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백=물의 신' 엉터리 해석…고조선, 中문화의 아류로 둔갑
◆고주몽의 외조부 하백
고구려는 광개토태왕 시대에 이르러 광개토경(廣開土境)이란 말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영토를 만리장성의 안과 밖으로 크게 확장했다.
[{IMG01}]광개토태왕비문에는 시조 추모왕의 탄생설화가 실려 있는데 거기에 "천제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다(天帝之子 母河伯女郞)"라고 하였다. 이것이 아마도 하백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 될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시조 동명성왕조에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일명은 추모라고 하는데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解慕漱)와 하백의 따님 유화(柳花)의 사이에서 태어났다"라고 하였다.
광개토태왕비문은 간단명료함을 모토로 하는 비문의 특성상 단지 추모가 "천제의 아들, 하백의 따님 아들이다"라고 간단히 언급했지만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그 아버지 해모수와 어머니 유화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주몽의 탄생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1, 고구려조는 '삼국사기'의 내용을 그대로 요약전재하고 있다. 다만 '삼국유사'는 주석에서 "'단군기'에는 단군이 서하(西河) 하백의 딸과 관계하여 아들 부루를 낳았다고 하였는데, '삼국사기'에서는 해모수가 하백의 딸과 관계하여 주몽을 낳았다고 하였으니 해부루와 주몽은 이복형제(異母兄弟)간이다"라는 견해를 덧붙였다.
이승휴의 '제왕운기'권 하에서는 '단군본기'를 인용하여 "부여왕이 비서갑(非西岬) 하백의 따님과 혼인하여 사내아이를 낳으니 이름을 부루라 했다"라고 하였다. 또한 '제왕운기' 고구려기에서는 고구려 시조가 주몽인데 "아버지는 해모수이고 어머니는 유화이다(父解慕漱 母柳花)"라고 말하고, 주석에서 "하백이 세 딸이 있었는데 유화는 하백의 장녀였다"라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이상의 금석문과 문헌 기록을 종합해 본다면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아버지는 해모수이고 어머니는 서하 하백, 또는 비서갑 하백의 장녀 유화부인으로서, 하백은 고주몽 어머니의 친정아버지이자 고주몽의 외할아버지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부루는 해모수와 유화의 정식 혼인을 통해서 태어난 아들인 반면 주몽은 해모수와 유화의 사적인 관계에서 태어난 사생아이다. 그래서 일연은 해부루와 고주몽을 이복형제라고 말했던 것이다.
하백을 '삼국유사'에서는 '단군기'를 인용하여 서하(西河)의 하백이라 말하고 '제왕운기'에서는 '단군본기'를 인용하여 비서갑(非西岬)의 하백이라고 하였다.
지금 서하나 비서갑의 정확한 위치를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두 지명에 모두 서방을 가리키는 서(西) 자가 들어 있는 것을 본다면 하백(河伯)에서 가리키는 하(河) 즉 강은 중국 대륙의 동쪽이나 남쪽, 북쪽이 아닌 서쪽에 위치한 강을 지칭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백에 대한 한, 중 학계의 견해
▷한국 학계의 견해
한국의 이병도는 '국역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해모수에 대한 주석에서 "환웅, 해모수는 신남(神男)이요 하백녀, 웅녀는 신녀(神女)로 해석해야 한다"라고 말하여 해모수를 남신, 하백녀를 여신으로 인식했다.
이재호는 '삼국유사' 고구려 조항의 하백에 대한 주석에서 "하백은 황하(黃河)의 신, 곧 물을 맡은 신이다"라고 말하고 그 근거로 '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하백을 인용했다.
이기동은 '한국사강좌' 고대편에서 "고구려의 하백녀는 곡령(穀靈) 신앙과 조상신의 의미가 동시에 내재된 것으로 파악했다.
김철준과 노태돈은 고구려의 시조모 하백녀를 지모신(地母神) 내지는 그와 같은 농업신으로 주목했다.〈김철준 '한국고대사연구' '동명왕편에 보이는 신모의 성격', 노태돈 '고구려사연구' 37쪽〉
한국 학계는 하백을 '물의 신'(水神)으로 규정하고 그의 따님 하백녀는 신녀, 또는 지모신 내지는 농업신으로 간주함으로써 세부적으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를 인간이 아닌 신으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중국 학계의 견해
중국의 진고응(陳鼓應)은 '장자금주금역(莊子今註今譯)' 추수편에서 하백을 당나라 성형영(成玄英)의 주소에 근거하여 "하백은 '황하의 신'(河神)이다. 백은 장자(長者)의 칭호로서 하백은 강의 어른을 뜻한다"라고 말하였다.
황금횡(黃錦鋐)은 국립대만사범대학 교수로서 장자학의 대가이다. 필자도 대만사대에 유학할 때 그의 강의를 들었다. 황교수의 '신역장자독본' 역시 하백을 황하의 신으로 풀이했다.
'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하백은 장자가 가치판단의 상대성을 설파하기 위해 발해의 신 해약(海若)과 황하의 신 하백이라는 두 가공의 신을 등장시킨 것으로서, 고구려 시조 주몽의 외조부 하백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런데 한국의 이재호가 고구려의 하백을 황하의 물의 신 하백으로 오인한 것처럼 중국의 장벽파(張碧波) 또한 이 양자를 동일한 존재로 파악하는 오류를 범했다.
흑룡강성 사회과학원의 장벽파는 중국 동북방사 연구의 권위자로 '중국고대북방문화사' 등을 저술했는데 고구려의 주몽설화에 등장하는 하백이 황하의 신이라고 말하면서 황하문화의 한 요소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중국 황하의 신 하백을 외조부, 그 따님을 어머니로 둔 주몽에 의해 건국된 고구려의 민족과 문화는 중국 한족, 한문화의 아류가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고주몽의 외조부 하백은 하북성 남쪽 보정시 역수(易水) 유역의 통치자다
필자는 '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황하의 신 하백과 고구려의 건국 시조 주몽의 외조부인 하백은 서로 확연히 다른 존재인데 이를 동일한 존재로 파악한 데서 한, 중 역사학계의 혼란이 야기되게 되었다고 본다.
하백에 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산해경' 대황동경에 나오는 다음 기록이다. "왕해가 유역국(有易國) 하백에게 의탁하여 소 떼를 길들여서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유역국에서 왕해를 살해하고 그가 기르던 소 떼들을 탈취해갔다. 은나라의 군주가 왕해의 원수를 갚기 위해 유역국의 군주를 살해하자 하백이 유역국과의 옛정을 생각하여 유역국 사람들을 몰래 도망칠 수 있게 도왔고 유역국 사람들은 짐승들이 출몰하는 곳에 새로운 나라를 건립했다(王亥託于有易河伯僕牛 有易殺王亥 取僕牛 河伯念有易 有易潛出 爲國于獸)."
여기에 등장하는 하백에 대하여 진(晉)나라의 곽박(郭璞)은 "하백은 사람 이름이다(河伯 人名)"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리고 북경 상무인서관에서 발행된 풍국초(馮國超)가 역주한 '산해경'에서도 "하백은 사람 이름이다(河伯 人名)"라고 말하고 있다.
'산해경'에서 말한 하백은 유역국의 역수 유역에서 활동했던 하백이란 역사적 인물이고, 고구려 주몽의 외조부 하백은 바로 이 '산해경'에 나오는 유역국의 하백을 가리킨 것이다.
필자가 고주몽의 외조부인 하백을 '장자'에 나오는 하백이 아닌 '산해경'에 말한 하백을 지칭한 것으로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산해경' 대황동경에는 소호의 나라, 예맥의 나라, 군자국, 백민국, 흑치국, 해뜨는 골짜기 양곡(暘谷), 치우천왕 등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는데 여기에 유역국의 하백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등장한다.
소호, 예맥, 군자국, 백민, 흑치국, 양곡, 치우 등은 우리 민족의 상고사와 직간접으로 연관이 있는 낯익은 명칭들이다. 그런데 거기에 하백이 등장한다면 이 '산해경'의 하백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고주몽의 외조부 하백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산해경'에 나오는 하백은 황하의 수신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물로서 고주몽의 외조부인 것이며 그래서 광개토태왕비문을 비롯한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조선왕조실록' 등에 그 기록이 전해 온 것이다.
그런데 한, 중 학계가 실재했던 '산해경'의 하백이란 인물을 '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황하의 수신으로 착각하는 바람에 고주몽의 외조부가 물귀신으로 둔갑하는 어이없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더구나 하백이 활동했던 하북성의 역수는 요수(遼水)의 다른 이름으로서 고조선, 고구려시대의 서쪽 경계였던 것이 '사고전서'에 의해 밝혀진 점을 감안한다면 역수유역의 통치자 하백이 고주몽의 외조부일 가능성은 한층 더 높아진다.
그리고 역수의 하백이야기는 '산해경'뿐만 아니라 '죽서기년'(竹書紀年)에도 실려 있어 역사적 신빙성을 더욱 뒷받침한다. '죽서기년'에는 "은나라 왕자 해(亥)가 유역국에 국빈으로 가서 있으면서 아름답지 못한 음행이 있었다. 이에 유역국의 임금 면신(緜臣)이 살해하여 그들을 내쫓았다. 그러므로 은나라의 군주 상갑미(上甲微)가 하백에게 군대를 빌려서 유역국을 멸망시키고 드디어 그 군주 면신을 살해하였다"라고 하여 '산해경'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내용을 전하고 있다.
고주몽은 부여의 천제 해부루, 유역국 역수 유역의 통치자 하백의 따님 유화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불과 2천여 년 전의 이야기를 마치 2만년 전의 일이나 되는 것처럼 신화화하여 천제를 하느님, 하백을 수신 즉 물귀신, 하백녀를 지모신, 곡물신, 농업신 등으로 해석한 것은 우리의 고대사연구가 얼마나 엉터리 수준인지를 잘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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