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결산] 활·칼·총의 민족! 금메달 13개 ‘파리의 기적’

입력 2024-08-12 06:30:00 수정 2024-08-12 07:22:12

2024 파리 올림픽 에피소드 10장면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26일 오후(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서 레이저쇼가 펼쳐지고 있다. 연합뉴스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26일 오후(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서 레이저쇼가 펼쳐지고 있다. 연합뉴스

'문화와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에서 100년 만에 다시 열린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세계 정세가 어수선한 데다 테러 위협이 고조되는 등 우려 속에서도 비교적 순탄하게 대회가 치러졌다. 센강을 활용한 개막식과 어설픈 운영, 기대 이상으로 선전한 한국 선수단 등 크고 작은 화제도 많았다. 이번 올림픽의 주요 이야깃거리 10개를 정리했다.

◆'신선하지만 선 넘은' 센강의 개막식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오른쪽 위) 위원장이 7월 27일 오후(현지 시간) 파리 현지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바흐 위원장은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에서 우리나라 선수단 소개 당시 발생한 오류에 대해 사과했다. 대한체육회 제공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오른쪽 위) 위원장이 7월 27일 오후(현지 시간) 파리 현지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바흐 위원장은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에서 우리나라 선수단 소개 당시 발생한 오류에 대해 사과했다. 대한체육회 제공

이번 개막식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경기장이 아니라 야외에서 닻을 올리는 시도는 신선했다.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강으로 각국 선수단이 유람선을 타고 입장했다. 강변엔 임시 관중석이 설치됐다. 센강 주변의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콩코르드 광장 등은 훌륭한 배경이었다. 비가 내리지 않았더라면 더 멋진 장면이 나올 뻔했다.

다만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 선수단을 프랑스어와 영어 모두 북한으로 잘못 불러 주최 측이 공식 사과해야 했다. 개막식 행사에서 여장 남자(드래그퀸) 공연자들이 '최후의 만찬' 속 예수의 사도로 등장, 종교계의 반발을 샀다. 다만 주최 측은 '톨레랑스(관용)' 정신을 표현한 거라 밝혔다.

◆'활·칼·총의 민족', 양궁·펜싱·사격의 위용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양궁에 걸린 금메달 5개를 싹쓸이한 한국 양궁 대표팀이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김우진, 이우석, 김제덕, 전훈영, 임시현, 남수현. 연합뉴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양궁에 걸린 금메달 5개를 싹쓸이한 한국 양궁 대표팀이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김우진, 이우석, 김제덕, 전훈영, 임시현, 남수현. 연합뉴스

이번 올림픽이 시작하기 전 대한체육회가 내세운 목표는 금메달 5개. 하지만 한국 선수단은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다. 효자 종목인 양궁에다 펜싱과 사격에서만 금메달 10개를 합작해내며 분위기를 띄웠다. 한국 선수단에게 '활과 칼과 총의 민족', '전투 민족'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이뤄낸 위업을 보면 그런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다.

양궁은 5개 전 종목을 석권했다. 여자 양궁은 올림픽 단체전 10연패, 남자 양궁은 3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남녀 개인전과 혼성전 역시 제패했다.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올림픽 3연패를 이뤄냈고, 사브르 개인전 금메달도 거머쥐었다. 사격에선 10대 오예진과 반효진, 21살인 양지은 등 '영건' 3인방이 금메달 3개를 보탰다.

◆침몰 딱지 떼버린 한국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7월 26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센강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을 태운 보트가 트로카데로 광장을 향해 수상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7월 26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센강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을 태운 보트가 트로카데로 광장을 향해 수상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회 전 전망은 밝지 않았다. 한국은 반세기 만에 최소 규모 선수단(144명)을 파견했고, 금메달도 5개가 목표였다. 축구, 배구, 농구는 출전권조차 따지 못했다. 반면 일본은 409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선수단을 꾸렸다. 목표로 한 금메달도 20개. 역대 해외에서 열린 올림픽 중 가장 많이 금메달을 따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일본 극우 인사는 언론에다 대고 '한국에게 파리 올림픽은 침한(침몰하는 한국)의 상징'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뚜껑이 열리자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은 금메달 13개를 따내며 역대 올림픽 최다 금메달 타이 기록(2008 베이징·2012 런던 대회)을 세웠다.

◆'여기서 수영을?' 센강 수질을 둘러싼 논란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개인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이 3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센강에 뛰어들고 있다. 연합뉴스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개인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이 3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센강에 뛰어들고 있다. 연합뉴스

센강에서 선수들이 수영하는 모습.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가 야심차게 내놓은 그림이다. 센강은 수질 오염으로 1923년부터 수영이 금지된 곳. 하지만 조직위는 여기서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중 수영 종목과 오픈워터스위밍(마라톤 수영) 경기를 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수질을 개선하려고 14억 유로(약 2조1천억원)를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려는 잦아들지 않았다. 실제 대회 일정도 차질을 빚었다. 철인3종에서 남자부 경기는 수질 문제로 하루 연기됐고, 여자 개인전에 출전한 벨기에 선수는 건강 문제를 들어 혼성 릴레이에서 기권했다. 9일(한국 시간) 오픈워터스위밍 남자부 경기로 센강에서의 수영도 끝이 났지만 여기서도 일부는 센강에서 헤엄치길 포기했다.

◆'우리가 톱스타' 올림픽 빛낸 NBA 선수들

미국 남자 농구 대표팀의 르브론 제임스가 11일(한국 시간) 프랑스 파리의 베르시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농구 프랑스와의 결승전에 출전해 슛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남자 농구 대표팀의 르브론 제임스가 11일(한국 시간) 프랑스 파리의 베르시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농구 프랑스와의 결승전에 출전해 슛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구촌으로 시야를 넓히면 최고 인기 스포츠는 축구다. 하지만 올림픽에선 초특급 스타들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들은 월드컵에 나선다. 대신 올림픽 농구에선 세계 최고 선수들이 모인다는 미국프로농구(NBA) 출신들이 대거 모습을 보인다. 이번 대회에서도 남자 농구는 가장 큰 인기를 끈 종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르브론 제임스, 스테픈 커리 등 NBA 각 팀의 에이스들이 미국 대표로 나섰다. 다른 나라에도 NBA 출신들이 여럿 포진했다. 미국은 NBA의 MVP 출신 니콜라 요키치가 이끈 세르비아를 간신히 제치고 결승에 올랐다. 상대는 NBA 신인왕 빅터 웸반야마가 버틴 프랑스. 미국은 프랑스를 98대87로 잡고 올림픽 5연패로 최강이란 자존심을 지켰다.

◆'여성이냐, 아니냐' 성별 논란 휩싸인 복싱

알제리 여자 복싱 선수 칼리프(왼쪽)와 대만 여자 복싱 선수 린위팅. 연합뉴스
알제리 여자 복싱 선수 칼리프(왼쪽)와 대만 여자 복싱 선수 린위팅. 연합뉴스

알제리 여자 복싱 66㎏급 대표 이마네 칼리프는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 선수다. 남성(XY) 염색체를 가진 게 문제였다. 상대였던 이탈리아 선수가 경기 도중 기권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탈리아 총리까지 항의하는 사태를 빚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 유명 인사들도 비난에 가세했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입장은 단호했다. 염색체만으로 성별을 규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결국 칼리프는 상대들을 압도한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난 여자로 태어났고, 여자로 살고 있다. 앞으로 올림픽에선 이런 공격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같은 논란을 일으킨 대만의 린위팅도 여자 복싱 57㎏급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반효진·김제덕·허미미, 대구경북을 빛내다

대구체고 2학년이자 한국 사격 대표인 반효진이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프랑스 샤토루 슈팅 센터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공기소총 10m 여자 결선에 출전, 금메달을 차지한 뒤 시상대에서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체고 2학년이자 한국 사격 대표인 반효진이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프랑스 샤토루 슈팅 센터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공기소총 10m 여자 결선에 출전, 금메달을 차지한 뒤 시상대에서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대회에 나선 한국 선수단 144명 중 대구경북 출신 또는 소속인 선수는 10명. 숫자는 적지만 이들의 맹활약 덕분에 한국 선수단의 사기가 크게 올랐다. 가장 눈에 띈 '깜짝 스타'는 대구체고 2학년인 16살 여고생 반효진. 사격 공기소총 10m에서 정상에 올랐다. 특히 우리나라 역대 하계 올림픽 100번째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대구 오성고 선·후배 사이인 구본길과 도경동은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예천의 아들' 김제덕(예천군청)은 선배들과 함께 남자 양궁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했다. 재일교포 출신이자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5대손 허미미(경북도체육회)는 유도 여자 57㎏급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선수 Vs 협회' 안세영을 둘러싼 갈등 고조

한국 배드민턴 대표 안세영이 5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 라 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낸 뒤 공동취재구역에서 자신의 부상과 관련한 심경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배드민턴 대표 안세영이 5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 라 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낸 뒤 공동취재구역에서 자신의 부상과 관련한 심경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셔틀콕 여왕' 안세영은 5일(한국 시간)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남녀 통틀어 단식에서 금메달이 나온 건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28년 만의 경사. 하지만 경기 직후 안세영이 "무릎 부상 후 대표팀의 대처에 실망했고, 대표팀과 계속 가긴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하면서 일(?)이 커졌다.

안세영의 '폭탄 발언'에 대한배드민턴협회가 반박하면서 논란은 더 확대됐다. 안세영을 무리하게 출전시키지 않았고, 부상 관리를 위해 한의사를 지원하는 등 노력했다는 게 협회측 얘기. 안세영이 선·후배 문화에 불만을 제기하는 등 특혜를 원했다는 주장도 폈다. 아직은 안세영이 말을 아끼고 있으나 불씨가 사그라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재용과 정몽규, 스포츠 무대서 대조된 행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7월 27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7월 27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12년 만에 올림픽 현장을 찾았다. 올림픽 공식 파트너사인 삼성전자는 참가 선수단 전원에게 최신 스마트폰을 지원했다. 시상식 최초로 '셀카'가 허용됐는데 이 스마트폰이 활용되면서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는 분석이다. 양궁협회장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한국 양궁이 맹위를 떨치면서 덩달아 주가가 올랐다.

반면 같은 현대가(家)인 정몽규 HDC 회장(정의선 회장의 5촌 당숙)이 맡은 대한축구협회는 연일 죽을 쑤고 있다. 감독 선임 논란 속에 이번 올림픽 출전권도 따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최근 정 회장은 변명으로 일관한 자서전을 출간, 책이 '라면 냄비 받침대'에 그칠 거란 비아냥까지 나온다. 긁어 부스럼이다.

◆'붐빈 코리아 하우스', 한국 문화 관심 반영

프랑스 파리의 도심 7구에 자리잡은
프랑스 파리의 도심 7구에 자리잡은 '코리아 하우스' 안마당. 각국 인사를 초청, '한국의 날' 행사를 열었다. 채정민 기자

한국 선수단의 선전 못지않게 프랑스 파리에서 일고 있는 '한류 열기'도 인상적이다. 한국 선수들의 경기에 해외 언론의 관심이 커진 건 물론이고, 파리 중심가인 7구에 자리잡은 '코리아 하우스'에도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곳에선 올림픽 기간 메달리스트 기자회견, 한국 홍보, 스포츠 외교 등 각종 행사가 진행됐다.

이번 코리아 하우스는 역대 최대 규모다. 전 세계인에게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린다는 목표 아래 복합 문화 공간으로 꾸몄다. 지난달 26일 문을 연 이후 닷새 만에 1만6천여 명이 다녀갈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우리 가요 K팝뿐 아니라 한식도 인기란다. 파리 시내 한식당 중 맛있다는 곳은 외국인들도 줄을 선다는 게 교민들의 얘기다.

파리에서 채정민 기자 cwolf@imaeil.com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이 만든 파리의 한식당 안내 지도. 현지인을 위해 주소가 프랑스어로 표기돼 있다. 채정민 기자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이 만든 파리의 한식당 안내 지도. 현지인을 위해 주소가 프랑스어로 표기돼 있다. 채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