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62> 풍경의 혼이 깃든 낭만 음악,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

입력 2024-09-02 08:24:11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어둡고 신비로운 숲 이미지. 클립아트코리아
어둡고 신비로운 숲 이미지. 클립아트코리아

로마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를 탄 적이 있다. 고도가 높지 않아서인지 유럽의 아름다운 전원 풍경이 그대로 내려다보였다. 독일이 가까워지자 숲들이 나타났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철도도 숲을 뚫고 가는 여정이었다. 베를린에선 외곽에 위치한 그뤼네발트를 찾아 산책을 했다. 반을 타고 그뤼네발트 역에 내리자 자연 그대로의 끝없이 푸른 숲이 펼쳐졌다. 울창한 숲에서 선진국의 위용을 느꼈다.

낭만 음악은 개인적 체험과 신비성에 대한 동경을 기본 미학으로 한다. 여기에는 자연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카를 마리아 폰 베버(1786-1826)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는 풍경의 혼을 음악에 불어넣은 작품이다. 베버는 부친이 이끄는 순회악단과 여행을 다니며 일찌감치 독일의 자연환경과 전설, 민속예술을 접하고 삶의 다양한 국면들을 체험했다. 이것은 '마탄의 사수'를 탄생시키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마탄의 사수'는 숲을 배경으로 초자연적이고 환상적인 내용을 다룬다. 어둡고 울창한 숲은 힘과 정기를 불러일으키는 장소로 독일적인 감정의 원형이 되어 왔다. 베버는 숲의 마법적인 기운을 음악으로 그려내면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 자연 찬미라는 낭만주의 사상을 형상화하였다. 그가 시도한 마법의 세계와 신비로운 음향,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선/악의 대비는 '마탄의 사수'를 최초의 낭만주의 음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사냥꾼 막스를 향한 아가테의 지순한 사랑은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구원 사상을 보여준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보잘것없는 평민이라는 점은 독일 오페라 역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베버는 숲과 사냥의 정경, 악마를 표현하는 데 있어 음악 상징 기법을 처음 활용하였는데 후에 바그너의 지도동기에 영향을 미쳤다.

산림보호관의 딸 아가테를 사랑하는 막스는 사격대회에서 우승해야 그녀와 결혼할 수 있다. 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카스파르의 유혹에 빠져 늑대 골짜기에서 마탄을 얻는다. 막스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지만 마지막 1발은 악마의 뜻대로 날아가도록 약속되어 있다. 영주는 최고의 성적을 낸 막스에게 날아가는 흰 비둘기를 표적으로 쏘라고 명한다. 그 1발은 아가테를 명중시키도록 주문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총성이 울리고 마법의 탄환은 나무 위에 숨어 있던 카스파르를 명중시킨다. 막스는 영주에게 마탄을 얻게 된 경위를 고백하고 추방당할 위기에 놓이지만 숲의 은자가 그를 구해준다. 신에 감사하는 대합창으로 막이 내린다.

베버는 숲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냥꾼들의 삶과 숲에서 받는 감화를 박진감 있게 그린다. 4개의 호른이 연주하는 서곡의 주제는 신비로운 숲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며 오페라 전체의 분위기를 압축해 들려준다. 이 곡은 찬송가 선율로도 쓰였다. 호른의 깊고 그윽한 음색이 신을 향한 깊은 믿음과 겹치고 있는 것 같다.

1막에서 막스는 다음날 열릴 사격대회를 걱정하며 '숲을 지나고 들판을 건너'를 부른다. 그는 이 아리아에서 아가테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지만 자신감을 잃고 이내 절망감에 빠진다. '검은 구름이 햇빛을 가려도'는 3막에서 아가테가 부르는 카바티나(Cavatina, 서정적 독창곡)이다. 아가테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긴 채 노래를 부른다. 첼로와 호른의 저음 위에 실린 선율이 그지없이 아름답다. 숲속 사격대회장에서 부르는 '사냥꾼의 합창'은 널리 알려진 곡이다. 사냥꾼의 합창은 뿔피리 소리와 말 달리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리듬으로 사냥꾼들의 활기찬 삶을 들려주며 대회 분위기를 고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