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은 천상의 화원] 팔공산, 유월 여름으로 초대합니다

입력 2024-06-12 14:30:00 수정 2024-06-12 17:59:13

봄꽃처럼 눈에 띄지는 않아도 여름에도 수많은 꽃들이 제자리를 지키며 꽃을 피운다. 사진은 산수국
봄꽃처럼 눈에 띄지는 않아도 여름에도 수많은 꽃들이 제자리를 지키며 꽃을 피운다. 사진은 산수국

5월에 더우면 봄이 왜 이렇게 덥냐고 하지만 6월이 더우면 그러려니 한다. 이때부터는 스스럼없이 여름이라고 부른다. 모내기가 거의 끝났고 곧 장마철이 도래할 것이다. 이런 유월은 더워져도 계절을 타박하지 않고 비가 많이 와도 계절을 탓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곡식이 잘 되고 나무열매가 잘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키 작고 일찍 꽃핀 식물들은 이미 씨앗을 퍼트리고 다른 이들에게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아기 새들이 둥지를 떠나는 시기에 맞춰서 열매가 익는 식물들은 이미 다 떨어지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서서히 열매를 키우고 있다. 이런 계절이라고 열매만 흥할까. 다가오는 더위에 맞서서 꽃을 피우는 나무들도 많고, 그 아래나 또는 볕이 뜨겁게 드는 곳에서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꽃을 피우는 풀들도 있다.

봄에는 꽃색이 화사하게 피는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의 꽃이 봄에 피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여름에도 많은 꽃이 핀다. 봄꽃처럼 눈에 띄지는 않아도 수많은 꽃들이 제자리를 지키며 꽃을 피운다. 점점 더워지는 계절에 맞서며 열매를 키울 대비도 한다. 바로 그런 여름꽃들이 팔공산에서 초대장을 보내왔다.

"초대합니다. 수수한 꽃과 화려한 꽃이 한데 어울렸습니다. 깊은 초록색의 나뭇잎과, 더위와 비를 좋아하는 꽃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을 여름으로 초대합니다. 유월올림."

개다래 잎변화
개다래 잎변화

◆획기적인 변신, 개다래

다래와 개다래의 차이는 글자 한 자 차이다. 그 차이가 다래는 먹을 수 있지만 개다래는 생과일로 먹기는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개다래는 매운맛이 난다. 그렇다면 먹지도 못하는 개다래에게 어떤 매력이 있을까? 개다래는 아주 획기적인 변신을 한다. 도대체 이래도 되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개다래는 초여름이면 꽃봉오리가 새줄기에 달린다. 커다란 잎에 가려져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곤충의 눈에 띄어야만 자손을 남길 수 있는 운명의 개다래는 꽃 대신 잎을 전면에 내세운다.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서 일부의 잎을 흰색으로 덧칠한다. 햇빛을 받으면 광택이 나는 아주 화려한 흰색이다.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흰빛으로 곤충을 유혹하고, 또다시 달콤한 향기로 꽃이 유혹한다. 이중전략이 이쯤 되면 아무리 콧대 높은 곤충이라도 유혹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렇게 잎을 꽃으로 위장하여 식물의 고유성을 잠시 포기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곤충을 유혹한다. 이것이 개다래가 살길이다. 그렇기에 개다래의 획기적인 변신은 언제나 무죄다.

망개나무
망개나무

◆윤슬을 그리는 잎, 망개나무

망개나무라고 하면 사람들이 언뜻 떠올리는 것은 망개떡이다. 망개떡은 소를 넣은 찰떡을 망개잎으로 감싸서 찐 것이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여기서 망개잎은 청미래덩굴잎이다. 망개떡은 단오 즈음에 먹는 떡이다. 초여름이므로 떡이 쉬 상할 수가 있다. 청미래덩굴잎으로 감싸서 찌면 떡이 서로 달라붙지 않고 또 잎의 향이 떡에 배어든다.

더불어 잎이 함유한 타닌성분이 쉽게 상하는 것을 방지한다. 이렇듯 이름이 같아서 망개(청미래덩굴)과 망개나무가 더욱 헷갈린다. 청미래덩굴은 키작은 덩굴나무인 반면 망개나무는 아주 크게 자라는 나무다. 서로 판이하게 다른 나무인 것이다.

망개나무는 거칠 것 없이 뻗은 가지에 달리는 잎이 특히 매력적이다. 잎은 비스듬하게 아래를 향하고 가장자리가 물결친다. 물결의 모양의 따라 잎 표면에 햇살이 윤슬을 그린다. 그 모양이 얼마나 섬세한지 꽃보다 잎에 더욱 눈길이 머문다. 꽃은 초여름에 줄기 끝에 자잘하고 노랗게 피는데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특이한 잎과 아주 잘 어울린다. 특색있고 귀하게 자라는 망개나무가 팔공산에 살고 있다.

함박꽃나무
함박꽃나무

◆숲에 사는 목련, 함박꽃나무

목련속(마그놀리아, Magnolia) 중에서 가장 늦게 꽃이 피는 나무가 함박꽃나무이다. 목련이라고 하면 이른 봄에 풍성하게 꽃피는 백목련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함박꽃나무는 늦봄에 꽃이 피기 시작한다. 주변 환경에 따라 5월부터 7월까지도 꽃을 볼 수 있다. 함박꽃나무는 새순이 터지고 줄기가 자라면서 잎이 무성해진 후에 그 끝에서 하얀 꽃이 핀다.

비교적 드문드문 달리면서 줄기가 자라는 속도에 따라 꽃 피는 시기도 차이가 난다. 초여름인 요즘에 산에서 함박꽃나무를 만나면, 열매와 빛바랜 꽃과 막 피어난 꽃을 비롯해 꽃봉오리까지 모두 볼 수 있다. 꽃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풍기는 은은하면서도 청량한 향기는 돌아서려는 발걸음을 잡는다.

꿀벌이 노니는 동그란 꽃은 비스듬히 아래를 향하니 흰 차양을 친 그늘이 만들어진다. 그 꽃 속에 노는 꿀벌은 얼마나 좋을까. 혹시 산 아래에서 함박꽃나무의 꽃을 놓쳤다면 능선으로 올라서면 된다. 비록 꿀벌처럼 꽃 안에서 놀지는 못하더라도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환해지는 꽃이다.

모감주나무
모감주나무

◆황금비가 내려요. 모감주나무

모감주나무가 꽃이 피면 실로 더위를 감당하기 어려운 여름이 시작된다. 보통 한여름에 꽃이 핀다지만 6월부터 꽃피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나무를 가까이 심어두고 꽃을 감상한다. 덕분에 모감주나무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대구에도 장기동이나 내곡동 등 모감주나무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꽃 하나하나는 조그만하지만 그들이 모여 만개한 나무는 황금파편을 매달아 장식한 나무같다.

꽃이 질 때는 나무 아래 가득히 떨어진 꽃이 황금비가 내린 것 같다해서 황금비나무로도 불린다. 꽃이 지면 씨앗을 품은 푸른색 풍선같은 열매가 자란다. 단단한 씨앗을 염주를 만드는데 사용했다고하여 염주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는 여름이면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사실 모감주나무는 귀한 나무이다. 우리나라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군락지가 몇 있고, 동아시아를 벗어나면 보기 어려운 나무가 모감주나무다. 여름날의 더위를 무릅쓰고 한 번쯤 그들이 내린 황금비를 맞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

산수국
산수국

◆산에 사는 수국, 산수국

산수국은 산에 사는 수국이다. 이름처럼 물을 좋아하지만 물가에 살기를 고집하지 않는다. 습도가 어느 정도 유지되는 산지 숲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보통 비가 오거나 날씨가 많이 흐리면 꽃을 오므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산수국은 비가 오면 오히려 생동감이 넘친다. 그래서 장마철에 꽃이 핀다. 6월 중하순부터 7월에 걸쳐 피는데 색이 서로 다른 경우도 있다. 일률적으로 같은 색으로 피지 않아서 더욱 눈길을 끄는 꽃이다. 토양의 산도가 산성으로 갈수록 파란색을 띠고 중성으로 갈수록 분홍색이나 연한 보라색을 띤다.

또 산수국은 꽃이 두 가지다. 하늘을 향한 편평한 꽃차례 가장자리로는 예쁜 꽃잎이 발달 되어 있는데 이는 생식능력이 없는 무성화(無性花)이다. 곤충을 유인하는 임무를 맡은 꽃이다. 무성화 안쪽으로 자잘한 꽃술이 솟아 있는 부분이 생식능력을 가진 진짜 꽃으로 나중에 열매를 만든다. 곤충을 유인해서 꽃가루받이를 하고 나면 무성화는 임무를 완성한 셈이다. 이후 그 화사한 가짜 꽃은 서서히 스스로 돌아눕는다.

그 꽃이 뒤집어지기 전에 보슬비 내리는 팔공산 어느 숲길에서 파르스름한 산수국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김영희 작가
김영희 작가

글 사진 산들꽃사우회 (대표집필 김영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