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한국 정치가 길을 잃었다. 무엇을 목표로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른 채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로 인한 민심 이반이 심각하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20%대 박스권에 갇혀 있다. 한국갤럽 9월 4주 조사(24~26일)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23%, 부정 평가는 68%로 집계됐다. 한국갤럽이 4월 3주부터 17차례 실시한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도는 단 한 번도 30%대에 진입하지 못했다.
추석 직전 조사에선 취임 후 최저치인 20%를 기록했다. 주목할 것은 정권을 떠받쳤던 핵심 지지층인 60대, 보수층, 영남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 더불어 장기간 20%대에 고착화된 지지율은 대통령 레임덕이 시작되는 위험한 시그널이다.
총선 이후 국민의힘 한동훈 새 지도 체제가 등장했지만 국민의힘 지지율과 집권당 역할 수행 평가에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 대표가 선출된 직후 한국갤럽 조사(7월 23~25일)에서 국민의힘 지지도는 35%로 더불어민주당(27%)을 크게 앞섰다. 그러나 이후 국민의힘 지지도는 지속적으로 추락했다.
9월 2주(10~12일) 때는 지지도가 28%로 민주당(33%)에 역전당했다. 전국 지표 조사(NBS, 9월 23~25일)에서는 국민의힘이 '집권 여당의 역할을 잘한다'는 응답은 겨우 22%로 지난 3월 조사 대비 13%포인트(p) 하락했다. 반면 '잘 못한다'는 부정 평가는 13%p 오른 72%였다.
이 모든 수치는 집권 세력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한동훈 대표 선출 다음 날 청와대 만찬에서 "한동훈 대표 외롭게 만들지 마라"고 했던 윤 대통령이 오히려 여당 대표를 외면하고, 독대 요청마저 거절했다. 한 대표도 대통령실과 교감 없이 '제3자 방식 채 상병 특검법 발의' '2026년 의대 증원 유예' 등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정작 문제 해결은 없고 오직 대통령과의 전략적 차별화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두고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여당이 정부의 주요 정책을 뒷받침해야 할 시점에 내부 갈등과 불필요한 이슈로 지지율을 스스로 끌어내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불협화음이 여과 없이 노출되고 있는데 어떻게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국정 운영의 동력을 확보하고, 민생을 챙길 수 있겠는가? 단언컨대 윤·한 갈등과 충돌이 계속되면 여권은 공멸한다.
야당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지난 총선에서 압승했지만 민주당 지지도는 국민의힘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민주당(32%) 지지도는 국민의힘(31%)과 거의 차이가 없다. NBS 조사에서는 오히려 민주당 지지도(26%)가 국민의힘(28%)에 오차 범위 내에서 뒤졌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이 무려 28%에 달했다.
중도층에서 무당층(33%)이 국민의힘(21%)과 민주당(24%) 지지보다 많았다.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강한지를 잘 보여준다. NBS 조사에서 민주당은 '제1야당의 역할을 잘한다'는 응답은 겨우 35%로 지난 3월 조사와 동일했다.
갤럽의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5%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얻은 득표율(47.8%)에 비하면 거의 절반 수준이다. 거대 의회 권력을 갖고 있는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 지지도가 예상보다 아주 낮게 나오는 것은 민주당이 '3무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는 없고 '이재명 사당화'만 있다. 미래는 없고 '탄핵과 특검'만 있다. 민생은 없고 '포퓰리즘과 개딸(팬덤)'만 있다. 민주당은 '기승전 김건희'에 집중하고, 의회 권력을 앞세워 수사기관을 압박하고 있다. 여하튼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뒤 이재명 일극 체제 구축, 탄핵과 특검, 포퓰리즘 입법에만 전념한 것이 지지도 정체·하락의 핵심 요인이다.
'여당은 내분, 야당은 방탄'으로 가면서 협치는 사라지고 정치는 실종되었다. 민주당의 입법 폭주에 대통령은 거부권으로 대응하는 '쳇바퀴' 무한 정쟁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길을 잃고 헤매는 대한민국 정치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오직 '협치와 공존'뿐이다.
정부 여당은 야당의 존재와 기능을 인정하고,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서 벗어나 자제하고 존중해야 한다. 정국 안정의 열쇠인 협치와 공존의 정치를 위해선 정치 지도자들이 포용과 소통의 리더십에 대해 성찰하고 실천해야 한다. 정치로 풀어야 할 것은 정치로 푸는 지혜와 자신의 지지 계층으로부터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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