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소 판결 노렸나…'이재명 유죄' 받은 선거법 바꾸자는 민주당

입력 2024-11-23 10:45:49

이재명 1심 유죄 전후 野 '허위사실공표죄 삭제' 발의
당선무효 벌금 기준 100만원에서 1천만원으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재판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가운데,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 논의에 불을 붙이고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이 선거운동을 지나치게 제약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은 해당 개정안이 이 대표 재판과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처벌 수위를 낮춰 이 대표의 피선거권 박탈을 막기 위한 '입법 방탄'이라는 비판이 정치권에서는 제기된다.

◆이재명 유죄 선고날 '선거법 개정' 띄운 민주당

23일 야권에 따르면 이 대표와 사법연수원(18기) 동기로 친명계 인사로 꼽히는 박희승 의원은 이 대표 1심 선고 하루 전인 지난 14일 선거법 개정안을 대표로 발의했다.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를 삭제하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이다.

이어 1심 선고 당일인 15일에는 현행 당선무효형 기준인 벌금 100만 원을 벌금 1천만 원으로 높이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모두 이 대표에게 적용된 선거법 위반 혐의와 직결된 조항들이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15일 '고 김문기 씨를 모른다',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에 국토부 협박이 있었다'는 허위 발언이 인정돼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관련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사진은 이날 법정에 출석 전 후의 이재명 대표의 모습.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관련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사진은 이날 법정에 출석 전 후의 이재명 대표의 모습. 연합뉴스

민주당은 개정안이 우연히 이 대표 재판 시기와 우연히 겹쳤을 뿐 이 대표를 위한 입법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법안을 발의한 박 의원 측은 "이미 재판 중인 사건에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법안에 적시했다"며 "재판에 맞추려 했다는 지적은 억지"라고 말했다. 해당 법안엔 기존 사건에 소급되지 않는다는 부칙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 대표 재판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 공포 3개월 후 시행' 선거법 개정…이재명과 무관할까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해당 법안이 이 대표가 재판을 받는 도중 '면소'(免訴·법 조항 폐지로 처벌할 수 없음) 판결을 노린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개정안 시행 시기를 '법 공포 후 3개월 후 시행'으로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위반의 경우 이른바 '6·3·3의 원칙'(1심 6개월·2심 3개월·3심 3개월)이라는 강행 규정이 있는데, 이를 지킨다고 하더라도 법 시행 전에 이 대표의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관련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이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관련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이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연합뉴스

이 대표의 2심 판결 전에 법이 개정될 경우 이 대표에게도 새 법이 적용돼, 처벌이나 의원직 박탈을 피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형법 제1조 2항은 범죄 후 법률이 변경돼 그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않게 된 경우 새로운 법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 법에는 처벌 조항이 없어지는데, 이 경우 부칙이 있더라도 양형상 감경 사유로 고려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이 법의 목적은 이 대표 1심 징역형 집행유예가 면소 판결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며 "'633' 원칙에 따라 설령 항소심 판결이 나와 대법원에 올라가더라도 법이 발효돼 기존 법이 없어지면 대법원 어떤 판사가 근거 법도 없는데 이 대표의 재판을 하겠느냐. 그날로 면소다. 소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입법권을 고도로 남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지도부가 선거법 개정 필요성을 띄우면서 해당 법안의 경우 민주당에서 당론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대표는 지난 20일 공직선거법 개정 토론회 서면 축사에서 "지나친 규제는 정치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선거법 개정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김병주 민주당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기승전 '이재명 방탄'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선거법 개정은 필요하다"고 했다.

해당 법안들은 조만간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로 회부돼 논의될 예정이다.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이 2022년 8월 허위사실 공표 대상에서 '행위'를 삭제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특히 부칙으로 '이 법 시행 전의 행위에 대한 벌칙 적용에 있어서는 이 법에 따른다'는 소급 적용 조항을 넣었다. 당시에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이 대표의 기소 근거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與 "이재명 판결 바꾸겠다는 위인설법"

국민의힘은 판결 결과를 국회의 힘으로 바꾸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판사 출신인 장동혁 최고위원은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이 야당 대표의 죄를 없애거나 형을 낮추기 위해 법을 개정하는 것은 명백한 입법권의 남용이자 이해충돌"이라고 했다. 김민전 최고위원도 "신의 사제, 민주당의 아버지 이재명은 정말 대단하구나, 법조차 '위인설법' 하게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