것도 분명히 있고요. 저도 지구처럼 답이 여러 개일 수도, 답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부터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달라졌던 것 같아요. 성장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강훈구 연출가
강훈구 연출가

─ SF 연극을 표방한다 해도, 지구의 이야기가 극 중 장면으로 전환되는 시간이 사이코드라마 진행 형식과 섞여 있어 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

"지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청소년입니다. 자폐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감각기관이 예민해 남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지구가 보는 세상과 보통 사람들이 보는 세상은 다르다는 것이죠. 자폐 스펙트럼이 아니더라도, 청소년이 보는 세상과 성인이 보는 세상은 조금씩 다르고, 사람과 사람마다 보는 세상도 같지는 않은 것처럼요. 우리가 보는 것을 남들도 볼 것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환상이라는 것이 핍진성 강한 현실일 수도 있다는 것을 연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면, 연극은 재미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고민을 던져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 사이코 드라마 형식을 극 속에 융합한 이유는.

사이코드라마 형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게 된 것은 공연 연습 중반 지점에서였습니다. 대본을 읽어나가다가 심리치료를 위한 사이코드라마 배우로 여러 차례 참여한 적 있는 이승훈 선배가 로켓캔디가 사이코드라마와 비슷하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사이코드라마라면 지구의환상과 현실의 시간이 어색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극적이잖아요.(웃음)

─ 지구의 일탈 행위, 엄마의 그로테스크한 손, 호모섹슈얼적 장면도 보인다. 의도는?

"엄마의 손, 혜성이의 돌출된 입, 버디의 바퀴, 노아의 고깔모자는 지구의 눈에 비치는 세상의 모습을 설명하기 위한 연출적인 설정이었어요. 지구가 자신의 로켓 다이달로스로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을 통해서 폭발하고 싶어하는 욕구에 내재 된 성적인 욕망을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지구의 숨겨진 욕망을 통해 복선을 제시하려는 의도도 있고요."

─ 무대배경을 로켓 발사장처럼 표현해 우주적인 분위기를 내는 아이디어가 좋았다.

"무대를 로켓 내부처럼 디자인한 것은 조경훈 무대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였어요. 반원형으로 설계된 무대는 지구가 도달하고 싶은 우주 같기도 하고, 로켓에 천착하는 지구의 자폐적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라는 점에서 세트는 우리의 인식 세계를 은유하기도 합니다."

─ 연극 <폰팔이> 부터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로켓 캔디> 까지 연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산만한 지점들도 있다. 강훈구의 연출형식이 거칠다는 느낌도 있다.

"제가 ADHD가 무척 심한데요. 어려서부터 산만하다는 평가를 달고 살았거든요. 특유의 산만함이 저를 청소년 극으로 이끈 것 같기도 합니다. 청소년극은 그 산만함이 허용될 여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산만함이 드라마틱하게 줄어든 것을 느낍니다. <로켓 캔디>는 차분한 분위기의 세실극장에 맞춰서 경험하는 연극이라기보다, 보는 연극으로 설계되어 있어요. 산만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시니 실력의 부족을 느낍니다. "차분한 것이 무엇이 좋은 연극이다" 라기보다는 제가 변화하고 있다고 느껴요. 저도 이런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조금 차분한 무대를 설계해보려고 합니다."

─ 강훈구 연출의 앞으로 작품계획은?

"제가 쓰고 연출한 신작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올립니다. 예술고등학교에서 연기를 가르치는 연극 교사가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을 연출하다가 클리타임네스트라에 빙의하여 남편을 죽이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랜만에 청소년이 아닌 중년의 여성 주인공인 작품을 하게 됩니다. 많은 관객분이 공연을 보러 오시면 좋겠어요." (강훈구의 신작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연희예술극장에서 내년 1월 2일부터 12일까지 공연된다.)

강훈구 연출가
강훈구 연출가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