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60>유점사에서 날아온 아홉 용이 사는 구룡연

입력 2024-08-14 15:33:02 수정 2024-08-16 15:34:35

미술사 연구자

김홍도(1745~1806?),
김홍도(1745~1806?), '구룡연(九龍淵)', 비단에 수묵, 91.4×41㎝,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외금강 최고의 명승지 구룡폭포를 그린 김홍도의 '구룡연'이다. 백두산 천지연폭포, 송악산 박연폭포와 함께 3대 폭포로 꼽혔다. 김홍도의 선배 호생관 최북이 금강산을 유람하다 "천하 명인(名人) 최북은 마땅히 천하 명산(名山) 금강산에서 죽어야 한다"며 호기롭게 뛰어 들었던 명소 중의 명소가 바로 여기다.

아홉 마리 용이 산다는 이름은 원래 유점사 터에 있던 용들이 절을 지으려고 못을 메우자 이곳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구룡으로 상징되는 토착 신앙과 외래 종교인 불교의 갈등을 말해주는 전설일 것이다.

내외금강을 통틀어 가장 높은 폭포여서 무려 74m나 되고 구룡연은 깊이가 13m라고 한다.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면 발을 헛디딜까 아찔하고, 구룡연 골짜기로 들어서면 폭포수의 기세와 우렁찬 소리에 두려워져 못의 용들이 비웃을 것 같다고 했다.

임애우저어지족(臨崖憂齟齬之足)/ 절벽에 올라서면 발이 어긋날까 걱정하고

입동견벽역지혼(入洞遣辟易之魂)/ 골짜기에 들어서면 놀라 정신이 달아나니

항려택중구룡소인용잔(恒慮潭中九龍笑人庸孱)/ 못 속의 구룡이 못났다고 비웃을까 걱정이네

단원(檀園) 사(寫)/ 단원(김홍도)이 그리다

유람객들은 폭포와 못의 위용에 깜짝 놀랐다. 안내하는 스님조차 꺼릴 정도로 찾아가는 길이 험하고 바위가 미끄럽다고 하니 더욱 그랬으리라.

김홍도는 44세이던 1788년 금강산에 갔다. 정조의 하명으로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둘러보고 그림으로 그려 온 '봉명사경(奉命寫景)'은 50일이 걸린 긴 여정이었다. 이 스케치여행의 초본을 바탕으로 김홍도는 금강산 전모를 긴 두루마리에 그린 채색횡권본(彩色橫卷本)과 곳곳의 명소를 담은 화첩본(畵帖本)을 정조에게 올렸다. 직접 가 볼 수 없는 처지라 정조는 김홍도, 김응환을 대신 보내 그림으로 금강산을 유람한 것이다.

그러나 채색횡권본은 화재로 소실됐고, 해산도첩(海山圖帖)이라고 했던 화첩은 소재가 묘연해 정조 어람본은 알기 어렵지만 김홍도의 금강산도는 여러 점 전한다. 그 중 '구룡연'은 '금강산도' 8폭 중 한 폭으로 비단에 수묵으로 그렸다. 필선이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농담의 변화가 은근해 사생에 충실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 못 그리는 그림이 없었던 김홍도는 금강산 실경산수도 잘 그렸다.

여름날 폭포 구경 나서기가 쉬운 일은 아니어서 정약용의 8가지 피서법인 소서팔사(消暑八事)엔 안 나오지만 관폭(觀瀑)은 최고의 피서였다. 김홍도의 금강산 구룡폭포 장쾌한 물줄기로 관폭을 대신해 본다.

미술사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