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로야구는 천만 관중의 시대를 열었다. 그 중심에는 모처럼 부활한 삼성의 약진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지역민의 기대와는 달리 주축선수들의 부상으로 한국시리즈는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김응룡 감독의 유명한 유행어처럼.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우리는 종종 지역에서 억대의 연봉을 제시했지만 의사를 구하지 못했다는 기사를 접하곤 한다. 이것은 '명의'등과 같은 건강 프로그램들이 양질의 의료 행위는 능력 있는 의사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준 것에 기인한다.
이런 오해는 '의사집단은 환자 치료 보다는 돈만 밝히는 속물이다'는 비난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의료 행위' 역시 프로야구만큼이나 팀워크가 중요하다. 의사 한명의 개인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팀이 정비되어 있어야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아무리 억대의 연봉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고 팀이 구성되어 있지 않다면 의사 개개인이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어린시절 프라모델이나 블럭을 가지고 장난감을 만들어 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 아무리 작은 부품이라도 '그 부품'이 없다면 큰 모형이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유사한 부품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지금의 의정갈등은 전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던 한국의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왔다. 정부는 무너진 시스템을 단기간에 복구하기 위해 대체인력 투입을 서두르고 있지만 유사품으로 완전한 복구를 기대하긴 어렵다. 어떤 인력을 투입한다 하더라도 떠난 인력의 빈자리를 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잦은 당직으로 인해 남아있는 의료인력들의 피로도도 위험 수준에 다다랐다. 이대로는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올해 초 시작된 의정갈등은 세 계절을 지나 늦가을로 접어들었다. 의료대란은 일상이 되었고 내년도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없다. 지난 추석, '응급실 대란'이다, 뭐다 앞다퉈 보도를 이어 나가던 언론들도 이제는 기사 한 줄 나지 않는다. 누군가 말했다. '뉴스로 보도되지 않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은 일' 이라고. 이제 일상이 된 의료대란은 뉴스로서의 가치도 잃은 모양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치료받을 병원을 찾아 길위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있는 환자들의 사연이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이 되고 있다. 중증·필수의료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한다던 '의료개혁'은 중증·필수의료 환자부터 외면당하는 역설에 빠졌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개혁은 의료현장을 전문의 없는 '전문의 중심병원', 전공의 없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학생 없는 '교육과정 개편', 중증 환자가 치료받을 수 없는 '의료전달체계 개편'으로 바꾸어 놓았다.
올해 수능은 의료대란이 무색 할 정도로 의대열풍으로 뜨거웠다. 하지만, 지역의 수능 최고득점자가 현역 의대생이라는 소문이 도는 걸 보면 늘어난 의대생 중 지역 및 필수의료에 종사할 생각이 있는 지원자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교육환경이 열악해진 지역의대의 정원이 미달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래저래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지역의료의 혹독한 겨울이 오고 있다.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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