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떠날 수 있다" 기업 이동 활성화 '세제 혜택'이 핵심

입력 2024-06-09 18:30:00 수정 2024-06-10 08:21:43

테슬라·삼성전자 유치한 美 텍사스 오스틴시 막대한 경제 파급효과
아마존 플로리다주 이전, ASML 네덜란드 떠나려고 하자 정부 긴급대책
한국 비수도권 경제 활성화 위해 법인세 파격 감면 혜택 필요

삼성전자 텍사스 공장. 연합뉴스
삼성전자 텍사스 공장. 연합뉴스
미국 텍사스 오스틴 테슬라 기가팩토리. 연합뉴스
미국 텍사스 오스틴 테슬라 기가팩토리. 연합뉴스

지역 산업계를 이끄는 앵커기업(선도기업)은 지역 산업 생태계 조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이에 각 지자체는 앵커기업을 유치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비수도권으로 이전하려는 기업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산업계에서는 세제 완화 혜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법인세가 '뜨거운 감자'다. 지역균형발전을 목적으로 법인세 감면을 내세우고 있으나, 기업 이전을 촉진하기 위해 더 파격적인 혜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 유연한 과세제도 운영을 통해 기업 분산을 유도할 수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미국, 유럽 등에서는 법인세 제도를 고려해 기업이 본사를 이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 텍사스 오스틴에 유망 기업이 모인 이유

테슬라는 현재 텍사스주 오스틴에 본사를 두고 있다. 테슬라는 빅테크 기업이 다수 밀집한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시작했으나 지난 2021년 본사를 옮겼다. 당시 본사 인력은 약 1만명으로 주거지를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라 부담이 컸다. 게다가 기술 발전의 중심지이자 자본 조달에 용이한 것은 물론, 우수한 인적 자원이 모이는 실리콘밸리는 떠나는 모험을 감행하는 데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리스크를 감수하고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법인세'가 있다. 오스틴은 지방 법인세 0%라는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부여한다. 이에 반해 캘리포이나주는 미국 내에서도 법인세·개인소득세 수준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경제 매체 인사이더는 머스크가 집과 사업체를 텍사스로 이전함에 따라 절약하는 세금이 25억 달러(약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테슬라는 텍사스 오스틴으로 이전한 뒤 텍사스에서 사업 기반을 계속 확장하고 있다. 머스크 CEO는 "텍사스 기가팩토리 투자 규모는 시간이 지나면서 100억 달러(11조8천600억원) 이상이 될 것"이라며 "최소 2만개의 직접 일자리와 10만개의 간접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도 미국 현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거점으로 오스틴을 점찍었다. 삼성전자 오스틴 생산법인(SAS)이 발간한 '2023년 경제적 영향 보고서'를 보면 현지 파운드리 건설로 창출된 경제 효과는 268억달러로 추산된다. 이는 삼성전자 진출 이전인 2021년(63억달러)과 비교하면 4배 이상 늘었다.

방진복을 입은 윤석열 대통령(왼쪽부터)이 지난해 12월 12일(현지시간) 벨트호벤 소재 ASML 본사에서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과 함께 클린룸을 방문, 크리스토프 푸케 ASML 최고사업책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 좋은 환경 찾는 기업들 "언제든 떠날 수 있다"

기업들이 더 좋은 환경을 찾아 성장의 기반이 된 도시를 떠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심지어 해외로 이전을 검토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는 30년 가까이 지내던 시애틀을 떠나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로 본사 주소지를 옮겼다. 법인세가 낮고 소득세가 없는 지역으로 절세를 위해 이전을 선택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베이조스는 법인세를 물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부유한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면 물가상승을 낮출 수 있다는 조 바이든 대통령 주장에 대해 베이조스는 "방향이 틀렸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지방세연구원 제공
방진복을 입은 윤석열 대통령(왼쪽부터)이 지난해 12월 12일(현지시간) 벨트호벤 소재 ASML 본사에서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과 함께 클린룸을 방문, 크리스토프 푸케 ASML 최고사업책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유일의 극자외선 노광장비 제조 기업인 ASML의 경우, 해외 이전을 시사하자 네덜란드 정부가 25억유로(약 3조7000억원)를 투입하는 긴급 대책을 시행하기도 했다. 본사 소재지인 에인트호번이 전력, 정주여건 등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기반 시설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고숙련 이주노동자에 대해 세제 혜택을 없애자 인력난이 가중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ASML은 첨단 반도체 장비 공급업체 중 절대적인 영향력을 자랑하는 기업이다. 6일(현지시간) 기준 ASML의 시가총액은 3천770억유로(약 561조1천300억원)를 넘어섰다. 세계 최대 명품 브랜드인 프랑스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을 제치고 유럽 전체 2위에 해당한다. ASML이 지난해 낸 세금은 25억7천300만유로로 추산된다. 정부가 ASML을 위해 쓰겠다는 돈보다 1년 동안 낸 세금이 많은 셈이다. 해외 이전 시 막대한 손실이 예상된다.

매출 1천억원 이상 기업 분포도. 통계청제공
한국지방세연구원 제공

◆ 비수도권 세제 감면으로 투자 촉진해야

국내에서도 과감한 세제 감면 혜택을 통해 기업의 이동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2022년 기준) 매출액 1천억원이 넘는 기업 과반 수가 수도권에 포진하고 있다. 수도권 쏠림 현상을 해결하고 실제 기업의 이동을 촉진하려면 보다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지방 이전을 위한 조건으로 법인세율 인하를 꼽는다. 실제 한국지방세연구원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투자지역을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1순위 요인을 묻는 문항에 대해 기업들은 '교통 등 기반시설'(17.3%), '관련업체 집적 및 네트워크'(17.3%), '조세 요인'(15.7%) 순으로 조사됐다.

특히, 비수도권 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조세정책으로 법인세율 인하(43.1%)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취득세·재산세율 인하(12.2%), 법인세 투자세액 공제(10.7%), 산업단지 취득세·재산세 감면(6.6%)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지방세연구원 관계자는 "균형발전 세제가 수도권 집중 문제에 대응하는 상징적인 제도에 그치지 않고 실효성을 갖도록 정책대상을 조정하고 지방투자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등의 방안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권태우 공인회계사는 "수도권 과밀 해소를 위해 이전 기업을 위한 혜택을 여러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며 "기업은 1차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더 나아가 사회적 책임도 있다. 고용을 창출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기업에 대한 지원은 넓게 보면 지역 전체를 위하는 일로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매출 1천억원 이상 기업 분포도. 통계청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