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녹아든 끊임 없는 질문과 고민의 과정…2024 다티스트 선정작가 이기칠 대규모 개인전

입력 2024-07-02 12:02:59 수정 2024-07-02 12:10:45

9월 29일까지 대구미술관

대구미술관 3전시실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대구미술관 3전시실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대구미술관 선큰가든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대구미술관 선큰가든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이 작품은 뭘 말하려하는걸까.' '작가는 어떤 의도로 이 작업을 했을까.'

미술 작품을 마주하는 관람객이라면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일 터.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24 다티스트(DArtist·Daegu Artist) 선정작가 이기칠의 개인전을 찾을 예정이라면, 다음의 얘기가 이러한 질문의 답을 찾는 데 조금의 물꼬를 틔어줄 것이라 예상한다.

이 작가에게 작업은 곧 '예술이 나라는 특정한 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나는 왜 이 예술 행위를 하는지', 그리고 '이 예술을 통해 창출하려는 가치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사유의 과정이다.

즉, 그의 작업은 '예술은 무엇인가?'보다 '예술이 나에게 무엇이 될 수 있는가?'라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과정에 있는 셈. 예술가 혹은 예술 행위에 대한 깊은 고찰의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이번 전시를 채우고 있다.

'다티스트(DArtist)'는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독창적이고 활발한 작업을 지속하는 작가를 선정해 이듬해 개인전, 연계 프로그램, 아카이브 등을 지원하는 대구미술관의 연례 프로젝트로, 올해 4회째를 맞았다.

2024 다티스트에 선정된 이 작가는 조각을 넘어 퍼포먼스, 회화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한국 현대 조각가 중 중요한 한 명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지난 30여 년 작업의 궤적을 돌아볼 수 있는 대표작과 신작을 아우르는 회화, 조각, 설치 작업을 통해 작가의 작품세계에 다층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우선 통창을 통해 그림 같은 외부 자연 풍광이 눈에 들어오는 3전시실에는 1990년대 '작업' 연작이 전시된다. 대구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그의 초기 작업은 자연석의 외형을 유지하면서 속으로 파들어가는 형태를 보인다.

2024 다티스트에 선정된 이기칠 작가. 대구미술관 제공
2024 다티스트에 선정된 이기칠 작가. 대구미술관 제공

최근 미술관에서 만난 작가는 "작업 초기에는 막상 뭘 해야하는지, 뭘 보여줄 것인지를 잘 몰랐던 것 같다"며 "창작과 조각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계속 던지며, 확신이 없었던 나의 생각에 대한 의심과 단단한 돌의 물리적 저항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돌파의 형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2전시실은 각 공간마다 다양한 시리즈의 작품들이 펼쳐진다.

특히 근작인 '연습' 연작의 변주들이 눈에 띈다. '관찰연습'은 그가 매일 1시간씩 자신의 의식을 관찰하며 기록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매 순간 머릿속을 지나가는 생각과 감정 등을 주로 질문의 형식으로, 검열하지 않고 적어나간다. 이는 단순히 글쓰기 행위가 아닌 나의 마음을 지켜보는 관찰 행위"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특히 평서문이 아닌 의문문의 형식으로 써내려가는데, 이는 스스로 뭔가를 규정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다. 규정은 곧 생각의 확장을 닫아버리기에 질문으로 가능성을 열어두며 파고 들어간다는 것. 그것은 곧 돌의 구멍을 뚫어나가는 초기 작업과도 이어지는 듯하다.

이쯤 되면 그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궁금해지는데, 막상 '관찰연습' 작품은 자세히 읽어보기가 어렵다. 앞뒤와 위아래를 바꿔 쉽게 읽을 수 없는 상태로 액자에 넣고, 그것도 모자라 관람객들의 평균 눈높이보다 훨씬 높게 달았기 때문이다. 순간의 감정들을 휘갈겨쓴 내 다이어리를 전시해야한다고 생각해보면 작가의 마음이 이해될 터.

'그림연습' 작품은 2018년부터 그가 동서고금의 명화를 모사하는 방식으로 이어온 작업이다. 그의 주관적 기준에 따라 선택된 여러 이미지들이 무작위로 조화롭게 중첩된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그가 궁리를 하다 택한 방식이 모사였고, 특히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겸재 정선의 작품에서부터 출발하게 됐다.

대구미술관 2전시실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대구미술관 2전시실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미완성인
미완성인 '그림연습' 작품은 전시기간 작가의 작업이 계속 더해질 예정이다. 이연정 기자

다만 이 작품은 미완성인 상태다. 작품 곳곳에 붙여진, 작업이 필요한 부분을 알리는 메모 테이프가 그것을 말해준다. 작가는 전시 기간 중 작업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전시장 한 켠에 작업 장비를 놓아두기도 했다. 그러니 전시장을 찾았을 때 리프트를 탄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더라도 놀라지 말길.

이외에도 2전시실에서는 작업실이라는 공간의 의미와 작업실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한 과정을 담은 장기 프로젝트 '작업실' 연작, 공간 개념의 외연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주' 연작, 이번 전시를 압축한 아카이브 형식의 작품 '작업에서 연습으로'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자연광이 내리쬐는 선큰가든에는 2013년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에 출품한 이후 줄곧 포항 환호공원에 전시돼있었던 '거주' 작품이 잠시 외출을 나왔다.

이 작가는 "사실 예술이 무엇인지는 책에도 잘 설명이 돼있다. 하지만 나에게 예술이 무엇인지는 규정되지 않았고, 그것에 대해 나도 답을 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규정되면 끝난다는 어떤 두려움이 있는 듯하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파고 들어가는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9월 29일까지 이어지며 전시 기간 도슨트 해설, 참여 이벤트 등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053-803-7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