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서 선수·감독으로 모두 우승…"개인적 영광·불러준 구단에 감사"
"지난 한 달 '왜 어려운 선택했나' 후회도…선수들 신뢰에 힘냈죠"
시즌 도중 '소방수'로 프로축구 울산 HD에 투입돼 K리그1 3연패 임무를 완수한 김판곤 감독은 구성원 모두에게 감사를 전하며 26년 지도자 생활 중 최고의 순간을 누렸다.
김 감독은 1일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강원FC와의 K리그1 36라운드 홈 경기를 2-1 승리로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선수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축하한다"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가진 선수들이 침착하게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승리로 울산은 K리그1 3년 연속 우승을 확정했다.
울산은 7월 홍명보 감독이 우리나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떠나면서 리더십 공백에 빠졌는데,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이 빠르게 분위기를 수습해 왕좌를 지켜낼 수 있었다.
김 감독은 홍콩과 말레이시아 대표팀에서 오래 활동했고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등 행정가로도 이름을 날렸으나 K리그1 정식 사령탑으로 팀을 맡은 것은 처음이었는데, 3개월여 만에 '우승 사령탑'이 됐다.
특히 김 감독은 사상 처음으로 울산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하는 뜻깊은 기록도 남겼다. K리그 역사를 통틀어 소속팀이 다른 사례를 포함해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한 것 자체가 5명뿐이다.
김 감독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영광스럽다"면서 "26년간의 지도자 생활을 돌아보면 지하 10층에서 시작한 것 같다"고 감회에 젖었다.
"이런 기회가 오지 않았는데, 울산에서 불러준 것 자체가 감사하다. 좋은 스쿼드의 선수들과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제겐 영광"이라면서 "반드시 우승해야 하는 팀에서 중압감도 컸는데, 정말 기쁘다. 선수들과 코치진, 지원 스태프, 구단에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처음엔 기대도 되고 자신감도 넘치고 선수들과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좋은 면이 많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쉽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4위로 시작해서 선두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고 어려운 경험을 했다"고 울산에서의 시간을 되짚었다.
특히 "처음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감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지난 한 달 정도는 아침에 '내가 무슨 선택을 한 건가, 잘못된 선택을 했나, 왜 어려운 선택을 했을까' 후회도 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어 "결국은 스스로 싸워서 이겨내야 했는데, 선수들이 감독의 말을 신뢰해주고 따라줘서 가장 큰 힘이 됐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선 특별한 것이 없었다고 겸손해했다.
김 감독은 "처음 와보니 전임 감독님께서 잘 만들어놨더라. 선수들 성품이 좋고 직업 정신이나 팀 정신에서 흔들림이 없었다. 안정되어 있어서 제가 손댈 것이 별로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술적으로 이대로 가야 할지, 내 색깔을 내야 할지 고민하다가 내 색깔대로 가겠다고 결단할 때는 힘들었다"면서 "그 과정에서 선수들이 다른 경기 접근 방식으로 혼란스러웠을 텐데, 의심에서 시작해 확신과 흥미를 가져주는 과정이 행복했다"며 미소 지었다.
한 번 소집해 경기를 치른 뒤 다음을 준비할 기간이 있는 대표팀과 비교해 경기와 대회가 1년 내내 이어지는 클럽 생활에 대해선 "일의 양이 너무 많다. 13시간 이상을 일했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왕조의 시작'을 알린 울산은 내년에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에 나서는 것은 물론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도 앞두고 있다.
김 감독은 "클럽 월드컵에 나가는 것이 이 팀에 오는 것에 있어서 큰 동기부여였다. ACLE도 그렇고 준비를 잘해야 할 것 같다"면서 "클럽 월드컵도 무작정 들떠서만 나가기보단, 겨울에 얼마나 준비를 잘할지가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스쿼드의 '노쇠화' 지적에 대해선 "저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한다"면서 "90분 동안 경기를 통제하고 지배하며 실점이 가장 적고 매 경기 평균 11㎞를 뛴다. K리그에서 높은 수준의 체력을 보인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김 감독은 "나이보다는 생각이나 직업정신, 열정이 중요하다"면서 "팀 캐릭터에 맞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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