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7월 첫날 저녁 9시 반 경. 서울시청역 교차로 부근에서 자동차가 역주행으로 인도를 덮쳐 보행자들과 차량을 치면서 9명이 사망하고 가해자와 동승자를 포함해 7명이 다치는 큰 사고가 발생했다. 대통령의 긴급 지시가 떨어졌고 행정안전부 장관, 소방청장뿐만 아니라 서울시장과 서울경찰청장이 급히 현장에 방문하였다.
서울시는 재발 방지를 위해 인파가 많은 지역에 '보도용 차량 방호 울타리'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시민들은 반복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의 뒷북 행정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원래 정부 대응이라는 게 다 그런 거지!
자동차 급발진(sudden unintended acceleration)은 문자 그대로 운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차량이 갑작스럽게 가속을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자동차 급발진 이슈는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작년 한 해 급발진 의심 사고는 24건이며, 연평균 30여 건 정도로 사고가 날 때마다 시끄러운 쟁점이 되고 있다.
이번 사고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을 보면 역시나 졸속 대응의 모습이 보여 또 다른 의미에서 안타깝다. 여러 대안이 발표되고 있지만 사고의 핵심인 운전자와 자동차를 대상으로 한 방안을 살펴보자.
우선, 이번 사고로 고령자의 운전면허 갱신에 대한 이슈가 재점화되었다. 특히 사고 운전자가 68세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고령 운전자의 운전면허증 반납이라는 주장까지 등장하였다.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 개인적으로 연령층 간 시각이 완전히 다를 텐데 사회적 논의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도대체 국가는 왜 세금을 써 가며 공공기관을 만들고 적성검사를 하는가? 나이가 젊어도 검사에 통과하지 못하면 운전할 수 없고,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서 검사를 통과하면 운전을 허용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오직 나이로 운전 가능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전근대적인 발상이고 차별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필요한 것은 나이와 관계없이 검사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사고 발생 후 정치권의 반응은 예상한 그대로였다. 논란이 뜨거워지자 정치권은 소위 '페달 블랙박스' 설치를 의무화하는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들고나왔다. 지난 8일 이헌승 국회의원은 '자동차 페달 블랙박스 설치 의무화'를 담은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페달 영상기록장치(블랙박스) 장착을 의무화하도록 하고,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자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규제의 목적은 간단하다. 페달 블랙박스가 설치되면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차량이 멈추지 않고 질주한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되고, 반대로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를 혼동해 조작한 운전자의 실수도 밝혀낼 수 있어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규제는 늘 이런 식으로 사건 사고가 터질 때마다 어김없이 튀어나온다. 인기를 먹고사는 정치인들이 이런 기회(?)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들끓는 여론을 등에 업고 경쟁적으로 먼저 규제 법안을 발의하려고 한다. 이런 졸속 규제는 규제의 합리성이나 타당성 등을 따지지 않는다.
아니,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게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보건, 안전, 환경 등 국민의 삶의 질을 제고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규제 앞에서는 그로 인해 부담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늘 뒷전으로 밀린다. 페달 블랙박스 설치는 공짜가 아니다. 지금도 최소 10만원에서 많게는 50만원까지 비용이 드는데 이게 공식적으로 규제가 되어 안전 등의 인증 과정을 거치게 되면 사회적 비용은 더 커질게 불을 보듯 훤하다.
당연히 자동차 제조사에는 추가 비용이 든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비용은 고스란히 차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떠안는다.
규제는 해당 규제로 인한 국민 생활의 편익이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보다 클 경우에만 좋은 규제로 인정받는다. 편익 한쪽만 바라보고 비용을 무시하기 때문에 사회는 불합리한 규제로 넘쳐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불합리한 규제는 결국 개인과 기업의 창의성과 혁신을 옥죄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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