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유흥주점에 잠식된 동촌유원지, 동구청은 '나몰라라'

입력 2024-05-22 14:00:51 수정 2024-05-22 21:39:49

식품위생법상 유흥주점만 손님 춤·노래 허용돼
동구청 "3교대 근무 아니라서 새벽 단속은 힘들어"…단속 의지 의문
업계 관계자 "불법 행태 지속되면 상업 질서 무너져"

지난 14일 0시쯤 방문한 대구 동구 동촌유원지 일대 한 음식점. 흥이 오른 손님들이 단체로 음악에 맞춰 디제잉석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음식점 외부에 걸린 현수막 위로
지난 14일 0시쯤 방문한 대구 동구 동촌유원지 일대 한 음식점. 흥이 오른 손님들이 단체로 음악에 맞춰 디제잉석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음식점 외부에 걸린 현수막 위로 '휴게음식점'이라고 쓰여있다. 김유진 기자

대구 동구 동촌유원지에서 유사 유흥업소들이 수년째 '불법 춤판'을 벌이고 있는데 관할 지자체인 동구청이 사실상 단속에 손을 놔 논란을 키우고 있다. 동구청의 소극 행정이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 또한 잇따르고 있다.

지난 14일 자정쯤 방문한 대구 동구 동촌유원지 A업장. '7080 라이브 술집'처럼 운영되는 이곳은 디제잉석이 있고 미러볼 등 조명·음향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빠른 템포의 음악이 흘러나오자 5~6명의 사람들이 디제잉석에서 서로 얽혀 춤을 췄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부르는 일행도 있었다. 흡사 유흥업소처럼 보이지만 '일반음식점'이다.

이곳을 찾은 장모(55) 씨는 "옛날 음악을 들으러 가끔 방문하는 편"이라며 "술을 마시다보면 흥에 겨워 손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춘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인근 다른 B업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2층에 위치한 이곳도 일반음식점이지만 조명·음향시설을 갖추고 꼼수영업을 하고 있었다. 업장 내부 대형 스크린에 틀어진 7080 가수들의 무대 영상을 보며 춤을 추는 사람들, 업장 내부를 돌아다니며 춤추는 사람들 또한 목격됐다.

현행 식품위생법상 유흥주점이 아닌 휴게음식점·일반음식점에서는 음향시설을 갖추고 손님이 춤을 추거나 노래 부르는 것을 허용해선 안 된다. 이를 어기면 1차 위반 시 영업정지 2개월, 2차 위반 시 영업정지 3개월, 3차 위반 시 영업허가 취소 또는 영업소 폐쇄 등의 강한 행정처분이 내려진다.

동촌유원지 인근 주민 A(64) 씨는 "자정이 되면 취기에 오른 사람들이 춤추는 모습이 가게 밖에서도 목격된다"며 "소음피해를 호소하면서 야간 단속을 해달라는 민원을 여러번 넣었지만 동구청은 업무 시간이 아니라서 할 수 없다고 답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해 4월 서울 강남구청은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경찰과 합동 단속을 펼쳐 클럽형태 불법영업 일반음식점 6곳을 적발했다. 대구 중구청도 같은 시기 1곳을 적발한 바 있다. 남구청도 2023년 7월, 춤을 허용한 일반음식점 업주에 영업정지 2개월 처분을 내렸다.

반면 동구청은 업장 1곳을 적발한 2021년 이후 관련 민원이 속출함에도 3년째 적발 실적이 전무하다. 단속은 주기적으로 하고 있지만 '단속 나갔을 때는 춤을 안 추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불법 행태가 지속되면 탈세 문제 등 상업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수덕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대구시지회 사무국장은 "유흥업소는 수익의 23%를 세금으로 납부하지만 일반음식점은 10%만 부가가치세로 낸다"며 "지자체가 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누가 합법적으로 가게를 운영하려고 하겠냐"며 구청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동구청 관계자는 "민원이 접수되면 현장 점검을 나가는데 3교대 근무가 아니라서 자정에 가까운 시간대에 단속은 무리"라고 했다. 향후 야간 집중 단속 계획에 대해서는 "민원 업무가 많아 구청이 나서기 힘들다"며 개선 의지에 의문이 드는 입장을 내놨다.