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의 나무오디세이] 상수리나무 열매 도토리묵으로 '탱글탱글'

입력 2024-09-18 13:00:31 수정 2024-09-18 18:44:29

경북 포항시 북구 신광면 토성리 들녘 가운데 있는 포항시 보호수 상수리나무는 높이 18m, 밑동 3.6m의 몸피를 자랑하는 수령 300년의 노거수다. 나무 아래 운동시설과 정자가 마련돼 있다.
경북 포항시 북구 신광면 토성리 들녘 가운데 있는 포항시 보호수 상수리나무는 높이 18m, 밑동 3.6m의 몸피를 자랑하는 수령 300년의 노거수다. 나무 아래 운동시설과 정자가 마련돼 있다.

♪커다란 꿀밤나무 아래서

친구하고 나하고

정다웁게 얘기합시다

커다란 꿀밤나무 아래서

1970년대 초등학교에서 배운 동요 「커다란 꿀밤나무 아래서」다. '꿀밤나무'는 상수리나무를 일컫는 경상도 토박이 말이다. "상수리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는 상수리, 도토리나무의 열매는 도토리, 꿀밤나무에서 맺히는 열매는 꿀밤이다"라는 같은 열매를 두고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 우스개도 있다. 상수리나무라는 이름보다 꿀밤으로 묵을 쒀 먹기 때문에 꿀밤나무가 정겹고 부르기에 더 익숙하다.

추석이 지나니 도심의 공원 숲에서 꿀밤 떨어지는 소리가 잦아진다. 어느덧 가을이 왔음을 느낀다. 예전엔 도심, 시골 가릴 것 없이 이맘때면 배낭을 메거나 비닐봉지를 들고 도토리를 줍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발걸음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요새는 도토리를 다람쥐 등 야생동물들의 겨울 양식으로 양보하는 게 새 풍속이다. 도심에서 꿀밤 줍는 재미는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대구 도심의 범어공원이나 무학산의 오래된 상수리나무에는 커다란 헌데가 있다. 가을에 꿀밤을 줍던 사람들이 나무줄기를 큰 돌로 쿵쿵 찧으면 도토리가 떨어진다. 그때 충격으로 나무껍질이 벗겨지거나 패인 상처가 아문 자리다.

도토리는 떫어서 날것으로 먹지 못하지만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묵을 쒀 주린 배를 채웠던 대표적인 구황(救荒)식품이다.

상수리나무 열매.
상수리나무 열매.

◆흉년 구황식품 도토리묵

조선 시대에는 고을에 사또가 부임하면 가장 먼저 상수리나무나 굴참나무를 심었다. 마을 부근 곳곳에서 꿀밤나무를 흔히 볼 수 있 것도 그런 연유다. 나라에서는 흉년에 대비해 도토리를 수집해 저장해놓기도 했다. 전쟁 때는 상수리나무나 굴참나무 숲은 비상식량의 곳간 구실을 했다.

성종 때 시, 문장, 글씨에 뛰어나 홍문관 교리와 의성 현령을 지낸 유호인(俞好仁)의 「화산십가」(花山十歌) 중에서 일곱 번째 수(首)에 청량산 도토리가 나온다. 화산은 오늘날 경상북도 안동시를 다르게 부르던 옛 이름이다. 땅은 메마르지만 백성들이 농상(農桑)에 힘쓰고 흉년 대비도 빈틈없어 다른 고을이 다르지를 못하는데 그런 풍속을 읊었다.

저기 저 청량산을 바라 보게나

(噡彼淸涼山·첨피청량산)

산중에 도토리나무가 많지 않은가

(山中多橡木·산중다상목)

금년도 작년에 못지않게

(今年似去年·금년사거년)

주렁주렁 열매를 주을만하네

(離離實可拾·이리실가습)

온 가족이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돌아와

(擧家負戴歸·거가부대귀)

찧어 가루로 만들어 독에 쟁여두면

(舂屑甕中積·용설옹중적)

흉년인들 어찌 나를 죽이게 하겠나

(凶年豈殺余·흉년기살여)

도토리도 좁쌀을 대신할만하네

(猶可代粟粒·유가대속립)

<『속동문선』 권3>

겨울철과 춘궁기 비상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청량산에서 도토리를 주워 집에 돌아온다. 열매를 가루로 만들어 단지에 보관해두면 흉년에 식량으로 잡곡인 좁쌀을 대신할 만 하다고 했다.

대구 수성구 무학산 등산로에 아름드리 상수리나무들이 우거져 그늘을 짙게 이루고 있다.
대구 수성구 무학산 등산로에 아름드리 상수리나무들이 우거져 그늘을 짙게 이루고 있다.

◆상수리나무 이름의 유래

상수리나무의 이름과 관련 일제강점기 조선인 식물관련 학자, 실무자가 편찬한 『조선식물향명집』의 주해서인 『한국식물 이름 유래집』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상수리나무라는 한글 이름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문헌에 보이는데 한자명 '상실(橡實)'과 함께 기록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상수리나무라는 이름은 '상실'(橡實)과 '이'(접미사)와 나무로 이루어진 합성어로, 상실이나무→상슈리나무→상수리나무로 변화하여 형성된 이름이라고 이해되며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라는 뜻이다. 국어학자들도 한자 '상실의 음운변화 과정을 거쳐 '상수리'가 됐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임진왜란 때 피란 간 선조의 수라상에 항상[常] 도토리묵이 올랐다'는 말에서 상수리나무 이름이 비롯됐다는 민담도 있다. 이런 재미있는 어원설의 음운 변천 과정이 제대로 뒷받침 되지 못한다. 다만 선조 역시 조선의 다른 임금처럼 상수리를 구황 식량으로 비축하게 했다. 왜란 기간이었던 선조 26년(1593) 9월 9일에는 "진휼(賑恤)할 때에 『구황촬요』(救荒撮要)에 기록되어 있는 도토리·소나무 속껍질·푸성귀 등의 물품도 조치하도록 하라"라는 전교가 『선조실록』에 나오는데 이와 버무려진 민간의 스토리텔링으로 추측된다.

상수리나무 잎(왼쪽)과 비슷한 굴참나무 잎(오른쪽). 상수리나무 잎 끝은 굴참나무 잎보다 뾰족하고 잎 모양이 길쭉한 반면 굴참나무 잎의 뒷면은 앞면보다 흰빛을 띤다.
상수리나무 잎(왼쪽)과 비슷한 굴참나무 잎(오른쪽). 상수리나무 잎 끝은 굴참나무 잎보다 뾰족하고 잎 모양이 길쭉한 반면 굴참나무 잎의 뒷면은 앞면보다 흰빛을 띤다.

참나뭇과 참나무속의 낙엽활엽수인 상수리나무의 껍질은 회색이고 키는 약 20~30m까지 높게 자란다. 흔히 낙엽활엽수종의 참나무 무리는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6형제가 있다. 이들은 모두 도토리 열매가 열리고, 나무의 쓰임이 좋아 '진짜' 나무라는 의미로 구체적 이름보다 집안의 이름격인 '참나무'로 불렸다.

6형제 중에서 상수리나무와 가장 닮은 나무는 굴참나무다. 상수리나무 잎은 끝이 뾰족한 긴 타원형에 가까운 모양이며 잎 가장자리에 가시 모양의 날카로운 잔 톱니가 있다. 반면 굴참나무는 수피에 세로로 깊은 골이 파여 있어 '골참나무'라고 부른데서 이름이 유래됐다. 잎의 끝은 상수리나무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딘 타원형이고 잎의 뒷면에 흰빛을 띈다.

◆대구경북 보호수 많지 않아

상수리나무를 비롯한 참나무 6형제의 목재는 다양하게 쓰인다. 술통, 수레바퀴, 건축재, 가구재로도 많이 쓰였다. 요즘엔 고기를 굽는데 연기가 나지 않는 참나무 숯이 인기가 있다. 또 참나무류는 표고버섯 재배용으로 대량 벌채된다.

쓰임이 많기 때문일까. 대구경북에는 수백 년 묵은 상수리나무가 매우 드물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수리나무는 한 그루도 없고 300여 년의 세월을 지탱해온 시군 보호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포항시 북구 신광면 토성리 비학산 아래 들녘 가운데 있는 보호수 상수리나무는 높이 18m, 둘레 3.6m의 덩치가 큰 정자목에 속한다. 나무 아래 정자와 운동 시설이 갖춰져 있어 마을 주민들의 쉼터로 이용된다.

문경시 신기동 틀모산 저수지 둑에 서있는 수령 300년의 풍치목도 상수리나무다. 높이 15m, 사람 가슴 높이 둘레가 3m를 족히 넘길 정도의 노거수이지만 생육상태가 좋아 해마다 많은 꿀밤이 달린다.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상수리나무는 수령이 250여 년이며 청송 지질명소인 방호정 감입곡류천 변의 숲 가장자리에 서있다. 높이가 20m, 가슴높이 둘레 3m의 몸피를 자랑한다.

오래된 상수리나무는 많지 않지만 구릉이나 마을 뒷산, 야산의 비탈에는 미래의 보호수를 꿈꾸는 상수리나무들이 무수히 자라고 있다.

상수리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대구 수성구 야산.
상수리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대구 수성구 야산.

◆『장자』 상수리나무 우화

상수리나무의 한자는'櫟'(역)이다. 조선 후기 주희가 쓴 한자 어휘 사전인 『물명고』에는 상실수(橡實樹)라고 풀이돼 있다. 櫟은 '쓸모없다'라는 뜻도 있다. 저력(樗櫟)은 가죽나무와 상수리나무 재목(材木)을 가리키는데 아무 데도 쓸모없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의 「인간세」(人間世)에 무용지용(無用之用) 즉 '쓸모없음의 쓸모' 철학을 담은 우화(寓話)에 나온다. 어마어마하게 큰 상수리나무가 주인공이다.

목수 장석이 제나라로 가다가 사당 앞에서 크기가 수천 마리의 소를 덮을 만하고, 100아름이나 되는 큰 상수리나무를 쓸모없다고 여겨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갔다. 목수의 꿈에 나무가 나타나 말했다. "그대는 무엇에 비교해 나를 쓸모없다고 하느냐? 배나무, 귤나무, 유자나무 같은 것은 단맛 나는 열매가 열려서 큰 가지는 부러지고 작은 가지는 찢어진다. 자기의 재능으로 고통 받는다. 그래서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일찍 죽는다. 나는 쓸모없기를 바란 지가 오래다.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제야 뜻대로 되어 쓸모없음이 나의 큰 쓸모가 된 것이다."

사람들이 쓰임을 알지 못한 덕분에 나무가 낫이나 도끼날에 찍히는 화(禍)를 당하지 않고 되레 장수한다는 역설(逆說)이다. 인간을 존재 목적성보다 '쓸모'라는 도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간성 상실'의 위험성을 한낱 나무에 불과한 상수리나무에 빗대서 일찍이 경고한 게 아닌가.

◆고려 '역옹'(櫟翁) 이제현

고려에도 『장자』에 나오는 상수리나무에 빗댄 '쓸모없는 늙은이'가 있었다. 당대 학자이자 문신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만년에 스스로 지은 호가 바로 '역옹'(櫟翁)이다. 그의 역작 『역옹패설』은 이규보의 『파한집』 최자의 『보한집』과 더불어 고려 3대 시화집(詩話集)으로 꼽힌다.

일찍이 벼슬아치로 종사하다가 스스로 물러나 옹졸함을 지키면서 호를 역옹(櫟翁)이라 하였으니, 이는 쓸 만한 재목감이 되지 못함으로써 장수할까 하는 뜻에서이다. 또 늙었는데도 오히려 잡문(雜文) 쓰기를 좋아하여 그 부실한 것이 마치 비천한 돌피와 같아서 그 기록한 것들을 패설(稗說)이라 하였다고 적었다.

『역옹패설』 서문에 자신을 낮춰 '역옹'이라는 호를 쓰고, 자기 글을 '논에서 자라는 돌피'라는 뜻의 '패설'로 이름 붙였다고 겸허히 밝혔다. 줏대 없다는 평판을 익살로 대응하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며 주제에 제한을 두지 않는 글은 당대 파격이요 큰 울림이 되어 『장자』의 상수리나무 그늘처럼 후대에까지 드리워졌다.

나무칼럼니스트 chunghaman@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