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희 대구달서소방서장
역대급 무더위를 보내고 어느덧 가을의 한가운데 있지만 요즘 날씨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아니라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라 여겨질 정도다. 하지만 겨울은 어김없이 다가올 것이고 이에 대비해 대구소방은 11월부터 '불조심 강조의 달'로 지정하여 화재예방특별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20여 년 넘게 소방관을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화재를 경험해 보았지만, 지난 3월 죽전동 다가구주택 화재는 베테랑 화재 조사 요원들조차도 처음 보는 사건이었다. 새벽에 화재가 발생하여 2명이 욕실에서 질식사하였으나 산소부족으로 집안에서 저절로 불이 꺼졌다. 입주민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집주인의 신변 확인 요청이 있고 난 뒤에야 비로소 화재 조사가 이루어졌다.
화재 원인은 평소 낚시와 캠핑을 즐기던 남성이 사용하기 위해 거실에서 충전 중이던 파워뱅크로 추정되었다. 파워뱅크는 충전용량이 크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면 진압이 매우 곤란하다. 하필 발화 장소가 피난 경로인 거실이었고 배터리 화재의 특성상 폭발적인 연소가 진행되어 미처 거주인이 대피할 시간이 부족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당 주택에는 화재경보를 위한 단독경보형감지기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더구나 거실에 설치된 바닥매트와 벽지는 화재에 취약하고 유독가스를 분출하는 재질로 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안전불감증의 종합세트다.
2024년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리튬이온배터리 화재는 612건으로 전동킥보드와 전기자전거 등의 보급량과 사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화재 건수도 증가추세에 있다고 한다. 장소별로는 공동주택이 299건으로 거의 절반을 차지하며 원인은 과충전이 51%인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개인용 이동장치나 캠핑 등에 사용하기 위한 가정 내 대용량 배터리의 사용은 늘어날 것이다. 많은 화재가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발생하고 있어 인명피해의 우려는 더 크다. 따라서 집에서 대용량 배터리를 충전할 경우 내 집에서는 화재가 안 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만약에 충전 중 화재가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대비하여야 한다. 특히 중요한 건 가정 내 '전기충전 안전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배터리 충전 시 주위에 잘 타는 물건을 치우고 베란다나 욕실, 금속함 등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옆으로 번지거나 대피에 우려가 없는 곳에서 해야 한다. 거실이나 현관에서 불이 나면 대피가 어렵다. 과충전이 가장 큰 원인이므로 충전이 완료되면 바로 전원을 분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올해 불조심 강조의 달 슬로건은 '손 닿는 곳에 소화기, 눈 닿는 곳에 대피도, 마음이 닿는 만큼 안전해집니다'로, 핵심은 마지막 구절에 있다고 본다. 안전에 대해 신경을 쓰는 만큼 화재로부터 안전해질 것이다. 생활 속 작은 불이 큰불이 되듯이 작은 예방 활동이 큰 안전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
11월은 쌀쌀한 겨울이 다가오는 시기인 만큼 가정 내 전기 난방기구 등 화재 위험이 급증하는 때이며, 화재 예방 분위기를 조성하고 화재 예방을 실천하는 시작점이다. 화재 위험 요인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미리 대비하고 예방하여 시민들과 함께 안전한 겨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부디 올겨울에는 대구 시민 모두가 화재로 인한 인명, 재산 피해 없이 따듯하고 안전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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