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꿈꾸는 시] 박주영 '풀잎'

입력 2024-08-12 06:30:00 수정 2024-08-12 19:12:29

1995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문득, 그가 없다', '꿈꾸는 적막'
대구 출생, 한국시인협회·대구문인협회·대구시인협회·수성구문인협회 이사

박주영 시인의
박주영 시인의 '풀잎' 관련 이미지

〈풀잎>

아무도 모른다

내 가슴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연초록 가슴 부둥키며

돌 틈새로 목숨 내밀고 있는 건

누군가 불덩이 같은 가슴

비집고 들어와

머뭇거리지 않고

서성대지 않고

숨기지 않고

내 생애에 불을 댕겨

지울 수 없는 자국으로 남을까

남겨버리지 않을까

겁이 나는지

박주영 시인
박주영 시인

〈시작노트>

예사로 지나치는 풀잎들의 소리를 우리는 잘 듣지 못한다.

작은 돌 틈새에서 뽕긋 고개 내미는 저들을 봐 달라고 하는

작은 손짓인 것을 우린 잘 알지 못한다. 우린 기억한다.

2005년 양양에서 강풍으로 번진 산불이 낙산사로 옮겨붙으며

엄청 큰 화재로 시커멓게 남아 있는 사찰의 모습을.

무엇하나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은, 깡그리 휩쓸고 간 그곳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여기 있어요" 여기저기 고개 내미는

모습들에서 질긴 생명력에 감탄을 마다하지 않았다.

눈여겨보지 않는 골목길에서의 풀잎

오늘 한 번쯤 쪼그리고 앉아 풀잎들의 숨소리 한 번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