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목의 철학이야기] 붓과 칼

입력 2024-10-24 14:30:00

최재목 철학과 교수

최재목 철학과 교수
최재목 철학과 교수

"선생질에다가 글쟁이까지…분필이나 펜대 놀리는 거, 그게 다 남의 피고름 빠는 짓 아니 것냐" 이정록 시인의 '강'을 읽다 이 대목에서 잠시 머뭇거린 적이 있다. 평소 선생이나 글쟁이가 약한 존재라 느꼈으나 달리 보면 얼마나 군림해대는 자리인가를 생각했다. 함부로 손 놀려선 안 되는 일임을.

만해 한용운은 '당신을 보았습니다'에서 읊었다.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 지내는 연기(煙氣)인 줄을 알았습니다." 아울러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할까" 고민하다 결국 '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는 승려의 길로 들어섰음을 밝혔다. 만해의 생각대로라면, 문학, 학문, 법률도 펜대를 굴리며 종이 위에 잉크 칠을 해대는 일로 칼과 황금이라는 무력・권력에 항거해야 마땅하다. 이럴 땐 붓이나 펜이 칼보다 강해 보인다. 그러나 본디 붓은 칼보다 약하다.

붓이나 펜은 '문(文)'의 상징으로 '부드러움-문필-문인'을 뜻한다. 이에 비해 칼은 '무(武)'의 상징으로 '강함-무력-무인'을 뜻한다. 따라서 문화(文化)는 무화(武化)에 대립한다. 조선의 문인들은 무력을 꺼렸고, 문약(文弱)을 자처했다. 붓의 문화에서는 칼을 차고 다니는 것이 금기시되나 일본에서는 칼이 붓 위에 있다. 우리가 '선비'로 읽는 사(士) 자를 그네들은 '사무라이'로 읽는다.

우리나라에 붓보다 칼을 외친 위인이 있다. 단재 신채호다. 그는 '조선혁명선언'에서 '조선 500년의 문약한 정치'를 한탄하며 조선을 강탈한 '강도 일본'의 원수에게 칼과 총으로 맞서지 못했음을 가슴 아파했다. 그는 '을지문덕'의 전기에서 칼과 피의 무력 대응을 강조하고 영웅 출현을 기대했다. 나약한 붓의 문화보다 강한 칼의 문화를 지지했다. 나약하게 외세에 지배당하기만 하는 우리 역사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순신, 이태리 건국의 삼걸 등을 내세우며 우리 역사에 잠들어 있는 칼의 정신을 일깨우려 했다.

단재는 '분함을 적다[書憤]'라는 시에서 "허튼소리 본시부터 육경에 있지. 진시황 불 한번 잘도 질렀네. 한스럽다. 그날에 다 못 태운 것이…"라 했다. 유학자들을 나약하게 만든 유교 경전을 분서갱유 때 다 태워버리지 않은 것을 한스러워했다. '회포를 적다'라는 시에서도 인의도덕을 외치는 선비들을 비판하고 손에 칼 쥐고 휘두르는 쾌남아를 평가했다.

"부질없이 인의 외쳐 무엇하리오. 거적자리 도(道) 이야기의 옹졸한 선비. 손으로 칼 휘두름이 쾌남아라네. 성현이라 일컫는 이 그 어떤 자뇨. 두 글자 내세워 서로 속이네." 일제강점기, 더 거슬러 올라 임진왜란을 겪은 역사를 반추해보며 문약했던 조선을 떠올리고 있었으리라.

무기 수출에다 군사력을 드날리는 최근의 대한민국은 충격적 반전이다. 나약한 붓의 문화에서 강한 무의 문화로 바뀐 것에 대해 단재는 아마 기립박수 했으리라. "붓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칼을 갈고 갈아야 한다!"고 웅변했을지 모른다.

하기사 붓이라고 다 약한 것도 아니다. 붓도 붓 나름이다. 이것은 내 개인적 체험에 기인한다. 40년 전 가을, 나는 대학원을 그만두고 양명학을 공부하러 일본 이바리기현의 츠쿠바 대학으로 갔다. 가자마자 대학교 부근의 큰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공교롭게도 내가 맡은 일은 1968년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카와바다 야스나리 특별전의 한 부스에서 '이즈의 무희(伊豆の踊子)'를 반복 상영하는 일이었다.

나는 당시 일본 문학에 별 관심이 없었다. '이즈의 무희'는 그의 소설에 기반한 같은 제목의 영화였으나 큰 재미가 없었다. 어느 날 같이 근무하던 내 또래 아르바이트생이 잡담 중에 "한국에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나는 대답했지만, 순간 자존심이 엄청 상해 얼굴을 붉혔다. 왜 그렇게도 그게 부끄러웠을까. 이후 내 속에는 '우리나라는 왜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할까'라는 자괴감, 콤플렉스가 자리했다.

귀국한 뒤 대학에 근무하며 오에 겐자부로를 초청할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다. 몇 번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했다. 대신에 노벨상 후보에 오르내리던 무라카미 하루키라도 불러보고자 했으나 역시 실패. 그럴수록 노벨문학상 콤플렉스는 더 도졌다. '붓의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일본의 노벨문학상 뒤에는 당시 국제 사회 속에 갖는 경제적 위상, 번역의 힘이 작용하였다. 붓 뒤의 '칼의 힘'이다.

최근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솔직히 나는 너무 기뻤다. 여태까지의 콤플렉스가 씻겨나가는 통쾌한 순간이었다. 한편에서 한강의 작품이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이 있고, 심지어 노벨상마저 싸잡아 비난하기도 한다. 그건 그것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겠다. 하지만 일단 작가의 큰 성취에 박수를 보낼 일이다. 나아가 한국 문학 전체의 수준을 더 끌어올리는 데 열 올려야 한다.

상의 배후에 있는 번역의 힘, 국력,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겪어온 역사적 상처마저 붓의 큰 힘이 되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나약해진 한국의 인문학, 문사철을 부끄럽지 않게 했다. 밥값을 했다. 이에 대한 이의제기가 있다면 그런 여망을 갈고 닦아 다시 상을 받으면 될 일이다.

최재목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