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사건' 피해자 신상 누설 변호사… 알고 보니 여성단체 간부

입력 2024-09-25 15:26:27

의뢰 맡았지만 배우 신상 누설…法 "변호사 비밀유지 의무 위반"
변호사, 한국성폭력상담소 간부·현직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

영화
영화 '뫼비우스' 포스터

현직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이자 고 김기덕 감독의 여배우 폭행 사건을 변호하던 사단법인 한국성폭력상담소 간부 변호사가 자신을 홍보하는 영상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담당 프로듀서에게 피해자 정보를 누설해 200만원을 물어주게 됐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배우 A씨가 자신의 변호를 맡았던 B 변호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2심 판결이 지난 10일 확정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B 변호사는 A씨에게 200만원을 물어줘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B 변호사가 상고를 포기해 판결이 확정된 것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13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에 캐스팅됐다. 하지만 김 감독의 폭행 등으로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A씨는 김 감독이 영화 촬영 도중 뺨을 때리고 폭언을 했으며 대본에 없는 성적 장면 촬영을 강요했다는 이유로 지난 2017년 8월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B 변호사는 영화진흥위원회 공정환경조성센터 요청에 따라 A씨 변호를 맡았다. 또한 '김기덕 감독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2018년 11월까지 A씨에 대해 법률 지원을 했다.

그러던 2018년 10월 초 B 변호사는 한 공익재단의 수상자로 선정되자 A씨에게 "시상식장에서 상영될 영상 속에 내 도움을 받은 피해자 인터뷰 장면을 좀 넣으려 한다"며 출연을 요청했다. 구체적인 사건 내용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A씨를 안심 시켰다.

하지만 2018년 10월12일 B 변호사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촬영이 진행되기 전 담당 프로듀서와 촬영 계획을 논의하는 와중 "A씨가 김기덕 사건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렸다.

이를 알게 된 A씨는 2021년 10월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B 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1월 "A씨가 '김기덕 사건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제3자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었는데도 B 변호사는 변호사의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해 프로듀서에게 정보를 누설했다"며 200만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B 변호사는 항소했지만 2심 법원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고소한 김 감독은 폭행죄로 벌금 500만원 약식 명령을 받았다. 다만 강요와 강제추행치상,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선 검찰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했다.

B 변호사는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사단법인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간부를 맡아왔다. 최근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된 그는 여성가족부 자문위원과 국회 성폭력특별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