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케이서 7년 째 근무중인 시니어 직원들
버려진 청바지는 손지갑으로, 투박한 마대자루는 가방으로, 수명 다한 폐어망은 에어팟 케이스로 재탄생 했다. 이것들을 만들어 낸 건 다름 아닌 평균 70세 어르신들. 72세 영순 씨가 청바지를 분해하면 86세 옥선 씨가 재봉틀로 이를 이어 붙이고 75세 분늠 씨는 커피 자루에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다. 신입생 은숙 씨가 헤맬 땐 한 살 오빠 66세 진칠 씨가 나서는 것이 무언의 규칙! 이들은 대구 서문시장에 위치한 '할리케이' 시니어 직원들이다.
'할리케이'는 생활 속에서 버려지거나 쓸모 없어진 것을 재사용해 잡화 제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전문 사회적 기업이다. "사람이 늙으면 쓸모없다고 하죠. 하지만 우리는 80살 먹고도 패션 회사에서 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희가 만드는 업사이클링 제품들도 그래요. 버려지고 쓸모없는 재료들이 이렇게 예쁜 패션 잡화들로 재탄생 되는걸요" 그리고 시니어 직원들은 입 모아 말했다. "업사이클링과 늙은 우리, 참 많이 닮아있지 않나요?"
※인터뷰 질문에는 어르신 직원들의 작업을 관리하는 선미란 씨(58)가 답변했습니다.
-업사이클링과 노인. 그러고보니 참 많이 닮았다. 시니어 직원들은 어떤 일을 맡고 있나
▶나이가 들면 쓸모 없어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업사이클링 기업인 할리케이는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것에 가치가 있고, 그 가치를 발굴해서 새 생명을 불어 넣는 일이 우리의 일이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70~80대 직원들이 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드는 전 과정. 즉 재료 분류, 해체, 재봉, 패킹 등 정성이 필요한 모든 곳에 어르신들의 손길이 닿는다.
-시니어 직원들은 어떻게 패션회사에 입사하게 된 건가.
▶대구는 청년층의 이탈로 고령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도시다. 이에 노인 일자리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다. 그래서 할리케이 대표님께서 시니어클럽과 함께해보자 결정하셨고, 지역 스타트업으로서 지역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7년째 서구 시니어클럽과 함께 일하고 있다.
-시니어 직원들은 원래 이쪽 경력들이 있으신건가
▶대부분 패션 제조업에 종사하다가 은퇴하신 전문가들이시다. 와이셔츠 공장이나 이불 공장 등 미싱기를 다룰 줄 아는 분들이 대다수다. 오랜 경력과 노하우를 가진 시니어 분들께서는 자신만의 봉제 기술과 전문 지식으로 척척 업무를 처리하신다. 직원 중에 가장 나이가 많으신 권옥선 씨(86)는 한복 장인이셨다. 평생을 한복 만드는 일을 하셨다 보니 손이 매우 정교하시다. 재봉을 하실 수 있더라도 손 놓은 지 오래 된 분들은 간단한 작업을 하신다. 재료 준비라고 보면 되는데, 버려진 청바지를 천으로 만들기 위해 해체하는 작업 등이 이에 해당한다.
-패션 스타트업과 70대 직원의 조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던지는 분들도 많았을 것 같다.
▶경력이 있으시긴 하셔도 업사이클링은 또 다른 영역이다. 커피 마대자루나 청바지 소재는 일반 면이나 한복 재료와 다르게 두껍고 투박하다. 그러니 경력이 있으시더라도 여기 와서 새롭게 배워 나가야 하는 일이 많다. 또 패션 회사와 어르신이 조금 생소한 조합이지 않는가.
그래서 대표님이 시니어 직원들을 고용한다고 하셨을 때 육십 가까워 가는 나 또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젊은 직원들이 일을 더 빨리 하지 않을까. 어르신들이 이 일을 해내실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우려가 무색할 만큼 어르신들은 제 몫을 척척 해내시고 계신다. 특히 86세 직원을 볼 때면 항상 놀란다. '힘들어서 못 하실 텐데' 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부끄럽다. 심지어 쉬운 일 보다는 본인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신다.
-시니어 직원들의 열정은 젊은 직원 못지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다른 점을 '굳이' 찾자면.
▶젊은 직원들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시니어 직원들은 너무 일찍 출근을 한다. 9시까지 오면 되는데 8시 40분만 돼도 가게 앞에 서 계신다. 그렇게 되면 문을 열어줘야 하는 내 출근 시간이 앞당겨진다. 그래서 처음엔 참 난감했다. (웃음) 하지만 그 이유를 알게 된 후에는 일찍 나오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빨리 출근하시는 이유가 작업 시작 전에 다 같이 커피를 마시기 위함이었더라.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면 일하는 시간을 잡아 먹는 것이니 업무 시작 전 커피 타임을 가지는 것이다. 참 성실하고 멋진 분들이지 않나. 내 나이도 58세. 적은 나이가 아니다. 하지만 이 분들에게 배우는 게 더 많다.
-열정은 똑같다고 해도 체력은 다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노화로 인한 체력 저하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미싱은 젊은 사람이 해도 허리가 아픈 일이다. 계속 자리에 앉아서 작업을 해야하니 어깨도 결린다. 하지만 늦어도, 실수를 하더라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프면 쉬엄쉬엄, 컨디션이 좋아지면 빨리빨리. 여건대로 업무를 수행하고 계신다. 7년 전 첫 입사를 했을 때의 모습과 지금을 비교하면 나이가 드시는 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 서글픈 마음도 든다. 하지만 업무에 대한 욕심이나, 활력은 똑같다. 그래서 우리끼리 우스갯 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몸은 늙더라도 치매는 절대 안 걸리겠다" 그만큼 손도 많이 쓰고 카운팅(숫자 세기)도 해야 하는 업무이기에 다들 삶에 활력을 느끼신다.
-시니어 직원들이 만든 제품들은 어떤 게 있나.
▶청바지로 만든 티코스터, 마우스패드, 손지갑부터 커피 마대자루로 만든 필통과 텀블러 가방 등. 재료 손질부터 제작까지 모두 시니어 직원들의 손을 거친다. 그리고 최근에는 가방까지도 만들고 있는데 이는 대표님의 철학에서 시작됐다. 시니어 직원들이 보조가 아닌, 메인이 될 수 있도록 늘 서포트 해주신다. 쉽게 말해 간단한 소품들만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시는 거다. 사실 젊은 사람이 1시간 만에 할 일을, 어르신들은 2시간이 걸려야 완성시키기도 한다. 또 이러한 일들을 공장에 맡기면 훨씬 빨리, 또 싸게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우리 할리케이의 경영 철학이다.
-시니어 직원들도 큰 자부심을 느끼겠다.
▶물론이다. "이걸 내가 만들었어?"라며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른다. 또한 본인들이 여태껏 해오던 일에 '친환경' 이라는 가치까지 따라 붙었지 않는가. 그러니 더 자긍심이 드신단다. 또한 가방 만들고 소품 만들어 손자 손녀들 용돈을 줄 때 행복하다는 말씀도 많이 하신다. 서로 '내가 밥산다'며 소리 치기도 하신다.(웃음)
-어르신 직원끼리 사이도 좋겠다. 직장 갑질 혹은 괴롭힘은 더더욱 없을 것 같다.
▶아휴. 당연하다. 새로 온 직원이 있으면 도와주기 바쁘다. 자신만의 요령을 모두 방출한다. 같이 늙어간다고 생각히니 서로 아끼고 경쟁도 없다. 앞서 질문 주신 젊은 직원들과 다른점이기도 하겠다. 어르신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게 있다. '우리는 공동체다. 같이 가야한다'. 가방 하나를 만들어도 제품 손질부터 재봉, 패킹까지 다 연결돼 있지 않는가. 이를 함께 하다보니 모두가 함께 힘 맞춰 움직인다. 7년을 그래왔듯, 우리 어르신들과 오래오래 함께 가치 있는 일을 해나가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할리케이에 전시된 패션 소품들이 사뭇 다르게 보인다. 두꺼운 안경을 끼고 가위질 했을 이 가방. 주름진 손으로 한 땀 한 땀 수 놓았을 저 가방. 쓸모 없는 것을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드는 이들의 연륜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더불어 기자는 소망한다. 다가오는 환경의 날 만큼은 '새 것'이 아닌 '낡은 것'에도 시선을 보내는 하루가 되길. 빠릿빠릿한 젊음도 좋지만, 깊게 패인 늙음도 아끼는 하루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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