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술을 끊지 못할까? 매번 후회하며 다시 술을 마신다. 의사 선생님이 '절대금주'를 권했다. 8년 전 뇌출혈을 겪으면서다. 노력은 했지만, 매번 난항을 거듭했다.
의사 선생님과 저녁 식사를 했다. 고민을 털어놓자, '절대로 안 된다'며 의사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1년 전 필자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분이라고 했다. 극적인 반전이었다. 이른 저녁 시간이었는데도 이미 만취 상태였다. 민망해진 의사 선생님은 '취하지만 말라'며 서둘러 상황을 정리했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서 어떻게 취하지 말란 말인가? '음주는 폭포와 같아서 어디서 폭포수로 끌려 들어갈지 모른다'는 학창 시절 익숙한 지문이 생각났다. 반론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것이 분명했기에 '알았다'며 필자도 상황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후 절망은 계속됐다. 안타깝게도 '취하지 않기'의 도전은 거의 실패로 끝났다.
그 나름의 핑계는 있다. 필자는 '소심함'의 전형인 혈액형 A형이다. 필자의 아들은 혈액형 구분에 대해 비과학적이라며 핀잔을 준다. 굳이 믿으려면 MBTI를 믿지, 혈액형 구분을 믿는 것은 '꼰대 아재'의 전형이란다. 하지만 MBTI로도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필자는 INTJ 유형인데, 내성적인 I가 이성적인 T를 만나면 사회생활은 더욱 힘들어진다.
평소에는 조용하다가 회의만 했다 하면 지나치게 저돌적이 된다. 상대를 몰아붙이고, 관계는 악화 일로가 된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묘약이 뒤풀이 음주다. 술이 한두 잔 들어가면 평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호방해진다. 술자리가 끝날 때면 누구나 형·아우가 되고 동지가 된다. 술은 소심한 사람에겐 구세'주'다. 그래서, 그렇게 끊기 힘들다는 담배와 커피는 끊어도 술은 끊을 수 없는 것이다.
역사적, 인류학적 이유도 있다. 인류 문화의 기원 수메르문명의 총화이자, 모든 역사 서사의 원형인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주인공 길가메시의 '영혼의 친구' 엔키두가 나온다. 짐승같이 살던 엔키두를 인간으로 만든 사람은 이슈타르 신전의 여신관 샴하트다. 그녀는 엔키두에게 맥주의 맛을 알게 했고 성(sex)으로 교화했다.
술과 더불어 '6일 낮 7일 밤' 성관계를 갖자 다른 짐승들이 그를 멀리했고 인간 세계로 귀화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인류에게 술과 성은 떼 놓을 수 없는 단짝이 됐다. '인간'이 된 엔키두는 길가메시와 함께 '영웅'으로 거듭나야 했다. 이렇게 술, 이성(성욕), 명성(명예욕)은 서로 의지하며 정립하게 된다.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영웅이 되기 위한 모험에 뛰어든다. 신의 심부름꾼인 훔바바와 '하늘의 황소'를 죽여 명성을 드높인다. 하지만 그들의 영웅적 서사는 재앙을 낳는다. '필멸의 인간'이 이름을 남겨 영원을 꿈꾸는 것은 신에 대한 도전이다. 신들은 길가메시를 응징하기 위해 그의 단짝 엔키두를 죽게 한다.
'영웅'은 신에게 도전해 성취를 이룬 인간의 영예로운 이름이다. 평범한 인간에게 영웅은 신의 대체재다. 그래서 신은 필멸의 존재에게 분수를 알게 하려 죽음을 내린다. 신에게 영웅은 '명예 없는 명성'을 좇는 헛되고 허망한 피조물일 뿐이다.
친구의 죽음에 낙담한 길가메시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불로초를 찾는 영웅 서사를 이어간다. 대홍수에도 살아남아 영생을 얻은 유일한 인간 우트나피쉬팀을 찾아 불로초를 구하지만, "'6일 낮 7일 밤' 동안 잠을 자지 말아야 한다"는 경계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 실패한다. 잠은 '작은 죽음'이기에 이 또한 필멸의 인간에겐 필연적인 한계다.
술과 관련된 신화와 에피소드는 수없이 많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유명 가수의 음주운전이 대한민국의 지가(紙價)를 올렸다. '순간의 실수'가 어렵게 쌓아 올린 명성을 오명(汚名)으로 만들었다. 그는 '명예 없는 명성'의 대명사가 됐다.
술과 함께 거론되는 '명예욕'과 인간의 영원한 아킬레스건인 '이성에 대한 욕망'도 뜨거워졌다. '버닝썬 사건'이 BBC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정치권 핫이슈인 '3특검'도 같은 맥락에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성욕과 명예욕은 성취를 위한 중요한 동기가 된다. 술은 때때로 핵심 촉매가 된다. 과도한 '죄악시'는 문제를 더 꼬이게 할 뿐이다. 해법은 "'적정선'을 지키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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