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창] 3차 역사전쟁과 갓끈 이론

입력 2024-08-15 13:48:29

황태순 정치평론가

황태순 정치평론가
황태순 정치평론가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어제 8·15 광복절 행사가 두 동강이 났다. 이종찬 광복회장을 비롯해 야당이 대거 광복절 행사에 불참했다. 이종찬 회장은 김형석 독립기념관 관장의 임명을 취소하라며 윤석열 대통령을 압박했다. 이 회장은 김 관장이 이른바 '뉴라이트 역사관'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정부가 '건국절'을 제정하려 한다면서 즉각 취소를 요구했다. 그런데 이종찬의 주장은 사실과 달라도 한참 다르다.

김 관장은 누차에 걸쳐서 자신은 '뉴라이트 역사학자'가 아니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정부나 용산 대통령 비서실도 '건국절' 제정은 시도한 바도 없고 그럴 계획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종찬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심지어 "용산에 일제 때 밀정이 있는 것 아닌가"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허깨비를 보고 주먹을 휘두르는 차원을 넘어서 어떤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좌파들의 반미·반일 바람몰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일성의 '갓끈 이론'을 먼저 알아야 한다. 김대중 정부 이후 좌파들이 집요하게 전개하고 있는 '역사전쟁'의 도발도 사실은 '갓끈 이론'의 또 다른 버전이다. 이종찬과 야당의 김형석 공격은 전형적인 '마녀사냥'이자 '인민재판'이다. 본인이 아니라는데 마치 "네가 마녀가 아님을 증명하라"는 식이다. 건국절 제정은 꿈도 안 꾼다는데 "아냐 너는 그 꿈을 꾸고 있어. 자백해"라며 윽박지르고 있다.

'갓끈 이론'은 1972년 김일성이 직접 주창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김일성의 주장에 따르면 "남조선은 미국과 일본의 두 끈으로 지탱하고 있는 갓과 같다. 두 끈 중 하나만 끊어져도 갓은 바람에 날라 간다"는 것이다. 미국의 끈은 학생들의 반미시위로, 일본의 끈은 일제 강점기를 경험했던 계층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사상전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일성이 처음 갓끈 이론을 주창할 때만 해도 미국의 끈은 견고했고, 일본의 끈은 허약했다.

1980년 광주의 비극은 미국에 대한 시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신군부의 군 출동을 미국이 눈 감아줬다는 운동권의 주장이 조금씩 먹히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미국의 끈은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다. 그러니 당연히 일본이 주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오늘을 건설했던 주요 인사들이 일제 강점기 때 국내에서 활동을 했거나, 일본 또는 만주국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친일 프레임'으로 공격하기가 아주 편하다.

좌파들은 김대중 정부 시절 제1차 역사전쟁을 시도했다. 진보성향의 민족문제연구소가 앞장서서 '친일 인명사전' 제작에 돌입한다. 이어 노무현 정부 때는 정부 차원에서 관련법을 통과시키고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규명위원회'를 발족시킨다. 그 결과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는 4,776명의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고, 정부는 1,001명의 '친일파' 명단을 발표한다. 그 흐름에 '위안부 할머니' 문제까지 끼워 넣으니 '친일'은 곧 과거 '빨갱이'를 능가하는 낙인이 되었다.

1차 역사전쟁의 절정은 2013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방영했던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이다.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 기회주의자로,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는 내용이다.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르는 법.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맞대응했으나 탄핵으로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2차 역사전쟁은 너무나 싱겁게 우파의 완패로 결론 난 것이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우리 현대사는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김원봉의 의열단이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라고 강요당했다. 좌파들은 왜 '건국절'에 그토록 민감할까. 1919년을 건국절로 하자니 상해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북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좌파들은 1948년 '건국절'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곧 건국이라는 논리는 한반도의 정통성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종찬 광복회장의 생떼에서 시작된 김형석 관장 임명 철회와 있지도 않은 건국절 취소 요구는 다름 아닌 '제3차 역사전쟁'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건국절 논쟁, 먹고살기 힘든 국민에게 무슨 도움이 되나"고 한숨을 쉬고 있다. 하지만 좌파들의 집요함은 그리 단순히 넘어갈 문제는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