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예술기행] 프랑스 파리

입력 2024-08-07 13:58:38 수정 2024-08-07 18:13:01

혁명과 예술의 도시, 거대한 올림픽 무대가 되다
명화 모나리자 소장 ‘루브르’…벨 에포크 작품 2만점 ‘오르세’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 자리…도시 전체가 역사·예술 그 자체
사랑의 찬가 울려퍼진 ‘에펠탑’…한국 양궁 선수들 눈부신 활약
나폴레옹 1세 안치 ‘앵발리드’…세계 스포츠 축제장으로 주목

2024 하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프랑스 파리의 상징물인 에펠탑.
2024 하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프랑스 파리의 상징물인 에펠탑.

◆파리에서 보낸 한 철

'파리의 지붕 밑(Sous Le Ciel De Paris), 베르시 다리에 앉은 한 사람의 철학자, 두 사람의 음악가, 몇 사람의 구경꾼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파리의 하늘 아래 센강은 흐르고' 십수 년 전 어느 해 가을 나는 파리에서 한 달을 지냈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 올림픽 개막식에서 드론이 비춰주는 파리 전경을 보며 일종의 노스텔지어를 느꼈다. 그러다가 문득 향수(鄕愁)란 이 단어를 10대 후반 음악방송 엽서를 보낸 후론 처음 떠올렸단 걸 깨닫고 무척 당혹스러워 했다. 겨우 한 달 그곳에서 보내놓고 울컥하다니, 이야말로 감정 과잉 아닌가.

올림픽 개막식이 시작된 파리 12구 오스테를리츠 다리는 리옹역 근처 숙소에서 식물원까지 산책할 때 내가 건너다녔던 다리다. 고대 올림픽 프레스코화가 새겨진 다리 난간 아래 물 커튼이 드리워지고 프랑스 국기 색상 연기가 피어오르니 그때 그 산책길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자연사박물관이 있는 식물원은 원래 17세기 왕실 정원이었다. 나무 우듬지가 특이하게 직사각형으로 전지된 가로수길과 화려한 가을꽃들 사이 날개를 반짝이며 날던 나비들은 지금도 안녕할까.

숙소 근처 리옹역이 포함된 파리 지하철 1호선은 1900년 개통된 내가 파리에서 가장 애용했던 노선이다. 샹젤리제, 오랑주리, 루브르, 마레 지구, 바스티유로 갈 땐 늘 타고 다녔고 어느 곳에서든 환승을 몇 번 하더라도 '집으로 가는' 차로 정겨웠다. 아, 그때 아끼던 에머랄드 목걸이를 1호선에서 잃어버린 기억이 난다. 분명히 타면서 차창으로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본 기억이 선명한데 내리고 보니 감쪽같이 사라져 엄청 놀라며 분노했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신기에 가깝던 그 소매치기 수법에 감탄마저 했던 우습고도 서글픈 기억이 난다.

루브르의 나폴레옹광장 유리 피라미드.처음에는 에펠탑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흉물이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현재는 소설이나 영화 촬영 장소로 각광받는 건축물이 되었다.
루브르의 나폴레옹광장 유리 피라미드.처음에는 에펠탑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흉물이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현재는 소설이나 영화 촬영 장소로 각광받는 건축물이 되었다.

◆루브르, 오랑주리, 오르세 그리고 수많은 미술관들

파리에선 미술관, 박물관이 모두 뮈제(Musée)로 표기된다. 거의 모든 전시품에 역사와 예술이 버무러진 때문일 것이다. 루브르는 동서 약 1㎞, 남북 300m의 샤를 5세가 지은 800년 된 고궁 미술관으로, 고대에서 19세기 중반까지 왕실 소유의 회화, 조각, 가구, 공예작품과 나폴레옹 1세가 원정국에서 가져온 수집품들 등 약 30만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세계 최대 규모로 야외 전시장과 지하의 수장고 바깥까지 가득 쌓인 소장품들을 보니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루브르의 나폴레옹광장 유리 피라미드는 1989년 미테랑 대통령의 '루브르 대개조'의 일환으로 중국계 건축가 에이오 밍페이가 설계한 것이다. 처음에는 에펠탑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흉물이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현재는 소설이나 영화 촬영 장소로 각광받는 건축물이 되었다. 리슐리외관, 쉴리관, 드농관에 전시된 작품들 앞에는 전 세계인들이 늘 떼 지어 넋을 잃고 관람하고 있다. 일주일 내내 루브르에 드나들면서 나는 그 운집한 관람객들 틈을 비집지 못해 결국 모나리자를 먼발치에서 일별하고 말았다.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걸작인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걸작인 '모나리자'

그에 비해 튈르리궁 한켠의 오랑주리는 참 여유로웠다. 정원 북쪽의 죄드 폼 갤러리와 대칭으로 서 있는 오랑주리는 입구부터 모네의 대형 수련이 타원으로 널찍하게 전시되어 있다. 자연 채광이 그대로 내리쬐는 홀에 걸린 수련들 외에 르느와르, 드랭, 세잔, 마티스, 피카소, 모딜리아니, 수틴 등의 작품도 가득하다. 어느 볕이 좋은 가을날, 숙소에서 걸어(달팽이처럼 생긴 비교적 좁은 파리는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튈르리 정원을 산책하고 오랑주리에 또 들렀다가 다시 분숫가 등받이의자에 누워 파리쟌느처럼 일광욕도 하다가 루브르로 천천히 걸어 간 적도 있다. 그 정원 위 말갛게 떠 있던 태양과 그 아래 줄무늬 등받이의자가 지금 아련히 떠오른다.

옛 3층 역사(驛舍)를 개조한 미술관인 오르세미술관.미술관에는 카르포를 비롯하여 앵그로, 모로, 샤반, 밀레, 르느와르, 마네, 드가, 모네, 고흐, 세잔, 로트렉, 쇠라, 뤼스, 고갱, 루소, 보나르 등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화가들의 작품이 인상주의 교과서 도판처럼 걸려 있다.
옛 3층 역사(驛舍)를 개조한 미술관인 오르세미술관.미술관에는 카르포를 비롯하여 앵그로, 모로, 샤반, 밀레, 르느와르, 마네, 드가, 모네, 고흐, 세잔, 로트렉, 쇠라, 뤼스, 고갱, 루소, 보나르 등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화가들의 작품이 인상주의 교과서 도판처럼 걸려 있다.

오르세미술관은 1848년부터 1914년까지 말 그대로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 유럽 백년 평화 시기)의 정점이던 그 시절 작품 2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옛 3층 역사(驛舍)를 개조한 미술관에는 카르포를 비롯하여 앵그로, 모로, 샤반, 밀레, 르느와르, 마네, 드가, 모네, 고흐, 세잔, 로트렉, 쇠라, 뤼스, 고갱, 루소, 보나르 등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화가들의 작품이 인상주의 교과서 도판처럼 걸려 있다. 부르델, 로댕의 조각과 아르누보 장식 예술품들 또한 즐비하다. 이게 뭐지, 억누를 길 없는 질투를 센 강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앉아 꼬냑을 섞은 에스프레소로 가라앉히고 한 번 봤던 작품들을 다시 보고 또 본다.

바이런과 릴케도 살았다던 비롱 저택을 개조한 로댕미술관, 마레 지구의 카르나발레, 칸딘스키, 레제, 미로, 자코메티가 즐비한 풍피두센터, 에밀 기메의 개인 동양미술품을 모은 기메미술관, 지도가 명확하지 않아 몇 번이나 되물어 찾아간 부르델미술관, 빅토르 위고의 신문 연재 삽화를 그리기도 한 들라크루아미술관 등 도대체 왜 그랬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많게는 대여섯 번씩도 들렀다. 다만 살레 저택을 개조했다는 피카소미술관은 수리 중이라 끝내 들어가 볼 수 없었다.

앵발리드 광장은 파리에서 기념비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이 이곳에서 양궁 전종목 금메달을 획득했다.앵발리드는 참전 용사를 수용하기 위한 군병원이었다. 현재는 프랑스 군사역사박물관과 각종 기념물, 나폴레옹 무덤이 있다.
앵발리드 광장은 파리에서 기념비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이 이곳에서 양궁 전종목 금메달을 획득했다.앵발리드는 참전 용사를 수용하기 위한 군병원이었다. 현재는 프랑스 군사역사박물관과 각종 기념물, 나폴레옹 무덤이 있다.

◆노트르담, 앵발리드, 콩시에르주리, 에펠 탑

며칠 전 파리올림픽 개막식 공연은 참으로 아방가르드했다. 메인 스타디움이 아니라 센 강으로 보트를 타고 환호하며 입장하는 각국 선수단을 보는 것과 다소 물의를 빚은 공연과 운영의 실수들은 차지하고라도 곳곳에서 다양하게 진행된 공연은 파리가 75억 인류의 거대한 무대가 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 나는 좋았다. 지난 2019년 화재로 큰 피해를 입은 시테 섬 동쪽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화면으로 볼 땐 마음이 아릿했지만 팡테옹에 안장되지 못한 나폴레옹 1세가 안치된 앵발리드가 우리나라 양궁선수들의 황금메달 밭이 된 것은 즐거웠다.

락 공연 중 창마다 마리 앙토와네트가 잘린 자신의 머리를 들고 있던 콩시에르주리는 콩코드광장에서 참수되기 전까지 그녀가 갇혀있던 감옥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의 행위에 비해 너무 가혹한 형벌을 받은 불쌍한 왕비인데 다시 소환된 모습을 보니 스산스럽기 짝이 없다. 이렇듯 해체되고 짜깁고 때론 분절될 정도로 파격적이던 공연이 에펠탑 셀린 디옹의 '사랑의 찬가'에 이르자 울컥 감동이 밀려왔다. 강직 증후군을 앓아 안타깝던 그녀가 달의 여신이 되어 다시 강림한 모습이라니.

어쨌든 올림픽은 칼, 총, 활로 우리 민족의 우수함을 과시하더니 이제 체육계 예상 순위를 훌쩍 넘겨 무더위와 온갖 세사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함빡 위로해주고 있다. 기쁘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내가 왜 파리에서 보낸 한 철에 그렇게 기를 쓰며 미술관을 찾아다녔는지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화양연화(花樣年華)의 한 시절이었음은 깨닫는다. 그나저나 파리올림픽 폐막식은 또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궁금한 시점인데, 내가 잘못 읽은 건진 모르겠지만 개막식의 디오니소스 공연은 최후의 만찬이 아니라 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을 패러디한 것이라 했다면 별 문제가 없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파리, 건투를 빈다.

박미영 시인, 대구문학관 기획실장
박미영 시인, 대구문학관 기획실장

박미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