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아주 특별한 여행

입력 2024-08-28 06:30:00

이동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소아과 교수.
이동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소아과 교수.

나는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익숙한 환경과 사람들을 떠나 새롭고 낯선 환경과 문화, 그곳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다. 여행이란 사람들이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고 탐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것은 또한 분주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지친 마음이 회복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성격상 조용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바쁘게 움직이고 여행지에서 이것저것을 보고, 맛집에서 꼭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핫플레이스에서 사진을 남겨야 하는 사람이다. 예전에 와이프가 이런 나를 보고, '여행을 수학여행식으로 다닌다'고 핀잔을 준 적이 있다. 그래도 타고난 천성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5월에는 아주 특별한 여행을 다녀왔다. 엄마와 단 둘이서 떠나는 제주도 여행.

그렇게 효자도 아니고, 부모님께 살가운 얘기도 잘 하지 못하는 나인데 어떻게 엄마와 둘이서 여행을 계획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제껏 살면서 엄마랑 둘이서 어디를 간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작년에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엄마가 많이 아프셨다. 감염성 척추염으로 한 달 동안, 그리고 두 번째는 인지기능장애로 입원했다가 퇴원하셨고, 마지막에는 2주 이상 원인을 알 수 없는 열이 있어 많은 검사와 치료를 하고 퇴원하셨다. 매일 전화를 드리고, 자주 찾아 뵙는다고 했는데, 시골에 계셔서 쉽지 않았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세 번씩이나 입퇴원을 반복하셨다. 그래도 자녀들이 걱정할까봐 꿋꿋하게 지내고 계신 것이 늘 안쓰럽게 보였다.

그래서, 가까운 제주도 여행을 제안하였더니 흔쾌히 허락하셨다. 걱정이 되셨는지, '며느리 괜찮으냐?'고, '허락은 받았느냐?'고 여러 번 물어보셨다. 제주도 여행을 가기 전, 어디로 갈 지 결정하는 것이 힘들었다. 원래의 내 스타일로는 분 단위로 계획을 짜서, 빨리빨리 다녀야 하는데 칠십 넘은 어른을 수학여행 같은 스케줄로는 다닐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에 다니는 것은 최소로 두 곳 정도만 하고, 낮잠 시간도 중간에 계획해 두었다. 첫날은 한림 공원과 저녁엔 시장 방문, 둘째 날은 우도 방문, 셋째 날은 스카이워터쇼, 자연휴양림 걷기로 일정을 최소화했다. 나 혼자 갔다면 하루 만에 소화할 만한 스케줄이지만, 엄마의 발걸음에 맞추기로 했다.

최대한 배려해서 일정을 짰는데도, 힘이 드신 모양이었다. 오후가 되면 숙소에서 낮잠을 2시간이나 주무셨다. 세월의 무게는 누구도 거스릴 수 없는 모양이다. 여행 중 가장 마음이 착잡했던 것은 숙소의 아침 뷔페가 너무 비싸다며 '밖에 나가서 아침을 먹자'는 엄마의 고집이었다. 3일 중에 마지막은 어떻게든 숙소 뷔페를 먹었지만, 첫째, 둘째 날은 차를 타고 나가서 아침식사를 했다. '전혀 부담이 안된다'고 해도 뷔페 금액을 보시곤 '도저히 입에 안 넘어간다'고 하시는 엄마 때문에 아침마다 실랑이를 했다.

3박 4일 동안 둘이서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추억을 공유하며 지냈다. 엄마는 엄마의 국민학교 시절, 여고생 시절, 젊었을 때의 시절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 주셨다. 참고로 엄마는 말이 많으신 분이다. 처음 들어본 얘기들도 있었고, 예전에 어렴풋이 들었던 이야기들도 있었다. 얼마나 말씀을 많이 하시던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엄마의 인생 여정을 떠올려보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시절의 엄마는 어떤 인생을 사셨을까? 인생의 마지막 장을 향해 나가는 엄마가 저미도록 가슴 아팠던 순간과 기억들은 다 날려보내고, 좋았던 기억, 행복했던 추억들로 그 빈자리를 대신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행 내내 입가에 맴돌았지만 용기 내지 못했던 한마디를 건네 본다.

"김옥진 여사님! 사랑합니다."

이동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