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공단 아닌 지역산업 거점…경제 활력·균형발전 기대감"
"우리가 어릴 때 봤던 울산·여천 공업단지와는 새로운 방식의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공장을 짓는 것이 아니고, 지역의 거점을 만들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안세창 국토교통부 국토정책관이 지난달 29일 경북 안동에서 기자들에게 안동과 경주 등 15개 신규 국가산단 후보지별 특징을 소개하면서 한 말이다.
정부는 지난해 3월 신규 국가첨단산단 후보지를 발표했다. '국가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중추 역할'이라는 목적은 종전과 같지만 자세히 보면 경공업이면 경공업, 중화학이면 중화학 공장이 몰려 있는 단순한 형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인근의 기존 산업단지·앵커기업·연구기관 등 산업거점과 연계를 고려해 각각 특성을 달리했다. 여기에 기업·근로자의 경제활동과 정주생활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문화·주거·상업·편의시설이 갖추어진 복합산단으로 조성해 지역발전을 위한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구상도 담겼다.
이날 김재경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지역균형본부장도 "LH는 신규 국가산단의 사업 시행자로서 이 사업이 신속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국토부, 안동시, 경주시와 협력하겠다. 그리고 신규 국가산단을 통해 지역 성장 거점이 마련되고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지역균형발전의 촉매제가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규 국가산단이 지방소멸의 시대에 지역경제를 살리고, 균형발전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말이 얼마나 현실성 있을지 궁금했다. 이에 매일신문은 경북의 신성장 동력이 될 현장 두 곳을 직접 살펴봤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에서 글로벌 백신의 수도로
"어제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도 현장을 다녀갔는데 주민들이 먼저 다가와 '언제 보상받을 수 있느냐?'고 물을 정도로 사업에 협조적입니다."
같은 날 오후 경북 안동 풍산읍 노리에서 만난 안동시 관계자의 말이다. 26가구 모여 사는 평범한 농촌 지역인 이곳은 오는 2030년 대한민국 바이오의약을 책임질 '안동 바이오생명 국가산단'(105만㎡)으로 탈바꿈한다. 이렇게 되면 무려 3천38억원의 생산유발효과, 1천264억원의 부가가치유발효과, 1천833명의 고용유발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함께 한 국토부와 LH에서도 "안동시의 입주수요 조사에서 172개 기업이 입주희망 의사를 표했다. 앵커기업이 될 곳 등 3개 기업과 입주 업무협약(MOU)을 맺었으며 52개 기업이 입주 의향을 밝히고 국토부와 논의를 진행 중일 정도로 안동 바이오생명 국가산단의 사업성은 현실성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렇게 충분한 수요 덕분에 정부도 올해 2월 예비타당성 조사 신속처리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6월에 신속 예타를 신청했다. 통상 절차와 비교하면 6개월~1년가량 사업 속도를 앞당기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말로 사업 성공 기대감을 높였다.
이는 안동 바이오생명 국가산단이 가진 지리적 특장점 덕분이라는 것이 LH의 설명이다. 실제로 후보지는 중앙고속도로 바로 옆에 있어 서안동 IC에서 바로 접근할 수 있었다. 여기에 올해 말 완전 개통이 이뤄지는 중앙선(청량리~부전역) 안동역과도 가깝다. 산단이 본격적으로 가동될 때쯤이면 대구경북신공항도 개항해 하늘길도 열린다.
여기에 약 10㎞ 떨어진 곳에 있는 '경북바이오 일반지방산업단지'도 있어 바이오·제약산업과 전·후방 산업, 지원기관이 연계되는 선순환 생태계 조성 시너지가 기대된다. 현재 경북바이오 일반산단에는 SK바이오사이언스, SK플라즈마, 한국콜마 등 산업시설과 경북 바이오산업연구원·국제백신연구소 안동분원 등 바이오의약 연구시설이 들어서 있다. 게다가 안동은 지난 6월 산업부로부터 바이오 분야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선정됐다. 인·허가 신속 처리, 산업 기반 시설 설치 및 입주기업 지원, 세액 공제 등의 혜택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이미옥 LH 대구경북본부 차장은 "기존 정주여건 활용도 가능한 데다 정부에서 진입도로를 국비 지원해 주고 안동시에서 비용을 일부 지원해 (토지) 분양가도 낮출 수 있다. 1평(3.3㎡)당 70만원 수준에서 부지 분양을 계획 중"이라고 설명했다.
◆천년고도에서 미래 에너지 혁신의 수도로
이튿날 오전 방문한 경주 문무대왕면(옛 양북면) 두산리. 아직은 울창한 나무로 뒤덮인 산지가 대부분이지만, 정부는 이곳에도 2030년까지 '경주 SMR(소형모듈원전) 첨단산단'(150만㎡)이라는 신규 국가첨단산단을 조성할 계획이다. 경주가 한국형 SMR의 생산, 수출할 수 있는 특화산단이 되면 무려 7천300억원의 생산유발효과, 4천410억원의 부가가치유발효과, 5천399명의 취업유발효과가 새롭게 생길 것으로 예측된다.
SMR은 부품을 공장에서 모듈형으로 생산해 현장에서 쉽게 조립할 수 있도록 설계한 출력 300㎿ 이하 원자로이다. 이는 한 달 4인 가구가 전기를 304㎾h를 사용한다고 가정할 때 4만7천가구가 쓸 수 있는 발전량이다.
SMR은 바다에서 대규모 냉각수를 끌어올 필요가 없어 입지 선정에 제약이 적고, 대형 원전 대비 냉각제 배관 파손으로 인한 방사능 유출 가능성이 작다. 게다가 초기 투자비가 적고 건설 기간이 짧아 자금회수도 빠르고 기술발전에 따라 경량화 및 발전용량 증가도 가능하다. 그 덕분에 SMR은 탑소중립 시대, 빅데이터 시대 등에 따른 전력수요 급증의 대안으로 꼽힌다. 향후 수소생산, 선박, 자동차 등에 다양하게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이유로 미국과 중국, 러시아도 기술개발 및 상용화 등 시장 선점을 위한 연구에 한창이다.
정부가 이처럼 각축장이 될 분야에서 '국가대표' 역할을 할 곳으로 '천년고도' 경주를 낙점한 배경에는 경주의 특수성이 있다. 경주를 중심으로 갖춰진 기존 원자력 시설과 연계해 신규 글로벌 SMR 제품 생산 허브 조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주에는 월성원전 등 6기의 원전이 있다. 여기에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를 비롯해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중저준위방폐장이 있고 현재 건설 중인 문무대왕과학연구소와 중수로 해체기술원까지 고려하면 명실 공히 국내 원자력 산업의 메카다.
사업을 추진 중인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울산의 선박용 SMR 등 인근 지역에서 SMR 잠정 수요도 다수 있어 GS, 두산 등 대기업을 포함해 150개 기업이 입주의향을 보이는 등 경주 SMR 국가산단은 순항을 예고하고 있다.
LH는 이달 중 경주시와 세부 사항에 대해 기본 협약을 맺고 연내 KDI 예타를 신청할 예정이다. 부지 분양가는 평당 100만원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인전 LH 대구경북본부 차장은 "사업 대상지에 민가가 한 곳뿐이고, 원자력 산업 연구개발(R&D)과 SMR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을 유치할 예정이라 인근 주민의 반대도 없을 만큼 주민 수용성이 좋다"면서 "변수라면 문화재 매장 가능성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화재 발굴 여부에 대해 "경주 북부와 달리 이쪽에서는 문화재 발굴 사례가 적고, 해당 지역 사전 문화재 조사에서도 특이 사항이 없었던 만큼 부지 조성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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