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재판 거래 의혹과 나라 같은 나라

입력 2024-08-08 13:08:36 수정 2024-08-08 18:43:00

박헌경 변호사

박헌경 변호사
박헌경 변호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아시아 국가 중 민주주의 정치가 가장 모범적으로 정착되고 G7에 필적할 만한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정치가 실종되고 있고, 국가의 법 제도는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으며, 나라는 빈사(瀕死) 상태에 빠지고 있다.

광주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을 거치며 1987년 제6공화국이 탄생한 이후 모범적으로 민주화의 길을 걸어온 법치국가 대한민국이 역대 어느 국회에서도 볼 수 없었던 반의회주의적 행태로 무법천지로 변하고 있다.

지난 5월 30일 문을 연 제22대 국회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다수결의 원칙 남용에 의한 입법 만능으로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과 '노란봉투법' 등 법률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민생은 외면한 채 개원 두 달 동안 몇 개인지도 헤아리기 어려운 특검안과 탄핵안을 발의하여 처리하였다.

민주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끌어내렸듯이 이재명 전 대표에 대한 유죄 판결 확정 전에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여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조기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여 정권을 탈환하는 것이 목표로 보인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어떠한 정치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김건희 여사 문제에 붙들려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나라를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데 결정적 단초를 열어준 사람이 있다. 상당수 소속 의원으로부터 민주당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고,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한 당원 90% 이상 지지를 받는 이 전 대표를 국회의원이 될 수 있게 하였고, 대선 후보로 출마가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사람이다.

바로 권순일 전 대법관이다. 이 전 대표는 2018년 지방선거 TV토론회 때 "친형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여 공직선거법 위반죄로 원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대로 확정될 경우 이 전 대표는 경기지사직을 잃고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대선에도 출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20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였다. 대법원장과 11명의 대법관이 참여한 전원합의체 논의 과정에서 권순일 당시 대법관은 서너 가지 '이재명 무죄' 논리를 펴면서 분위기를 주도했다. 권 전 대법관은 당시 "주요 선진국 법의 영문판을 봐도 허위사실 공표는 'publish'(출판하다)로 표기되어 있다"면서 "선거 출판물이 아닌 TV 토론 발언까지 이 법을 적용하기 무리"라는 논리를 폈고 이 논리는 이 전 대표 무죄 판결문에 그대로 담겼다.

이 과정에서 권 전 대법관은 '재판 거래' 의혹을 받고 있다. 권 전 대법관이 이 전 대표에게 유리한 판결을 선고해 주는 대가로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받았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대법원 판결을 전후하여 대장동 민간업자 김만배 씨가 권 전 대법관 사무실을 8차례 찾아갔고, 권 전 대법관이 퇴임 후 화천대유에서 고문료 1억5천만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권 전 대법관은 김 씨의 방문이 사적 용무였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대법관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민간업자를 사적으로 8차례나 만날 일이 있는지 의문이다. 재판 거래 의혹은 합리적 의심인 것이다. 나아가 권 전 대법관은 '50억원 클럽'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문재인 정권 검찰은 권 전 대법관 수사를 사실상 뭉갰고, 윤석열 정부로 정권 교체 후에도 검찰은 수사를 미루다 얼마 전 2년 반 만에 겨우 권 전 대법관을 피의자로 소환조사 했다. 그동안 법원도 대법원 재판 자료 등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두 차례 기각하는 등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검찰과 법원에 법조 카르텔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받는 장면이다. 그 사이 권 전 대법관은 대한변협의 자진 철회 요구를 무시하고 변호사로 등록한 뒤 대법원 사건을 수임하여 고액의 선임료를 받으며 활동하고 있다.

검찰은 이제라도 권 전 대법관을 피의자로 소환한 만큼 신속하고 공명정대한 수사를 진행하여 재판 거래 의혹을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야 할 것이고, 법원도 수사에 협조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할 때 검찰과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회복되고 나라 같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단초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