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수사권 3년, 지능범죄에 무기력해진 수사력

입력 2024-10-06 16:30:27

민간임대주택 사기사건, 8개월째 수사 중…추가피해 우려
경찰 불기소 200억 분양사기사건…검찰 직접 수사로 4명 구속
수사권 조정 후, 사기 횡령 범죄 수사 기간 크게 늘어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내 수사부서 기피 현상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사진은 대구경찰청 전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내 수사부서 기피 현상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사진은 대구경찰청 전경

# 지난 1월 대구 북구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조합의 조합원 200여 명이 시행사 대표 A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조합원들에 따르면 A씨는 2020년 시행사를 만든 뒤 북구의 한 동네에서 "임대주택 사업을 하겠다"며 조합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해당 조합에 가입, 돈을 주고 임대주택을 계약하려던 투자자들은 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아무런 진척이 없다고 호소했다. 사업은 모두 중단됐고 조합원 270여 명이 낸 계약금 180억원도 돌려받지 못한 상태라는 게 피해자들의 얘기다.

경찰에 고소하면 문제가 곧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피해자들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고소한지 1년이 다돼가는데도 이 수사는 경찰에서 여전히 진행중이고 피해자들의 고통은 커져만 가고 있다.

해당 민간임대주택 조합장 B씨는 "연초에 시작된 수사가 길어지면서 금전적 피해가 커지고 있다. 대출받은 돈을 사기 당한 조합원은 이자도 매달 내야 하고, 형사 사건이 늦어지면 손해배상 청구 등 민사소송도 미뤄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경찰에 고소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면서 허탈한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돈 떼먹은 사람을 빨리 잡아들여 서민들이 피눈물 흘려 번 돈을 빨리 돌려줘도록 하는 것이 경찰 임무 아니냐"고 했다.

이 사건의 처리가 길어지면서 추가 피해도 우려된다. B씨는 "문제의 시행사 대표가 다른 지역에서도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수사 기간 동안 피해 금액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니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검찰의 수사 개시 사건이 축소되면서 민생범죄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대구지검 전경
검찰의 수사 개시 사건이 축소되면서 민생범죄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대구지검 전경

# 지난 2월, 대구지방검찰청에는 20여명이 "검사님을 제발 만나게 해달라"며 검찰청 문을 두드렸다. 검찰이 사연을 들어보니 분양사기를 당해 경찰에 고소장을 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죄가 안된다"며 사건이 경찰에서 종결됐다는 것이었다. 피해자들은 "검찰이 나서서 제발 나쁜 사람을 좀 잡아달라"는 애원을 쏟아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전층 병원 입점이 확정됐다. 연수익 8%가 보장된다"는 얘기를 믿고 상가를 분양받았는데 알고보니 병원은 단 한곳도 입점되지 않았다. 피해자는 29명, 분양금액만 200억원이 넘었다.

지난해 3월 피해자들은 사기분양이라며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이지 경찰은 "의사들이 계약을 파기해 병원 입점이 무산됐다"는 분양업자들의 말만 믿고 불송치를 결정했다.

퇴직금 등 어렵게 마련한 돈으로 분양대금을 치른 피해자들은 사기분양 피해로 인해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잃게 됐다. 분양 피해자들은 장기간의 건물 공실로 인해 대출이자 등 40억원 넘게 큰 손해를 봐왔지만 경찰의 수사력은 무기력했다.

결국 피해자들은 검찰로 달려가 이의신청을 했다. 대구지검은 사건수사가 미흡했다고 보고 지난해 3월부터 4개월간 보완수사에 들어갔다. 검찰은 분양업자들이 제출한 임대차계약서에 의사들의 주소 등이 누락돼 있는 등 계약서가 부실한 정황을 발견했다. 계약서에 날인한 의사들을 일일이 불러 조사한 결과, 의사들의 승낙없이 허위로 작성된 임대차계약서임을 밝혀냈다.

검찰에 따르면 분양업자는 병원 입점이 되지 않자 분양을 위해 병원컨설팅 업자들과 짜고 의사면허증을 첨부해 허위로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한 것이다. 대구지검은 시행사 대표, 분양대행업자, 병원컨설팅업자 등 모두 4명을 사기,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 2021년 이후 두차례 진행된 무리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수사기간은 늘어나는 반면 형사공판 사건과 구속자는 줄어드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수사권을 뺏긴 검찰은 민생범죄 수사는 손도 못 대고, 수사 업무가 많아진 경찰들은 늘어난 수사업무로 인해 수사부서 기피현상까지 나타나는 등 검찰과 경찰 양쪽 모두 불편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이런 결과로 인해 범죄자들은 활보하고 범죄 피해자들은 피해를 구제받지 못하는 '사법정의의 부재현상'이 심화하는 중이다.

KOSIS(국가통계포털)의 경찰 범죄사건 처리기간 통계에 따르면 범죄사건에 대한 6개월 초과 처리기간 비율은 2019년 5.1%에서 2022년 13.9%로 증가했다. 특히 경제 범죄의 장기 수사가 대폭 늘었다.

2021년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수사개시 가능 범위가 축소되면서 형사공판 사건 및 구속인원 역시 급감했다. 구속 인원 또한 2019년 2만4천608명에 이르렀던 것이 2022년에는 1만명대로 크게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