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시인 유품 정리 과정서 발견
수채화·유화 등 총 56점 작품 수록
스승 이중섭 화가의 화풍 엿보여
1950~60년대, 대구 문화예술의 중흥기인 이른바 향촌동 시대를 풍미한 문인묵객들과 많은 교류가 있었던 '깡패 예술가' 박용주의 미공개 화첩이 최근 발견돼 눈길을 끈다.
이번에 공개된 여러 권의 화첩에는 수채화 11점, 유화 1점, 수묵화 2점, 크레파스화 2점, 춘화도 40점 등 모두 56점의 작품이 담겨있다.
캔버스에 그린 유화 작품인 '여섯 아이'에는 천진한 감성이 스며 있고, 한지에 그린 수묵화 '불상'에는 먹의 농담과 선묘의 리듬이 예사롭지 않다. 산수화와 화조도 등의 수채화 작품도 눈에 띈다.
또한 풍문으로만 전해오던 다양한 내용의 춘화도도 실체를 드러냈다. 박용주의 춘화도는 더러는 사실적이고 투박한 필법으로 적나라한 성애(性愛) 장면을 토로하지만,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화면이 시사하는 파격성, 해학성이 주목할만하다는 평이다.
그는 달마대사와 여러 동물을 등장시켜 풍자성을 높였는가 하면, '부처와 여인'이라는 작품에서는 구도와 세속적인 고뇌 사이의 갈등을 표현했다. '흑태양(黑太陽)지대'라는 작품은 일제 731부대의 '마루타'를 원용한 풍속화로, 모종의 시사성을 지닌 듯 보인다.
일제강점기 민족 사학이었던 대구 교남학교 출신으로 유도를 잘했던 박용주는 일본 명치대(明治大) 유학시절 '명치대의 용'이란 별명을 지녔을 만큼 협객으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이단 발차기 기술이 뛰어나 일본 학생들도 두려워했다는 당시 유학생들의 증언이 있었고, 서울 종로의 우미관 앞에서 김두한과 맞붙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주먹 깨나 쓰던 박용주가 예술가가 된 것은 구상 시인과 이중섭 화가와의 인연 덕분이었다. 6·25전쟁으로 피란 문인과 예술가들의 기항지가 됐던 대구 향촌동, 부산 등지에서 구상 시인에게 시를 배우고 이중섭 화가에서 그림을 익혔던 것이다. 이에 관한 내용은 조향래 전 매일신문 논설위원이 펴낸 책 '향촌동 소야곡'에 잘 나와있다.
그래서인지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던 시인 박용주의 그림에서는 이중섭의 화풍이 엿보인다. 특히 그가 스케치풍의 춘화도를 잘 그렸으며, 그가 남긴 농염한 그림들을 누군가가 소장하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들이 나돌았는데, 이번 화첩 공개로 그 소문이 실증됐다.
한편 화첩을 공개한 사람은 4·19 혁명 시인으로 귀거래사(歸去來辭)의 삶을 실천했던 김윤식 시인의 장남인 김약수 경산학연구원장(전 경산예총 회장)이다.
김 원장은 "최근 경산 용성에 있는 고택 집수리와 함께 선친의 유품을 정리를 하면서 박용주 선생이 선친에게 준 화첩을 발견했다"며 "조만간 전시회를 통해 박용주 선생의 작품들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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