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세계사] 22대 국회 개원, 고대 그리스로마 의사당 건물 역사

입력 2024-06-05 13:30:00 수정 2024-06-05 18:18:40

민주주의 상징은 '의사당' 아니라 성숙한 '국회의원' 이다
영국 의회민주주의 전통 '웨스트민스터 궁'
직사각형-반원형-원형 다양한 형태 구조
임시정부 후 100년 의회 역사 22대에 기대

웨스트민스터 궁. 오른쪽 시계탑은 시공 감독 벤자민의 이름을 따 빅벤으로 불렸으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2016년 엘리자베스 타워로 개명.
웨스트민스터 궁. 오른쪽 시계탑은 시공 감독 벤자민의 이름을 따 빅벤으로 불렸으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2016년 엘리자베스 타워로 개명.

22대 국회가 5월 30일 4년 임기에 들어갔다. 2028년 5월 29일까지다. 300명의 국회의원이 4년간 일할 장소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이다. 인류는 언제부터 의회와 의사당을 만들어 사용했을까? 고대 그리스로마의 2500년전 의사당 건물로 탐방을 떠나 본다.

◆런던 템즈강 웨스트 민스터궁-영국 국회의사당

영국 수도 런던 템즈강 북쪽 강변 웨스트민스터 궁전. 웨스트민스터 구에 지어 웨스트민스터 궁이라 부른다. 국회의사당이다. 하늘로 치솟듯 장엄한 퍼펜디큘러 고딕(Perpendicular Gothic) 양식 건물은 영국 민주주의는 물론 현대 민주주의 상징처럼 비친다. 처음 이 자리에 건물이 들어선 것은 앵글로 색슨 계열 잉글랜드 왕조 시절 1015년이다.

여러 차례 증개축을 거쳐 1875년 오늘날의 건물이 위용을 드러냈다. 궁전 동쪽 끝에 붙은 시계탑, 일명 빅벤은 웨스트민스터 궁의 마스코트와 같다. 본건물에 앞서 1859년 완공된 높이 96m 탑은 건축책임자 벤자민(Benjamin)의 이름을 따 빅벤(Big Ben)이라 불렀다. 그러다, 2016년 엘리자베스 2세 즉위 60주년을 맞아 엘리자베스 탑(Elisabeth Tower)으로 이름을 바꿨다.

◆1천년 의회 전통, 450여년 의회민주주의 전통

영국의 의회민주주의 전통은 유구하다. 1215년 대헌장(Magna Carta)에서 보듯 왕이 의회의 허락 없이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법을 정했으니 말이다. 영국이 실질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들어선 것은 1688년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 뒤다. 스코틀랜드에서 내려온 스튜어트 왕조 찰스 2세는 1685년 55살로 죽으면서 동생 요크 공작 제임스 2세에게 왕위를 넘긴다.

신교도가 장악한 영국 의회는 가톨릭 교도 제임스 2세를 몰아내기로 결의한다. 대신 제임스 2세의 신교도 딸 메리 공주와 남편 오렌지공 윌리엄을 추대한다. 왕위를 수락한 메리와 남편은 모든 입법과 국정 운영 결정권을 의회로 넘기고 사후 사인만 하는 합의에 서명한다. 피흘리지 않고 왕권을 의회로 이관해 명예혁명이라고 부른다. 그 의회가 300년 넘게 일하는 장소가 웨스트민스터 궁이다.

포로 로마노(로마 포럼).
포로 로마노(로마 포럼).

◆로마쿠리아 율리아, 카이사르 암살 장소

이탈리아 로마의 포로 로마노(포럼)로 발길을 옮긴다. 포로 로마노 동쪽은 콜로세움, 서쪽은 1861년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 겸 조국의 제단(전몰 용사 기념비)이다. 이곳은 원래 로마의 3신 유피테르(쥬피터, 제우스), 유노(쥬노, 헤라), 미네르바(아테나) 신전, 카피톨리움 터다.

고대 로마의 문서 보관소 타불라리움(Tabulrarium)과 감옥도 자리했다. 지금은 카피톨리니 박물관이 들어섰다. 박물관 아래 포럼에 셉티무스 세베루스(재위 193년-211년) 황제 개선문이 자리한다. 개선문 바로 앞이 쿠리아 율리아(Curia Julia)다. 쿠리아는 '회의 장소'라는 뜻이다. 율리아는?

뒤에 산타 루카 성당을 배경으로 서 있는 쿠리아 율리아 근처에서 B.C44년 3월 15일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7명의 공화파 원로원 의원들이 휘두른 칼에 살해당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암살 직전 쿠리아 율리아를 착공하며 자기 이름을 땄다. 그 자리에 있던 독재자 코르넬리우스 술라(B.C138년-B.C78년)의 쿠리아 코르넬리아(Curia Cornelia)를 헐고 새로 지은 거다. 쿠리아 율리아를 완공 시킨 인물은 B.C29년 그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다.

오른쪽 건물이 쿠리아 율리아. 로마 시대 카이사르 명령으로 건축됐다. 지금 건물은 현대 복원한 것. 왼쪽이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 이 일대가 코미티움이었다. B.C44년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곳이다.
오른쪽 건물이 쿠리아 율리아. 로마 시대 카이사르 명령으로 건축됐다. 지금 건물은 현대 복원한 것. 왼쪽이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 이 일대가 코미티움이었다. B.C44년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곳이다.

◆로마 의사당 코미티움과 쿠리아

쿠리아 율리아는 코미티움(Comitium)이라는 거대한 의사당 내 일부 공간이다. 코미티움 역시 '의회'라는 단어에서 파생됐다. 쉽게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코미티움이면, 쿠리아 율리아는 로텐더홀이라고 할까. 카이사르가 암살된 정확한 장소는 코미티움 폼페이우스 회랑이다. 카이사르의 숙적 공화파 폼페이우스가 만들었다.

폼페이우스는 B.C48년 그리스 파르살로스 전투에서 카이사르에게 패한 뒤, 이집트로 도망갔다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게 암살당한다. 권력무상이다. 코미티움이나 쿠리아에서 일한 의원들을 세나투스(Senatus), 원로원 의원라고 불렀다. 양원제를 택하는 나라의 상원 세나트(Senate)는 세나투스에서 나온 말이다. 복원한 쿠리아 율리아 건물 말고 2천여년 전 의사당 모습을 볼 곳은 없을까?

튀르키예 에페소스 오데온. 150년 완공됐다. 시의회 의사당이자 음악전문 공연장이다.
튀르키예 에페소스 오데온. 150년 완공됐다. 시의회 의사당이자 음악전문 공연장이다.

◆에페소스 오데온, 시의회 의사당

튀르키예 서부 에게해 연안의 그리스 로마 도시 에페소스(에페스)로 가보자. 동쪽 정문으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드넓은 공터가 펼쳐진다. 그리스 시대 만든 국가 아고라. 즉 광장이다. 여기서 서쪽 언덕 아래 극장 같은 시설이 보인다. 오데온(Oedon, Odeion)이다. 오디오, 즉 소리(Audio)를 만드는 장소(on)다.

소규모이고 지붕을 가진 음악전문 공연장이다. 오데온은 다른 용도로도 쓰였다. 의사당. 에페소스 시의원들의 회의 장소가 오데온이다. 에페소스의 거부 푸블리우스 베디우스 안토니우스 부부가 돈을 대 150년 완공시켰다. 수용규모는 1500명, 웬만한 로마 도시의 극장만큼 크다. 인류의 의회 역사는 로마에서 시작된 게 아니다. 그리스다.

파에스툼 에클레시아스테리온. 민회(에클레시아) 장소다. 규모로 볼 때 의사당인 것으로 보인다.
파에스툼 에클레시아스테리온. 민회(에클레시아) 장소다. 규모로 볼 때 의사당인 것으로 보인다.

파에스툼 에클레시아스테리온의 B.C5세기, B.C4세기 모습. 유적 현장 안내판.
파에스툼 에클레시아스테리온의 B.C5세기, B.C4세기 모습. 유적 현장 안내판.

◆파에스툼 에클레시아스테리온

이탈리아 나폴리 남쪽으로 베수비오 화산에 묻혔던 폼페이가 자리한다. 폼페이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파에스툼이 나온다. B.C7세기 그리스인들이 만든 도시다. 파에스툼 유적지에 특이한 유적이 탐방객을 맞아준다. 에페소스 오데온은 반원형 극장구조인데, 파에스툼의 이 유적은 완전 원형이다. 오데온? 아니다.

에클레시아스테리온(Ekklesiasterion). 의사당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민회를 에클레시아(Ekklesia)라고 불렀다. 민회는 시민 전체가 모이는 회의체다. 파에스툼 에클레시아스테리온은 전체 시민이 모이기에는 좀 작아 보인다. 민회라기보다는 의회 활동장소로 추정된다. 표지판 그림에 B.C5세기, 즉 2500여년전 에클레시아스테리온의 모습을 그려놨다. 유구한 민주주의 전통이 잘 읽힌다.

프리에네 보울레우테리온. 보울레(의회) 의사당이다. B.C150년 완공됐다.
프리에네 보울레우테리온. 보울레(의회) 의사당이다. B.C150년 완공됐다.

◆프리에네 보울레우테리온, 런던 웨스트민스터 의사당 구조

무대를 다시 튀르키예로 옮겨보자. 에페소스에서 차로 1시간여 거리 남쪽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 도시 프리에네. 시가지 앞쪽에 자리한 계단식 사각형 건물. 직사각형의 바닥에 탁자가 놓였다. 용도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의원 발언대. 의사당이다. 보울레우테리온(Bouleuterion). 고대 그리스에서 보울레(Boule)는 의회를 가리킨다. 보울레투스(Bouletus)로 불린 의원들로 구성된다.

에페소스의 오데온 역시 150년 처음 완공할 때 목표는 보울레우테리온이었다. 가로 20m, 세로 21m의 640명 수용 규모의 프리에네 보울레우테리온은 사각형 의사당 건물 형태로 원형이 남은 유일한 유적이다. B.C150년 건축 당시에는 물론 지붕 있는 실내건물이었다. 생김과 구조가 영국 의사당 웨스트민스터 궁 내부 모습을 닮아 더욱 눈길을 끈다. 필자는 이곳을 2000년 이래 3번 탐방했다. 찾을 때마다 유구한 민주주의 역사에 감회가 새롭다.

아테네 보울레우테리온 터. 뒤가 아고라이오스 콜로노스 언덕 헤파이스토스 신전이다.
아테네 보울레우테리온 터. 뒤가 아고라이오스 콜로노스 언덕 헤파이스토스 신전이다.

아테네 보울레우테리온 복원 그림. B.C5세기초. 유적 현장 안내판.
아테네 보울레우테리온 복원 그림. B.C5세기초. 유적 현장 안내판.

◆아테네 아고라 보불레우테리온

이제 민주주의의 남상 아테네 아고라로 가보자. 아고라 북동쪽 언덕 아크로폴리스 꼭대기에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는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 아크로폴리스보다는 낮지만, 아고라 북서쪽 언덕 아고라이오스 콜로노스에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자리한다. 신전 바로 아래 아테네 보울레우테리온 터가 남았다. 구건물을 헐고 B.C5세기 새로 지은 의사당 보울레우테리온이 어떻게 생겼는지 현장 안내판 그림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2500년 의회와 의사당의 역사. 대한민국 의회 역사는? 1948년 이후 76년 됐다. 상해 임시정부부터 따져도 이제 100년을 갓 넘는다. 2500년 전 의회 의사당 터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리스 로마 문명을 되새기며 더욱 성숙한 22대 국회를 기대해 본다. 의사당 건물만 팔공산처럼 큰들 무엇 하랴.

역사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