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옥 수필가(대구보건대 교수)
"마음을 움직이는 강연은 어떤 걸까?"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수많은 강연을 접하고 들으면서 속으로 시간의 값을 떠올린다. 준비하는 입장도 여러 궁리가 있을 테고 받아들이는 측면도 가지각색일 터인데 매번 감정의 저울이 요동친다. 나는 강연을 듣는 입장이 돼 개인 생각을 풀어 본다.
강의 맥락과 상관없이 서두가 긴 경우 시간이 아깝다. 관심과 이해를 얻기 위한 도입이겠지만 정작 본론으로 들어가면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매듭을 맺게 되니 듣는 이는 본전 생각이 날 수 있다. 어떤 경우는 강연자의 업적이 길어져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이도 적잖다. 사실 어느 쪽이든 주어진 시간 내에 강연을 믿고 잘 따라 와주길 바라는 심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듣는 이는 속도감 있게 이끌어 주길 바랄 뿐이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같은 말투로 반복적인 이야기를 할 때 집중이 흐려진다. 기본적으로 주제를 끌고 갈 내용이 탄탄해야 하는 건 당연지사다. 그 위에 이해를 돕고 두뇌를 자극할 대안을 던져야 한다. 강의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자료 준비만으로도 꽤나 에너지 소모가 크다. 그럼에도 대상자의 시선을 잡아두기 위해서는 뉴스, 영상, 음악, 관련 교구 등의 다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고민은 다수를 대상으로 다양한 주제를 강연한 경력이 쌓이면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장착하게 된다.
강연의 말미에서는 주제를 향한 하이라이트를 기대하게 된다. 흔히 감동과 깨달음이 전달되면 완벽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대부분 주요 내용을 염두에 두고 서론과 본론을 이어가고 듣는 이의 의도를 파악하면서 핵심을 밝히면 뭉클해진다. 웬만큼 경력이 쌓인 분들은 익숙한 주제를 습관적으로 전하게 되는 무미건조함을 경계해야 한다. 청중의 의도는 생각지 않고 혼자만의 독무대가 펼쳐지는 것 역시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고 맥락 없이 감흥만 던져주면 지식이 사라질 수 있으니 곤란하다.
강연은 듣는 이가 평가한다. 말하는 자의 의도대로 전달됐건 아니건 이후의 몫은 고스란히 관중에게 돌아간다. 그렇다면 위 요소를 모두 갖추어 진행하면 감동이 전해지는 걸까? 사람의 기질이 제각각이듯 내 마음을 움직이는 말은 사람마다 다르다. 분명 성향 차이가 있고 같은 주제라 하더라도 개인의 경험치나 요구에 따라 만족하는 시점이 각각이다.
말하고 듣는 행위는 내면의 파도를 타는 것과 흡사하다. 양쪽의 기분이 크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개인의 컨디션은 사소한 것으로도 큰 파도를 불러 일으켜 전체를 쓸모없는 취급을 할 때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나타난다. 사실 듣는 입장에서 시시콜콜 평가하다가 막상 내가 말하는 입장이 되고 보면 결코 쉽지 않다. 다양한 요소가 말의 뜻을 왜곡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진솔하게 이야기를 펼치는 게 어렵다는 걸 느낀다.
뛰어난 강연은 청중이 만족한다. 강연하는 과정에서 듣는 이는 말하는 이보다 가슴으로 먼저 알아차린다. 그저 좋은 내용만 쏟아 놓는다고 훌륭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지식 없이 화려한 기법만 보여줘도 곤란하다. 분명한 건 탄탄한 내용을 기반으로 세심하게 청중을 살필 때 시간의 값을 따지기보다 그 가치를 느끼게 되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주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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