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석 방송통신심의위원
'지옥에서 온 판사'라는 드라마가 인기다. 일일 드라마를 빼고는 전체 드라마 중 시청률 1위다. 14부작 중 8회 차인데 시청률이 13.6%이니, 소위 '대박'이라는 15%이상을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궁금해서 시청을 해 봤다. 잔혹한 폭력 장면이 지나치게 많았다. 여성 판사가 장시간 동안 직접 폭력을 행사하고, 칼로 정의를 '실현'한다. '폭력성이 높을수록 시청률이 오른다'는 그쪽 세계의 동의할 수 없는 공식에 충실한 것 같다. 그러나 왜 판사까지 본연의 임무인 판결봉을 던져 놓고 무기를 들고 폭력으로 범죄자를 단죄해야 할까? 왜 법 체제의 최종 수호자가 '사적 제재 미화'에 앞장서는 것일까? 법 체제 안에서 정의를 실현할 '권능'이 있는 판사가 말이다. 언뜻 납득이 되지 않았다.
사실 최근 '사적 제재'에 대한 열광이 심상치 않다. 법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홍길동식 이야기가 넘쳐난다. 이는 당연히 현실적 불만을 반영한다. 한마디로 법과 국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는 방증이다. 공권력과 법이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니 직접 스스로를 보호하고 범법자를 응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판사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법원은 국가와 사회의 '최후의 보루'다.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면 사회 혼란은 종식될 수 없다. 국가가 존속할 수 없는 것이다.
판사는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다. 법조인들 중에서도 전혀 다른 대접을 받는다. 그들은 권위가 대단하고 권위의식도 높다. 권위의식은 보통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신뢰 있는 권위의식은 존경의 원천이 된다. 법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앉듯이 일종의 아우라(거리감)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권위는 사라지고 권위의식만 남은 것 같다. 실망한 국민들은 심판 계급장을 떼고 판사를 난투장(亂鬪場)에 합류시킨다. 그들의 법복을 벗기고 손에 칼을 쥐여주며 비뚤어진 환호를 보낸다. 희화화고 조롱이다. 비정상적이고 해괴한 현상이다.
법원의 성지는 서울 서초동이다. 서초동에는 과거에도 시위가 많았다. 주로 검찰에 대한 항의였다. 하지만 요즘 서초동에는 법원에 대한 시위가 더 많단다. 우리나라 법원이 왜 이렇게 불신의 대상이 되었을까? '사법 정의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연한 '재판 지연'과 '형평성 상실'에 대한 불만이 분출된 것이다. '권리 구제'보다 더 중요한 '법적 안정성'이 무너진 것이다.
"송사에 휘말리면 3대가 망한다"고 했다. 소송 당사자는 많은 시간과 돈을 소모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가정은 피폐해진다. 소송은 재산적·정신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주는 만큼 가능하면 피해야 한다. 피할 수 없다면 가급적 빨리 끝내야 한다. 그런데 요즘 법원은 법정 시한도 지키지 않는다. 그러니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법정마다 판결이 제각각이다. 지역에 따라 다르고 판사에 따라 다르다. 그러니 재판부 배정이 로또가 되는 것이다. 전관예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 집안의 운명이 운과 재수, 재력에 달린 것이다.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판결도 마찬가지다. 방송계에서 대표적인 예를 들겠다. 법원은 MBC 방송문화진흥회의 임기가 다 된 이사들에게 어떤 '급박하게 보호해야 할 법익'이 있는지 설명도 못 한 채 가처분신청을 인용했다. 법 규정, 판례, 법 상식과 거리가 먼,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었다. MBC를 비롯한 공영방송 정상화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법원이 앞장서 국가적 혼란을 조장한 것이다.
조국(조국혁신당),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재판이 미흡하고 늦어져 사회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조국 대표는 2심까지 유죄 판결을 받고도 창당을 해 대표로 돌풍을 일으키며 국회의원이 됐다. 범법을 저지르고도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이 조국만은 아니다. 또 11월에 있을 이재명 대표에 대한 연이은 재판은 '법원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하는 국민적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법원은 어떤 정치적 여론에도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판사를 선출직으로 하지 않은 헌법 정신에 부응해야 한다. 또 어떤 판결을 내리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판결문을 내놓아야 한다. 이제 국가의 마지막 보루인 법원만이 대한민국의 정상성을 회복할 수 있다. 판사는 칼이나 정치적 언행이 아니라 법정에서의 판결로 존재의 정당성을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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