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기 서린 명산서 '산업화의 아버지' 박정희 태어나다
'황금빛 까마귀 노는 산' 금오라 불러…도선·무학대사 "왕 기운 서려" 예언
朴 생가 상모동, 산자락에 자리 잡아
◆상생의 산 금오산
목포에서 금오산을 만났다. 목포를 상징하는 유달산 자락에 마련된 영호남화합의 숲에 금오산 모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동서화합의 상징으로 유달산과 금오산이 손을 맞잡게 한 것이다. 2017년 당시 전라남도와 경상북도 및 목포와 구미시가 '영·호남화합'과 상생협력을 추진하면서 목포와 구미에 각각 상생의 숲을 마련하면서다.
팔공산이나 소백산, 주왕산이나 가야산도 아닌 '금오산'(金烏山)을 영남을 상징하는 '名山'으로 귀하게 대접한 것은 금오산이 '대한민국 산업화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도 유난히 금오산을 사랑했다. 대통령으로 재임할 때 수시로 고향 구미를 찾았고 구미공단을 둘러보고 금오산에 올랐다. 대혜폭포 앞엔 1971년 9월 금오산에 올라 깨진 병조각 등을 줍는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이 새겨진 기념비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연보호운동'이 시작된 장면이다.
금오산은 구미를 상징하는 대표적 명소다. 구미하면 구미공단이 떠오르는데 구미공단과 더불어 구미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데 금오산만한 곳이 없다. 해발 976m에 이르는 다소 높은 산이지만 금오산은 구미와 경북도민들에겐 친근한 '동네산'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금오산은 1970년 '대한민국 1호 도립공원'으로 지정돼 등산객 뿐 아니라 구미시민을 비롯한 수많은 '행락객'들이 주말마다 찾는 놀이터였기 때문일 것이다.
1,000m에는 미치지 않지만 곳곳에 절벽을서 만나는 등 '암산'(巖山)이자 '악산'(嶽山)으로 등반하기에 만만한 산은 아니다. 정상인 현월봉을 다녀 간 구미시민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은 그런 연유 때문이다. 중국 오악(五嶽) 중 허난(河南)성에 있는 숭산(崇山)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산세가 웅장하다고 해서 '남숭산'(南崇山)으로도 불렸다. 중국 선종의 창시자인 달마대사의 본산이자 소림사가 있는 그 숭산 말이다.
금오산이라는 이름은 고구려에서 이곳 도개에 내려와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파한 아도화상이 붉은 저녁노을에 비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황금 까마귀가 노는 산'이라는 의미로 금오산(金烏山)이라고 불렀다는 데서 유래한다. '금오'(金烏)는 예로부터 태양에 사는 세 발 달린 '삼족조'(三足鳥)로, 태양의 정기를 뜻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금오산이라는 이름에는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이라는 뜻도 내포돼있다.
금오산은 정상과 주능선이 구미에 자리 잡고 있으나 능선이 김천과 칠곡에 걸쳐 있는 큰 산이다. 남쪽 인동 쪽에서 산을 바라보면 흡사 누워있는 부처의 모습, 즉 '와불'(臥佛)형상으로 보인다. 신라 말 도선대사는 이 와불 형상을 보고 '장차 왕이 나올 것'이라는 예언을 했고 조선초 무학대사도 금오산에 왕기(王氣)가 서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야은' 길재를 향사하는 '금오서원'은 애초 이 금오산 자락에 있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자 조선 중기 현재의 선산읍 원리로 옮겨 재건했고 금오산 입구에 '채미정'을 지어 길재의 유허를 기리도록 했다.
◆박정희시대를 기억하는 금오산
박 전 대통령의 생가이자 현재의 박정희 기념관 등이 있는 '상모동'도 금오산 자락에 속해 있어 박 전 대통령은 금오산에 서린 왕의 정기를 오롯이 받아 대통령이 된 것으로 구미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금오산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다녀가거나 그의 시대를 기억할 수 있는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어 그와 그의 시대를 반추하는 공간으로 기억된다. 금오산 자락에 자리한 금오산관광호텔은 특히 박 전 대통령이 구미를 찾을 때마다 이용한 숙소로, 일반투숙객을 받지 않는 555호실은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사용한 비품 등 유품과 사진을 전시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구미 출신 재일교포 고 박진용씨가 호텔과 함께 1974년 설치한 금오산 케이블카를 지금도 금오산 관광호텔이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당시 서울 남산과 설악산 등지에만 설치한 케이블카를 구미국가공단을 지정, 근로자 등 유입인구가 급증한 구미시민을 위해 금오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한 혜안이 남다르다. 산업화의 역군들이 주말, 구미공단의 허파인 금오산에 쉽게 오를 수 있도록 한 국가지도자의 배려가 아니었던가 싶다.
박 전 대통령이 이 호텔에서 새벽 산책을 하다가 관광객이 버리고 간 빈병과 깨진 유리조각 등을 줍고 있는데 청소부가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가 박 전 대통령인 것을 알아채고는 '아이고 난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고 사시나무 떨듯이 떠니까 박 전 대통령이 불러 "이른 새벽 관광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주워 자연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라며 금일봉까지 주면서 격려했다는 감동적인 일화가 전해지는 금오산이다.
◆금오산 등반 절정 약사암
금오산 등반은 호텔을 지나 만나는 마지막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된다. 등산객은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산에 오르지만 가벼운 산행에 나선 행락객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해운사와 대혜폭포까지 가는 코스를 선호한다. 요즘 설치되는 케이블카들과 달리 금오산 케이블카는 정방형의 대형 케이블카로 박정희 시대의 '레트로' 감성과 낭만을 되살리는 금오산만의 자랑거리다. 최대 50여명이 탑승할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한데다 사방이 개방된 창으로 구미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탁 트인 전망이 압권이다.
금오산케이블카는 서울 남산 케이블카와 견주더라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금오산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금오산 산행 필수 코스로 추천한다. 요즘처럼 울긋불긋 '가을색'으로 단장한 금오산을 조망하는데 케이블카에서 바라보는 금오산 풍경보다 더 멋진 가을 금오산은 없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한 라면축제를 성황리에 개최한 '라면성지' 구미가 자랑하는 신라면 등 각종 라면을 맛볼 수 있는 매점에서 라면먹방 호사를 누릴 수 있다.
해운사를 지나 계곡길을 따라 걷다보면 장쾌한 폭포소리를 내는 '대혜폭포'의 장관을 만나게 된다. 대혜폭포에서 도선대사가 득도한 '도선굴'로 가는 길은 중국 오지에서 만나게 되는 벼랑길같은 낭떠러지다.
금오산을 오르는 내내 발아래로는 구미산업단지가 길게 펼쳐진다. 정상인 현월봉까지 가는 길이 꽤나 험난하게 느껴진다. 숨을 할딱거리면서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할딱고개'를 넘어서야 정상이 가까워진다. 그러고도 30여분을 더 올라야 도달하는 현월봉이다. 정상에선 구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고 구미를 감싸고 흐르는 낙동강이 보인다. 1공단에서 5공단까지 구미산업단지 전체 조망도 가능하다.
기암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지대를 세워 지은 약사암이 내려다 보이면 '천상'에 도달한 것이다. 중국 산시성(山西省) 헝산(衡山)에서 만날 수 있는 '현공사'(懸空寺)를 방불케 하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암자를 만나는 것은 금오산을 오르는 가장 큰 기쁨 중의 하나다. 약사암에서 구름다리로 이어진 종각도 여기서만 볼 수 있는 하늘 풍경이다.
약사암 북쪽 바위를 가득 채운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을 마주친다면 저절로 두 손을 맞잡아 합장하게 되는 경건함도 자연스러워 질 것이다.구미를 '거대한 뿌리'로 만든 금오산이다.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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