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연구자
조선후기 문인화가 정수영의 해금강 '총석정'은 이전이나 이후의 여느 총석정도와 다르다. 금강산 명소도에서 기대되는 절경을 그린 그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선, 이인문, 김홍도, 이재관 등이 조물주가 빚어낸 천연의 웅장한 조각품이 즐비한 총석정을 그린 것과 달리 정수영은 이 일대의 지리 정보를 시각화하는 관점에서 총석정을 바라봤다.
그 결과 정수영의 '총석정'은 직접 가봤거나 또는 알려져 있는 총석정의 장관과 총석을 그림화한 화가의 솜씨에 대한 기대를 가볍게 비껴간다. 대신 이 그림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감탄을 배제하고 총석정을 그리면 이렇게 되는구나, 총석정이 자리 잡은 지역이 이렇구나, 선경(仙境)으로 여겨지는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 총석리 마을에서 배를 빌려 해안가를 돌아나갔겠구나 등등. 배를 타고 나가 바다 쪽에서 선유하며 둘러보는 총석정이 더욱 절경이라고 했다. 유람용 배의 차일 안에 두 사람이 앉아있다. 정수영은 1797년 친구 여춘영과 둘이서 70여 일간 금강산을 유람했다.
정수영은 어떻게 이런 시각을 가지게 됐을까? 그의 증조부가 백리척(百里尺)을 고안해 근대식 축척지도인 '동국지도'를 제작한 정상기였기 때문이다. '동국지도'는 정상기의 아들 정항령, 손자 정원림, 그리고 증손자 정수영으로 이어지며 수정되고 보완됐다. 정수영은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고 시문서화와 기행사경, 지도 제작 등으로 일생을 보냈다. 4대에 걸쳐 지도 제작을 이어온 하동 정씨 집안의 가학(家學)은 정수영의 진경산수에 국토 기록자의 시각을 더해줬다.
그림 한복판에 정수영이 써넣은 글은 그림 내용에 대한 감성적, 문학적 부연이 아니라 이 지역의 위치와 지세에 대한 건조한 보고다.
추지령에서 몇 리를 가면 서너 봉우리가 바라보이는데 꼭대기는 갓을 쓴 것 같고, 마주보고 서 있는 것이 마치 바다로 들어가는 문 같다. 이 일대는 긴 봉우리가 뱀처럼 구불구불한데 갑자기 끊어져 바다로 들어가다 우뚝 솟아나 둥근 언덕을 만든다. 정자는 그 위에 있다. 정자 1리쯤 못 미치는 곳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며 보이는 대로 대강 그렸다.
'由楸池嶺行數里 望見三四峰 頭若戴冠 對立如海門 一帶長巒 逶迤如蛇 斗絶入海 窿然圓峙 亭在其上 未及亭一里許 畧寫東望所見'
정수영은 이렇게 버드나무 숯으로 현장에서 사생해 온 초본을 바탕으로 2년 후 '해산첩(海山帖)'을 완성했고 '총석정'은 이 첩에 들어있다. 유람한 때가 가을이라 곳곳에 분홍빛으로 단풍을 슬쩍 표시해 놓았다. 지리학자이자 문인화가여서 가능한 정수영만의 독자적인 시각을 잘 보여주는 특이한 총석정도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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